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신전 돌기둥 같은 교각들, 명상 부르는 한남대교 밑

[도시와 건축] 다리의 인문학
한남대교를 받치고 있는 수십 개의 콘크리트 교각들은 이집트 신전의 돌기둥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성당이나 절처럼 기도와 명상을 부르는 공간이기도 하다. 김경빈 기자

한남대교를 받치고 있는 수십 개의 콘크리트 교각들은 이집트 신전의 돌기둥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성당이나 절처럼 기도와 명상을 부르는 공간이기도 하다. 김경빈 기자

인류는 오래전부터 다리를 건축해 왔다. 다리는 물이나 깊은 계곡같이 길을 막는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건축적으로 다리의 의미는 ‘연결’이다. 우리가 빈 땅에 가면 그 공간은 하나다. 거기에 벽이 서게 되면 하나였던 공간이 벽의 이쪽 편과 저쪽 편으로 나뉘게 된다. 이 벽에 구멍을 뚫으면 창문이 된다. 창문은 벽으로 단절되었던 두 공간을 서로 쳐다볼 수 있는 관계로 만들어 준다. 그 구멍을 바닥까지 내려오게 뚫으면 문이 된다. 문은 시각적으로만 연결되었던 공간을 실제로 오갈 수 있는 관계로 바꾸는 건축요소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리는 장애물로 나누어진 두 공간을 하나로 연결해서 소통하게 해 주는 건축요소이다. 다리건축 역시 다른 건축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기술, 건축재료, 권력의 규모에 따라서 각 시대와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에 가면 조선 초기에 건축된 ‘살곶이 다리’가 있다. 청계천이 한강으로 들어가기 직전 구간에 놓인 이 다리의 길이는 76m, 폭은 6m이다. 교각은 21개로 교각 사이의 간격은 대략 3.5m 가량이다. 살곶이 다리를 보면 당시 조선 조정의 권력과 기술력과 재력을 가늠할 수 있다. 거대한 돌을 멀리서 청계천까지 안전하게 운반할 만큼의 통치 권력과 하나당 3.5m 길이의 돌을 들어 올릴 정도의 토목기술과 76m 길이 규모의 다리를 건축할 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강폭이 수백m에 달하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건축은 불가능했고 그 정도의 강은 배를 타고 건너야 했던 수준이었다. 이쯤에서 다리 건축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자.
 
 
배는 점, 징검다리는 점선, 다리는 실선
조선 초기에 건축된 서울 행당동 살곶이 다리 옆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중앙포토]

조선 초기에 건축된 서울 행당동 살곶이 다리 옆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중앙포토]

태초에 비가 내리고 물이 낮은 곳으로 모여 흐르면서 시내와 강이 생겼다. 이때 넓은 강은 배를 이용해서 건너고 작은 개울은 큰 돌을 옮겨 놓고 징검다리를 만들어서 건넜다. 건축적으로 이 둘의 의미를 살펴보자. 우선 배는 작은 배에 사람이 들어가서 노를 저어서 물을 건넌다. 이때 사람의 발은 수면보다 밑에 놓이게 된다. 위에서 보면 배는 물속의 점이다. 사람이 물속에서 하나의 점의 상태로 이동하면서 건너가는 구성이다.
 
이에 반해 징검다리는 점선이다. 사람들은 물위에 점점이 놓인 돌들을 밟고 건너간다. 사람의 발은 수면보다 몇십cm 위에 위치한다. 징검다리는 개울의 양쪽 공간을 점선으로 연결한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우선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걸어야 한다. 보통의 다리를 건널 때는 주변을 둘러볼 수 있지만 징검다리에서는 발을 잘못 내디디면 물에 빠지기 때문에 내 발을 보고 내 보폭을 생각하면서 걸어야 한다. 징검다리 건너기는 내 몸을 민감하게 느끼면서 내 다리를 보면서 걷는 특별한 건축체험이다.
 
그 외에도 징검다리는 물위에 나만의 사적인 공간을 갖게 해 준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 내가 디디고 있는 작은 돌만큼의 면적은 온전히 내 공간이 된다. 주변은 물로 둘러싸여서 마치 성 주변에 해자가 만들어진 것처럼 확실한 나의 영역성이 확보된다. 징검다리 돌 위에서 마주 오는 사람과 교차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하나의 공간 다이어그램 안에 친하지 않아도 가깝게 묶이는 순간이 만들어진다. 또한 징검다리 위에서는 하늘과 물 사이에 나 혼자 존재하는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건축이다.
 
 
황순원의 ‘소나기’와 징검다리
징검다리는 물이 불어나면 사라지는 다리다. 물이 불어나도 항상 물위에 군림하는 다른 다리와는 다르다. 그래서 징검다리는 때로는 자연에 양보하는 다리이다. 점선으로 연결된 징검다리는 수면의 높이에 따라서 잠기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한다. 자연은 미세하게 변화해서 의식하기 어렵다. 개울의 수위도 그중 하나이다. 하지만 징검다리가 놓이게 되면 수십cm 밖에 안 되는 미세한 개울 수위의 변화에 의해서 개울 양편이 연결되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한다.
 
