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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甲 된 여인의 복수극 억눌렸던 ‘乙의 반격’ 연상

[경영, 인문학에 길을 묻다] 뒤렌마트 『노부인의 방문』
연극 ‘노부인의 방문’의 한 장면.

연극 ‘노부인의 방문’의 한 장면.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반전과 복수는 독자들에게 통쾌함과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독일문학 작품들 가운데 대표적인 복수극을 들라면 스위스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 1921~1990)의 작품 『노부인의 방문(Der Besuch der alten Dame)』을 꼽을 수 있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극작가 뒤렌마트가 1956년에 출간하고 그해 취리히에서 초연한 이 희비극(喜悲劇)은 지금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다.
 
『노부인의 방문』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한다. 1955년 독일과 국경이 맞닿은 스위스의 소도시 귈렌에 어느 날 68세의 한 노부인이 방문한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는 17세 때 이 마을을 떠난 후 45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옛 이름이 클라라인 그녀가 이 마을을 떠난 데는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클라라는 두 살 위인 마을 청년 알프레드와 사귀어 사랑에 빠졌고 덜컥 임신까지 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알프레드는 태도를 돌변하여, 자신이 애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인할 뿐 아니라 친자임을 주장하는 클라라를 무고죄로 고소까지 했다. 재판이 열렸지만 알프레드 집안에서 매수한 증인들이 입을 맞추어 위증을 함으로써 클라라는 유죄판결을 받아 마을에서 추방당하게 됐다.  
 
 
무일푼 신세로 고향서 추방, 아이는 숨져
미혼모에다 행실이 나쁜 여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무일푼 신세로 고향에서 쫓겨난 그녀는 아이가 생후 1년 만에 병으로 죽자 자포자기하며 외국을 정처 없이 떠돌면서 거리의 여인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등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모진 세월이 흐른 후, 그녀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우연히 만난 한 석유재벌 아들과의 결혼을 시작으로 이후 여러 차례의 결혼과 이혼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모으게 되었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녀는 자신에게 불행을 안겨준 알프레드에게 복수를 하고자 세계적인 부호 ‘클레어 차하나시안 부인’이라는 신분으로 일곱 번째 남편과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고향마을에 금의환향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고향을 방문했을 때 마을의 경제상황은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는 등 경제적으로 극도로 피폐해 있었다. 억만장자 노부인은 시장을 비롯한 마을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귈렌시의 경제부흥을 위해서 10억 달러의 거금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그것은 그녀의 옛 애인 알프레드를 정의의 이름으로 처형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가지고 온 관에다 알프레드의 시신을 담아 조용히 떠나겠다고 약속했다.  
 
70세 노인이 된 알프레드는 클라라의 귀환 소식과 자신에게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고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알프레드는 아무리 그녀가 물질공세를 편다고 해도, 70년 동안 같은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이웃들이 변치 않는 우정으로 자신을 지지해줄 것이며, 법치주의가 엄연히 살아 있으므로 자신에게 별 탈이 없을 것으로 믿고 그녀를 만나서도 사과를 하지 않고 변명으로 버텼다.  
 
그런데 알프레드는 마을 사람들이 며칠 사이에 새 옷에다 새 구두를 신고 다니기 시작한 것을 목격하면서 그들이 클레어 부인에 매수된 것을 알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다. 조급해진 알프레드는 시장을 찾아가 무고한 자신을 공권력이 보호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녀 또는 시민들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것을 요구했다. 시장은 그러마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으나, 시장 역시도 새 옷에 새 넥타이를 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집무실 책상위에 못 보던 새 타자기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경찰관들까지 새 구두를 신고 돌아다니는 광경에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 그는 마을 목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으나 목사는 알프레드에게 귈렌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했다. 목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나갔으나 갑자기 현기증으로 쓰러져 귈렌 탈출도 실패로 돌아갔다.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시장마저 그를 찾아와 총을 주면서 자결을 할 것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그는 시장의 제안에 크게 화를 내며 거절하였다.
 
마을의 인심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갔다. 사람들은 점점 알프레드에게 적대적으로 대했고 그의 죽마고우들마저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알프레드는 주민총회에 불려 나갔다. 시민들은 알프레드가 45년 전 클라라에게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성토하더니 만장일치로 유죄로 평결하고 사형집행을 결정한다. 잠시 후 갑자기 불이 꺼지면서 알프레드는 일단의 장정들에 의해 어둠 속으로 끌려가 살해당하고 만다. 얼마 후 시의 공중의사가 와서 알프레드의 주검을 검시하였고 사인을 심장마비로 보고했다. 그의 죽음을 확인한 클레어 부인은 약속한 기부금을 귈렌 시장에게 수표로 지불한 뒤 그녀가 가져온 관 속에 알프레드의 시신을 담아 홀연히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연극 ‘노부인의 방문’에서 작가는 ‘과연 돈으로 정의를 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져 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선과 악, 그리고 경제적 풍요와 사회정의 간의 모순과 아이러니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천민자본주의의 병폐를 지적하고 배금주의의 추악한 민낯을 고발하고 있다. ‘노부인의 방문’에서 작가는 아이러니(irony)기법을 통해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인간의 가치와 실존을 일깨워 주고 있다.  
 
