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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날씨 예측 실패 딛고 합리성 쌓는 게 과학

[기후변화 리포트] 기상청 수퍼컴을 위한 변명
서울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달 19일 오후 시민들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여의도공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달 19일 오후 시민들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여의도공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기상청은 예보가 틀릴 때마다, 550억원짜리 수퍼컴퓨터를 사용하면서도 왜 이 모양이냐는 비난을 받는다. 이때 언론에서 인용하는 기상 과학자의 발언은 대부분 “향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로 끝난다. 이렇듯 과학자는 예측에 확고한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반면, 사람들은 확신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가능하지 않은 정확한 예보를 약속하는 것으로는 이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감을 진실성이라고 착각하는 세상에서 확신하지 않는 것은 나약한 태도가 아니라 진정 강인한 태도일 수 있다. 확신하지 않기에 기존 체계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치열하게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2015년 말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초대형입자가속기에서 물질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신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 후 이에 대한 논문 500여 편이 쏟아졌는데, 지난해 8월 초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지난해 우리가 본 신호는 결함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 당시 10조원을 사용한 초대형입자가속기에 대한 그 어떤 비난도 없었다. 오히려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이번 결과도 과학의 성공이고 과학이 하는 일”라고 주장했다.
 
 
날씨예측모델은 과학 집대성한 체계
과학이 실패도 성공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과학의 힘은 확실성이 아니다. 우리의 무지가 어디까지인지를 날카롭게 인식하는 데서 온다. 과학의 대답들이 확정적이어서 믿을 만한 게 아니다. 지식의 기나긴 역사 가운데 한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합리적인 대답이므로 믿을 만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과학의 결과는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개선될 수 있는 상태에 있다. 즉 과학의 합리성이 확실성을 보장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러므로 물질의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도 과학이 된다. 결국 이어지는 실패가 그것을 딛고 마침내 성공에 이르게 할 것이다.
 
 
날씨예측도 맞고 틀림보다도 그 근거가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 합리성이 우리가 예보를 할 수 있게 하고 개선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날씨예측모델은 지금까지 인류가 날씨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과학을 집대성한 체계이며 수퍼컴퓨터를 이용해야 운영할 수 있다. 아직 이보다 더 합리적인 예측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기상 과학자가 날씨예측에 수퍼컴퓨터를 사용하겠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합리적 수준을 높이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수퍼컴퓨터는 투자 대비 효과의 대상이기 이전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이 합리적 사회를 지향한다면 마땅히 치러야 할 비용이다. 휴전선을 지키는 군인을 투자 대비 효과로 판단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예측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지배한다. 계단을 내려갈 때조차도 일일이 그 높이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계단 높이가 일정하다고 예측하기에 뛰어 내려갈 수 있다. 예상과는 달리 계단 높이가 다른 곳이 있다면 발을 헛디딜 가능성이 커진다. 그냥 막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축구공도 잘 차려면 공의 이동을 예측해야 한다. 이렇듯 예측을 해야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삶을 꾸려 갈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완벽한 예측의 부재는 창의적인 영역으로 나가게 하는 선결 조건이 된다.
 
우리 각자는 유일한 삶을 살 수밖에 없지만, 미래는 무수한 삶이 있을 수 있다. 날씨예측모델도 유일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결정론적 방정식 체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유일한 결과가 확실한 예측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하나의 결정론적 예측보다도 여러 개의 예측을 이용한 확률 예측이 더욱 자연스럽다. 여러 초기값을 이용해 날씨예측모델로 여러 개의 예측(앙상블 예측)을 수행한다. 그 다음 산출된 예측결과들을 함께 분석하면 개별 예측보다 예측 오차를 줄일 수 있다. 이와 함께 앙상블 예측은 얼마나 예측이 빗나가는지의 정도인 불확실도(신뢰도)를 산출할 수 있다.
 
시인 이성복은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라 했다. 빗나갈 수밖에 없는 예측이라면,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옳은 전략이다. 설명할 수 있는 불확실성이라면 거기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측이 얼마나 빗나갈지 그리고 빗나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날씨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은 과학의 한계이지만, 예측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의 새로운 영역이다.
 
