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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못한 건 음주운전 …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해”

[2017 스포츠 오디세이] 흑인 혼혈 축구선수 강수일의 인생극장
축구선수 강수일

축구선수 강수일

강수일(30·姜修一)은 서울 강씨 시조다.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는 강수일이 아기 때 미국으로 돌아갔다. “깜둥이”라고 놀림 받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수일은 동두천에서 알아주는 싸움꾼으로 컸다. 그는 허드렛일로 자신을 뒷바라지하던 어머니가 몸져 눕자 정신을 차리고 축구에 매진한다. 동두천~인천 왕복 6시간을 전철과 지하철로 오가며 3주간 프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점심에 빵 한 개를 먹고 운동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1. 2015년 6월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강수일(오른쪽).

1. 2015년 6월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강수일(오른쪽).

2008년 2월 인천 구단의 괌 전지훈련에서 만난 강수일은 ‘올 시즌 11경기에서 4골을 넣고,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힘 좋고 유연한 공격수로 성장한 강수일은 2015년 6월,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을 받아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가 된다. 그런데 A매치 데뷔전 전날 밤 강수일은 ‘도핑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통보를 받는다. 수염이 나게 하려고 발모제를 발랐는데 거기서 금지약물 성분이 검출된 것이다. 대표팀이 머물던 말레이시아에서 홀로 귀국한 강수일 앞에는 더 험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다섯 개 기관으로부터 각기 다른 징계처분을 받았다. 강수일은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으나 결국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2년 자격정지를 받아들여야 했다. 징계 기간에 음주운전이 적발돼 “아직 정신 못 차렸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강수일은 지금 일본 프로축구 J2(2부리그) 자스파 쿠사츠 군마 소속이다. 자스파는 J2 22개 팀 중 최하위다. 강수일은 자격정지 기간이 끝난 뒤 두 번째 출전 경기(5월 17일)에서 골을 넣었다. 다음 경기엔 어시스트, 그 다음 경기에 또 골을 기록했다. 그러다 아킬레스건 부상이 찾아왔다. 지금은 훈련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그 와중에 ‘강수일이 소속팀 제주 유나이티드의 동의 없이 이적했다’며 그를 ‘탕아(蕩兒)’ 취급하는 기사가 나왔다.
 
지난달 말, 강수일이 훈련하고 있는 군마현 마에바시(前橋)를 찾아갔다. 도쿄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걸리는 곳이었다. 강수일은 “저를 보러 찾아오신 거예요?”라며 반색을 했다. 훈련을 지켜본 뒤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소설로 쓰면 잘 팔릴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킬레스건 부상, 몸도 마음도 힘들어”
2. 자격정지 징계가 끝나 자스파 쿠사츠 군마 소속으로 2년 만에 공식경기에 출전한 강수일.

2. 자격정지 징계가 끝나 자스파 쿠사츠 군마 소속으로 2년 만에 공식경기에 출전한 강수일.

-‘자스파(The Spa) 쿠사츠’는 온천으로 유명한 쿠사츠(草津) 지역 목욕탕 종사자들이 만든 팀이라면서요.
 
“그렇게 들었어요. ‘목욕탕 때밀이들이 만든 팀’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원 프로 선수들입니다. 연고지도 쿠사츠에서 마에바시로 옮겼죠. 재정이 열악해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하지만 분위기는 참 좋습니다.”(이 팀의 1년 예산은 55억원 정도로, 같은 J2 소속인 나고야 그램퍼스(600억원)의 10%도 안 된다.)
 
-어떻게 이 곳까지 오게 됐는지.
“징계 기간엔 다시 축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만 갖고 버텼어요. 그런데 입단 테스트를 한 팀에서는 차일피일 연락을 미루고, 이젠 정말 힘들다 싶었는데 군마에서 제안이 온 거죠. 당장 지난 1월 짐을 싸서 이곳으로 왔죠.”
 
-어떤 마음으로 2년을 버텼나요.
“2년씩이나 징계가 나올 줄 몰랐으니 버틸 수 있었죠. CAS 재판이 잘 마무리될 줄 알았어요. 근데 2016년 1월에 받은 재판의 결과 발표가 계속 미뤄지는 겁니다. 결국 6월 말에 FIFA가 요청한 대로 ‘2년 자격정지’가 확정됐어요. 당시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FIFA 회장에 출마하면서 FIFA 수뇌부 비리를 폭로했고, FIFA가 정 회장에게 자격정지 6년을 때렸거든요. 그 불똥이 저한테 튄 거 아닌가 싶어요. 고의로 약물을 한 선수도 그 정도 중징계는 안 받았거든요. 게다가 저는 국가대표 경기를 뛴 적도 없는데 FIFA가 그렇게 눈을 부릅뜨고 챙길 일이 아니었죠.”
 
