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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피작의 오너 자상한 마농쿠

와인 이야기
티에리 마농쿠가 네 번째로 병입한 샤토 피작의 1949년산 와인.

티에리 마농쿠가 네 번째로 병입한 샤토 피작의 1949년산 와인.

 보르도 그랑 크뤼 만찬에 참석했을 때였다.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 한 분께 지나가던 샤토 오너들이 계속 인사를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생테밀리옹의 전설로 알려진 티에리 마농쿠(Thierry Manoncourt, 1917년 출생)로, 샤토 피작(Chateau Figeac)의 오너였다.  
 
보르도엔 수많은 샤토 오너가 있지만, 모두가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농쿠에 대한 지역 사람들의 존경심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임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지인들은 그가 젊었을 때 생테밀리옹 지역의 어느 와인이든 눈 가리고 시음해도 샤토의 이름과 빈티지를 정확히 맞혔다고 전했다.  
 
샤토 피작은 1892년 마농쿠의 증조부인 앙리 드 슈브레몽이 구입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마농쿠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일군에게 붙잡혔다가 종전 후 풀려 나와 1943년 피작의 양조장에 몸담게 되면서 체계적인 양조기술을 습득했다.  
 
또 생테밀리옹 지역이 메독 지역과 같은 와인 등급 설정이 필요하다고 판단, 적극적으로 위원회 일원으로 참석하며 지금의 생테밀리옹 등급체계를 완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생테밀리옹은 1855년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메독의 등급체계와 달리 매 10년마다 재심사를 거쳐 새롭게 등급을 정하는데, 피작은 최고 등급 B그룹에 등재됐다. 피작보다 우위의 최고등급인 A그룹의 샤토는 오존과 슈발 블랑뿐이었다(현재는 샤토 파비와 안젤뤼스가 추가됐다).  
 
그러나 지금의 슈발 블랑의 명성은 피작의 포도밭 일부를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마농쿠의 사촌이 포도밭 일부를 팔아야만 했던 상황을 이야기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당시엔 슈발 블랑이 지금처럼 유명해질 것으로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마농쿠에 대한 기억은 몇 개 더 있다. 한번은 보르도 시음회에 참석했다가 피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날 다른 샤토에서 저녁 약속이 있어 외출했다가 밤 11시쯤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하얀 종이로 화살표 표시가 보여 따라가 보니, 거실 테이블 위에 그날 저녁 시음했던 와인을 필자를 위해 남겨 놓은 것이 보였다. 그의 자상함에 감동했고 야밤에 혼자 거실에 앉아 피작의 4개 빈티지를 음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또 한 번은 피작에서 마농쿠의 딸과 사위, 사촌들이 함께한 저녁 자리였다. 코스마다 다른 빈티지가 나왔는데, 마지막에 나온 와인은 이미 디켄터에 담겨 있었기 때문에 몇 년 산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농쿠는 필자에게 “그간 잘 배웠는지(?) 알아보겠다. 빈티지를 맞혀 보라”고 했다.  
 
마셔 보니 색은 아주 오래되어 오렌지빛을 띄었지만 입안에선 신선함이 가득했다. 조심스럽게 “60년대 정도”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는 살짝 미소를 짓더니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며 병을 보여주었다. 1949년 산이었다. 그는 1943년부터 병입에 관여했는데, 47년과 48년을 거쳐 생애 4번째로 병입한 귀한 와인이었다.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은 타닌 성분이 다시 분해되면서 신선한 맛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올드 빈티지의 정수였다.  
 
마농쿠는 2010년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있었던 2006년 생테밀리옹 등급 심사에서 오존이나 슈발 블랑과 같은 등급을 샤토 피작이 받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이루진 못했다. 하지만 와인 마니아들은 피작 와인의 숙성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가 남긴 50개 이상의 빈티지들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김혁 와인·문화·여행 컨설팅 전문가
www.kimhyu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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