철학자 볼테르는 적어도 1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755년 리스본 대지진에 대해 “리스본 사람들은 지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리스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라고 했다. 리스본이 대도시가 아니었다면 그 피해는 훨씬 작았을 것이다. 피해는 자연 현상의 강도뿐만 아니라 환경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앞으로 예보는 신뢰도와 함께, 환경 조건에 따른 피해 영향을 파악해서 위험도를 정량화해야 한다.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의 언급처럼, 어떤 현상에 대한 위험을 숫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모른다는 것은 그것을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위험이 정량화되어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보다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우리가 자연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어
예측은 단지 미래를 예견하는 차원을 넘어 미래를 통제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날씨예측도 불확실성이 포함될 수밖에 없으므로, 기상 재난과 관련된 모든 계획과 정책은 아무리 주의 깊게 고려한다 해도 결함이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혼란스럽지만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안정성을 가져오는 힘이 되기도 한다. 예측 실패의 결과가 치명적일 경우라면, 이런 불확실성은 신중함으로 이어지고 그만큼 오류와 재앙의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가 예측에 맞춰 작동되기도 한다. 이에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경제이다. 경제예측모델은 경제이론에 기반을 두어 수많은 방정식 체계로 구성되고 컴퓨터만으로 풀어 낼 수 있다. 그래서 경제예측은 과학이고, 굳이 말하면 날씨예측과 비슷하다. 예측된 경제성장률에 따라 정부는 예산 계획을 수립하고 경영자들은 투자를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날씨예측이 있어야 수자원을 제어하고, 전력 수급을 결정하고, 농산물 생산에 대해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이처럼 앞으로의 날씨예측은 생활 편이와 자연재난 대응뿐 아니라 물·식량·에너지에 대한 국가전략 분야로 확대되어야 한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인간은 불확실한 상태에서 벗어나려 한다. 시험에 붙을까 떨어질까, 내가 손해를 보게 될까 아닐까? 일단 판정이 내려지면 어쨌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겠지만, 판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선 인간은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을 느낀다. 그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에서도 가장 경계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선진사회일수록 정책의 투명성이 높고 사회 시스템이 예측 가능하게 돌아간다. 이것이 곧 국가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줄인다고 확실성만을 추구해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확실함은 현실의 복잡함과 모순을 놓치게 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확실함을 부여잡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욱 불안해진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미래라면 더는 미래가 아니다”라는 카를 포퍼 말대로 알 수 없는 미래로 인해 우리 삶은 더욱 역동적일 수 있다.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다. 예보에 불확실 정도를 포함하고 발생 가능성이 있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가늠해야 한다. 이 새로운 예보야말로 맞고 틀림에 승부를 걸고 있는 현재의 예보를 극복하게 할 것이다.
 
백영옥은 그의 수필에서 “누군가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준다는 건, 그 사람의 불안을 막아주겠다는 뜻이다.”라고 썼다. 연인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우리가 모두 지녀야 할 아름다운 가치이다. 날씨도 예측가능성을 보다 명확히 하면 우리 사회의 불안을 막아 줄 것이다. 이것은 기상과학자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가치이다.
 
 
날씨예측, 현실·가상 오가는 역동적 과정
기상청 육상예상일기도

기상청 육상예상일기도

전 세계에서 관측된 기상자료가 실시간으로 슈퍼컴퓨터에 입력된다. 즉, 실제 날씨가 관측을 통해 컴퓨터의 가상공간으로 들어온다. 그다음 불연속적이고 서로 이질적인 관측자료들이 연속적인 일정한 간격의 기상자료로 만들어진다. 이를 초기값으로 사용하여 날씨예측모델로 예측한다. 이 가상공간에서 예측된 결과는 실제 세계에 정보로 제공되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날씨 예측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오가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관측을 수행할 때 그것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만일 여러 곳과 여러 가지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날씨에 영향을 줄 만한 현상이 있다면 예측에 오차를 일으킨다. 날씨는 복잡(카오스)계이므로 관측에 포함된 작은 오차가 예측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한다. 시간이 흘러 예측이 현실이 되는 순간, 예측할 당시 안 보였던 것이 드러난다. 즉, 예측이 왜 틀렸는지를 알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날씨예측모델이 개선된다.
 
 
조천호 국립기상과학원(책임운영기관) 원장.
연세대 대기과학 박사. 국립기상연구소 지구 대기감시센터장, 지구환경시스템연구과장, 기후연구과장 역임. 미국 지구 시스템과학원 지구대기감시연구소 탄소순환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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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