-생활도 어려웠겠네요.
“제주에서 임의탈퇴 당해 월급이 한 푼도 안 나왔어요. 어머니와 (재혼한)아버지 생활비 보내 드리고, 재판비·변호사비 등등 돈은 막 들어가는데 어쩔 수 없어 대출을 했죠. 순식간에 6000만원까지 올라갔어요. 모델 쪽 일도 기웃거려 보고, 심지어 용돈 준다기에 중국 조기축구회 같은 데도 가 봤어요. 배 나온 아저씨들이 유니폼도 안 맞춰 입고, 전반 끝나고 라커룸에서 담배를 어찌나 피워대는지.”
 
-2년 쉬었는데도 복귀해서 3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올렸는데.
“그만큼 절박했던 거죠. 다시 축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했어요. 그런데 한 번도 안 아팠던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팀은 계속 지고…. 게다가 전 소속팀 제주와의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아 늘 부담과 불안함이 있었어요. 내 목표는 다시 국가대표가 되는 건데 내가 이런 목표를 가져도 되나 싶고. 자신이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어서 참 힘들어요.”
 
“다문화 아이들 위해서라도 일어설 것”
3. 복귀 2경기 만에 골을 넣고 동료와 기쁨을 나누는 강수일. [사진 강수일, 중앙포토]

3. 복귀 2경기 만에 골을 넣고 동료와 기쁨을 나누는 강수일. [사진 강수일, 중앙포토]

점심을 먹고 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 도쿄로 가는 승용차를 탔다. 운전은 자스파 코치 겸 통역인 임호철 코치가 했다.
 
“강수일을 둘러싸고 많은 일이 있었다. 이건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것 하나만 말해 보라”고 했다. 즉답이 튀어나왔다. “음주(운전)요.”
 
강수일이 말을 이었다. “도핑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였어요. (발모제)그게 뭐라고 발라서…. 근데 음주운전은 진짜 잘못한 거죠. 그걸로 인해 무지로 한 실수도 잘못으로 바뀌고, 그 동안 쌓아온 모든 게 무너졌으니까. 처음엔 겁이 나서 친구가 운전했다고 거짓말 했다가 나중에 들통나면 일이 더 커질 것 같아 현장에서 제가 했다고 실토했어요. 그런데 기사에는 ‘추궁 끝에 자백했다’고 나왔더라고요.”
 
-그렇게 후회할 일을 왜 했죠.
“객기죠. 도핑이 터진 뒤 프로축구연맹에서 15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고 구단에서도 자체 징계를 줬어요. 징계를 다 받고 복귀하려는데 축구협회에서 또 6개월 징계를 내렸어요. 그런데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무슨 6개월이냐. 1년은 줘야지’ 하고 나왔고, FIFA에선 ‘무슨 1년이야. 2년 정지 줘야 해’라고 했어요. 도대체 중심을 잡을 수가 없고, 내가 뭔데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나 싶어서 자포자기 심정이었죠.”
 
-이건 정말 억울하다 싶은 건 뭔가요.
“억울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해요. 뭐라도 가진 사람이 뺏겼을 때 억울한 거지, 난 아무 것도 없는데. 뭔가를 이룰 시기에 다 잃어버리고 부모님도 모셔야 하는데 아직 결혼도 못했고. 적지 않은 나이에 뭔가를 다시 해 보려고 허덕거리는 게 불쌍해요.”
 
-힘든 시기를 그래도 잘 견딘 힘은 뭔가요.
“부모님이죠. 국가대표에 뽑혔을 때 20년은 젊어지신 것처럼 건강이 좋아지셨어요. 사실 나 자신도 대표팀에 뽑혀 월드컵 예선 치르러 간다는 게 안 믿어졌는데 부모님은 오죽하셨겠어요. 그 분들을 다시 행복하게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한때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희망이었는데.
“지금도 그 아이들에게 제일 미안해요. 제 롤 모델이 하인스 워드(흑인 혼혈 미식축구 스타)였고, 저도 그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다문화 아이들 초청 행사는 꾸준히 열고 있어요. 작년에도 80명 초청해 축구대회와 클리닉 열어 줬어요. 저희 모임(아미띠에) 선수들이 회비를 모으고 저도 뛰어다니면서 스폰서 받아 왔죠.”
 
차는 도쿄 시내로 접어들었다. 밉든 곱든 강수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라고 했다. 그는 “뭔가를 깨달은 뒤에 바꾸려고 하면 이미 늦어요. 근데 사람들은 경험 안 해 보면 안 바뀌죠. 저 같은 사람은 사건사고의 표본인데, 저처럼 후회하지 말고 조심조심 살았으면 좋겠어요.”
 
강수일이 말을 이었다. “많은 기대와 사랑을 받은 선수로서 실망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제주 구단에도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이고, 살아야 해서, 제가 한 선택에 흔들릴지언정 후회는 없어요. 다시 일어설 겁니다.”
 
강수일과 헤어지고 몇 시간 뒤에 카톡이 왔다.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메시지였다. ‘반드시 다시 올라서겠습니다. 반드시요!!’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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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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