황순원의 ‘소나기’라는 단편소설을 보면 갑작스런 소나기로 물이 불어서 징검다리가 끊기게 된다. 이때 소년은 소녀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넌다. 그때부터 둘의 스킨십과 관계의 발전이 일어난다. 만약에 같은 상황이었어도 지금처럼 콘크리트 교각의 다리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소나기라는 소설은 없는 거다. 소나기라는 갑작스런 자연의 변화, 징검다리라는 가변적인 건축공간이 합쳐져서 만들어 낸 아름다운 이야기가 황순원의 ‘소나기’이다. 소나기 소설의 첫 장면을 보면 황순원씨가 얼마나 건축공간을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소설은 소녀가 징검다리에 앉아서 물장난을 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주변의 물에 둘러싸인 돌 위에 홀로 앉은 소녀처럼 집중되는 스테이지 세팅은 없다. 징검다리는 그런 다채로움이 있는 공간이다.
 
시간이 흘러 인간의 기술, 자본, 권력구조가 커지면서 다리도 점점 커졌다. 배가 점이고, 징검다리가 점선이라면 지금의 다리는 실선이다. 청계천에 수표교나 살곶이 다리를 만들던 시절을 거쳐 지금은 한강에 콘크리트 교각으로 지어진 한남대교, 영동대교, 마포대교가 있다. 다리의 길이는 10배 넘게 길어져서 1km가 넘고, 교각의 높이도 수십m로 높아졌다. 과거 배는 물 안에 갇혀서 건너는 경험이었고, 징검다리는 물보다 수십cm 위, 살곶이 다리는 4m 정도 위에서 물을 건넜다면 지금의 대교는 수면보다 수십m 위에서 건너는 경험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물과의 관계가 멀어져 왔다. 다리의 폭도 수십m여서 자동차를 타고 1차선으로 건너면 가까이의 물은 보이지도 않아서 내가 물위를 가는지 의식도 잘 안 된다. 이런 자연을 압도하는 현대식 다리에서도 자연에 양보하는 다리가 있다. 서울 반포에 있는 잠수교이다. 잠수교를 건널 때는 물과 가깝게 걸을 수 있다. 게다가 한강유람선이 지나갈 수 있도록 가운데가 구름다리처럼 들려져 있다. 잠수교 위를 걸으면 물과 가까웠다가 점점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물과의 관계가 변화하는 체험할 수 있다. 잠수교는 낮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강수위가 높아지면 물에 잠긴다. 마치 징검다리 같다. 물에 잠겨도 가운데 들린 부분은 ‘저 여기 있어요’하는 것처럼 물위로 솟아나 있다. 대부분의 한강 다리는 자연을 압도하는 다리지만 잠수교는 때로는 자연에 양보하고 자연과 대화하는 다리이다. 너무 높고 길어서 약간은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현대식 다리에도 좋은 점은 있다. 바로 다리 밑의 공간이다.
 
 
다리는 개인적 체험 선사하는 건축물
건축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꼽는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지붕이다. 벽은 없을 수도 있고 그냥 땅바닥에서 지낼 수도 있지만 집이라고 부르려면 지붕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비를 피하는 것이고, 지붕이 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리가 놓이면 다리 아래에는 다리상판을 지붕으로 하는 ‘다리 밑’ 공간이 부수적으로 생겨난다. 이런 부수적인 공간은 예로부터 주인 없는 공간이어서 거지들이 살곤 했다. 현대에도 이 주인 없는 공간은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서 쉬거나 운동을 하면서 사용한다. 필자도 다리 밑에 자주 가는데 그 이유는 다리 아래의 교각을 보기 위해서이다.
 
현대 건축물은 과거의 건축물에 비해서 감동이 떨어진다. 그 이유는 구조체가 안보여서이다. 과거에 건축된 석굴암이나 고딕성당들은 그 건축물이 중력을 어떻게 이겨 내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건축구조체가 그대로 노출되어서 구조체는 곧 내외부 마감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시대에는 건축물이 콘크리트나 철골로 지어지지만 그 모든 것들은 마감재로 가려져서 안 보인다. 건축이 다른 예술과 다른 큰 차이점은 가장 근본적인 자연법칙인 ‘중력’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건축은 감동이 있다. 하지만 현대건축에서는 그 본질이 다 가려져서 안 보인다. 그래서 현대건축이 옛 건축물보다 감동이 덜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다리 밑에 가면 그 감동을 체험할 수 있다. 한남대교를 받치고 있는 수십 개의 콘크리트 교각이 1㎞가 넘게 줄지어져 있는 모습은 이집트 신전의 돌기둥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한강이라는 수공간과 어우러져 있고 계속해서 반복되어 있는 열주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영원의 공간을 연출한다. 그리고 여기에 가면 이 복잡한 도시 속에서 내 시야에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현대식 대형 다리 밑의 공간은 어느 성당이나 절 보다도 기도와 명상을 부르는 공간이다.
 
다리 위의 공간도 특별하다. 과거의 다리들은 수면 바로 위에서 물을 가깝게 접할 수 있게 해 주었다면 현대식 대형 다리는 너무 높아서 사람을 강과 하늘의 중간에 떠 있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다리는 아주 거대한 공공건축물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개인적인 체험을 선사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주변의 세상과 모든 관계를 끊고 홀로 있을 수 있는 곳이다. 오늘 이 복잡한 도시 속에서 벗어나 다리위에서 하늘과 물을 만나고 다리 밑에서 명상을 해 보면 어떨까.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건축의 흐름』『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