『노부인의 방문』에는 공리주의 윤리론과 의무론적 윤리론 간의 딜레마가 잘 표현되고 있다. 공리주의 윤리는 철저하게 행동의 결과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최대다수에게 최대의 행복’이라는 결과를 이끈 행동을 윤리적인 것으로 본다. 즉 사람들의 행복의 총량이 증가하는 결과를 야기한 행동을, 동기와 과정과는 상관없이, 윤리적인 행동으로 판단한다. 이에 반해서, 의무론적 윤리론은 결과보다도 행위의 동기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세상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따라야하는 도덕법칙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에 대한 신의와 성실의 의무라고 가르친다. 개인이 이러한 도덕률에 따라 선한 동기로 행동하는 것이 윤리적인 삶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귈렌 시민들은 철저하게 공리주의적 윤리론에 기반하여 정의를 따지고 있다. 근본 없는 흙수저 출신 클라라 소녀와 금수저 출신인 알프레드 청년 간의 송사에 있어서 마을사람들과 판사는 약자인 클라라의 처지가 딱하기는 하지만, 강자인 알프레드의 가문이 패소할 경우 입게 될 손실을 더 우려했다. 결국 그들은 클라라 한 사람만 불행하고 나머지 귈렌 시민들의 행복해지는 대안을 선택함으로써 공리주의 원칙을 지켰다. 결국 클라라는 불의한 판결에 의해 억울하게 마을에서 추방되었고 이후 철저하게 불행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45년의 세월이 흐른 후 상황은 완전히 역전이 된다. 나락으로 떨어진 줄 알았던 피해자 클라라는 수퍼 금수저 귀부인 클레어가 되어 화려하게 귀환했고, 가해자 알프레드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 그녀는 엄청난 경제력을 앞세워 시장을 비롯한 마음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파탄지경에 이른 도시의 경제를 일거에 살릴 수 있는 수호천사로 숭배를 받았고, 알프레드 노인은 졸지에 천하의 파렴치범으로 몰려 공정한 재판도 거치지도 않고 마을사람들에 의해 집단폭행을 당한 후 살해됐다.  
 
 
우월적 지위 이용한 일탈행위 공분 사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부 기업인들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일탈행위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대기업이나 프렌차이즈 본사에 의한 갑질과 횡포를 경험한 피해점주와 가맹점주들이 연일 피해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또한 갈수록 확대되는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와 비정규직 양산은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기업들은 대량 정리해고를 시행하였고, 그 후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비정규직이 양산되었다. 혹독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국민들이 기업의 비정규직 확대문제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고 방치한 지 20년이 지난 오늘날, 20~30대 직장인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일 정도로 우리사회의 고질적이고 악성적인 노동현상이 되었다.
 
그런데 『노부인의 방문』의 반전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을’들의 대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클라라가 클레어가 되어 돌아온 것처럼, 과거의 을이 수퍼갑으로 변신하는 대역전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을을 부당하게 괴롭히던 대기업과 프렌차이즈 본사를 강력히 규제하는 법령이 곧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리고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6.4% 인상된 7530원으로 결정됨에 따라 사용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기업계와 소상공인들은 이대로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노동계는 최저임금이 근로자들의 최저 생계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므로 시간당 1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러한 을의 습격은 갑자기 닥친 일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 우리 사회의 갑들의 잘못된 행동들이 축적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므로 갑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필자는 『노부인의 방문』에 등장하는 귈렌 시민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이들의 윤리관은 너무나도 타산적이고 이기적이다. 공동체의 가장 약자인 17살 클라라 소녀에게 주홍글씨를 덧씌워 마을에서 추방했던 사람들이 억만장자가 되어 돌아온 그녀를 열렬히 환영하면서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없이 또 다른 집단 범죄에 가담했다. 이들은 개인의 사회적 의무와 도덕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또 다른 반전이 찾아와 이 비겁한 방관자들을 심판할지도 모른다.
 
 
김성국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장
서울대 인문대 졸업,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박사, 베를린 자유대 등 객원교수 역임. 대한리더십학회 초대 회장, 한독경상학회한국인사조직학회 및 아시아-유럽미래학회 회장, 한국경영대학·대학원협의회 이사장. 『인적자원관리 5.0』『모멘트 리더십』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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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