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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기억창고 지으려 새벽이슬 밟으렵니다

[정재숙의 공간탐색] 건축가 승효상의 작업실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서가, 음악과 영화 감상실이 안 부러운 시스템을 갖춘 승효상 건축가의 작업실은 조선시대 사랑방을 연상시켰다. 위쪽에 보이는 대나무 중정이 베어버린 박달나무를 기리는 기념비다. 안충기 기자-화가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서가, 음악과 영화 감상실이 안 부러운 시스템을 갖춘 승효상 건축가의 작업실은 조선시대 사랑방을 연상시켰다. 위쪽에 보이는 대나무 중정이 베어버린 박달나무를 기리는 기념비다. 안충기 기자-화가

창작의 산실은 내밀한 처소다. 한국 문화계 최전선에서 뛰는 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작업하는지 엿보는 일은 예술가의 비밀을 훔치듯 유쾌했다. 창조의 순간을 존중하고 그 생산 현장을 깊게 드러내려 사진기 대신 펜을 들었다. 화가인 안충기 기자는 짧은 시간 재빠른 스케치로 작가들의 아지트 풍경을 압축했다.
 
이 연재물의 아홉 번째 주인공은 건축가 승효상(65)이다. 집이 사람을 바꾼다는 믿음, 건축은 개인이 아닌 공공의 소유여야 한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더불어 사는 집을 짓자는 ‘빈자의 미학’을 건축 화두로 내걸었다. 예술가 아닌 지식인 건축가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축을 꿈꾼다.

‘이로재’ 현판을 배경으로 승효상 건축가가 단출한 책상 앞에 앉아 지난 40년 건축 인생을 돌아보고 있다.

‘이로재’ 현판을 배경으로 승효상 건축가가 단출한 책상 앞에 앉아 지난 40년 건축 인생을 돌아보고 있다.

 
집 짓는 일이 직업인 건축가는 정작 자기 집은 어떻게 지었을까. 서울 대학로 뒷골목으로 접어드는 옛 서울대 사택(私宅)단지에 자리한 건축사사무소 이로재(履露齋)는 첫눈에 ‘승효상표’라고 알아볼 수 있다. 노출 콘크리트와 코르텐강(내후성 강판)을 쓴 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은 담 너머 이웃집들과 어깨를 겯고 덤덤히 서 있다. 2002년 조용한 주택가라는 사실에 반해 터를 잡은 뒤 15년 동안 30여 명의 후배와 130여 채 국내외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한 산실이다.
 
“1990년 처음 독립 사무실을 열 때는 동숭동 샘터사 건물 안에 세를 얻어 일했어요.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당시 주인이셨던 김재순 선생이 10년째 임대료를 한 푼도 안 올리신 거예요. 염치없이 너무 싸게 있었는데 제가 무심했던 거죠. 그날로 땅을 보러 다녔는데 마침 5분 거리에 맞춤한 곳이 나왔어요. 바로 계약했죠.”
 
첫 상호는 ‘TSC’였다. 이로재는 그의 첫 건축주였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1993년 그의 집 ‘수졸당’의 설계를 마쳤을 때 답례로 준 현판에 새겨져 있던 글귀다. 조선시대 명필이었던 창암 이삼만이 쓴 글씨의 뜻은 ‘이슬을 밟는 집’인데, 의역하면 가난하지만 효성 지극한 선비가 사는 집이다. 직업 특성이 새벽에 이슬을 밟는 일이 잦은 설계사무소이기에 옳다구나 싶었는데 정말 이 이름을 걸고 난 뒤 그의 마음에 변화가 일었다고 했다.
 
“당시 제 건축의 주제로 내세운 ‘빈자의 미학’과 맞물려 사유 방향이 절제와 검박으로 향했어요. 사무실을 찾는 건축주들도 이로재의 뜻을 묻게 마련인지라 긴 설명이 필요 없이 제 건축관을 알려주는 방향타가 됐죠.”
 
그가 일하는 방은 블록 담에 생콘크리트로 마감해 소박하다. 돈이 없기도 했지만 재료가 지닌 날것의 진정함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변이다. 영화보기용 대형 벽걸이 TV 외엔 길쭉한 책상과 빡빡하게 줄지어 선 서고뿐이다. 건축가이면서 글쟁이로도 이름난 그답게 장서가의 면모가 출중하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고유섭의 『조선미술사』,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인생의 책으로 꼽은 그는 “책은 대체로 두세 번씩 사게 된다”고 했다. 손님이나 후배가 집어가거나 빌려간 뒤 안 돌아와서 한 번, 필요한 시간에 찾지 못해서 또 한 번 산다니 훌륭한 독자다.
 
원래 집터에는 잘생긴 박달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고 했다. 그 나무를 살려 설계했는데 어느 날 잠깐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잡부가 나무를 베어버렸다.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으로 화가 났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죽은 나무를 위한 기념비로 그 중정에 대나무를 심었다. 책상 옆 벽면 전체를 장지문으로 하고 그 문을 열면 주차장으로 통하게 만든 점이 한옥의 사랑방을 연상케 한다.
 
그는 올 1년 이 사무실을 비워놓고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 초빙교수로 가 있다. 매주 13개 나라에서 온 31명의 건축학도들과 만나 지문(landscript)을 주제로 비평 지도를 하는 프로그램을 맡았다. 지문(地文)은 그의 건축방법론으로, 각 땅이 담고 있는 성질인 터 무늬에 대한 성찰을 말한다. 진행 중인 용산공원과 중국 푸저우(福州) 개인미술관,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 등의 설계 상황을 보러 잠깐 서울에 들어온 그는 “소통을 통한 공동체 복원에 바친 지난 몇 년을 돌아보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를 하면서 매일 적을 만들고 살았어요. 비난과 고발이 빗발쳤는데 정작 퇴임식을 하는 날, 시의회 의원들이 몰려와 필요한 자리의 중요함을 일깨워줬다며 인사하더군요. 도시 개발의 방향을 선회하게 한 점이 고맙다고요. 개발과 토목의 시대에서 재생건축의 시대로 가는 원리를 깨우쳐줬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할 일이 많죠. 동 주민센터 재생사업인 ‘찾동’을 비롯해 파출소를 주민안전센터로, 유치원과 유아원을 함께 나누면 훌륭한 지역사회의 사랑방 구실을 하죠.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이런 수평공동체의 부활은 다원민주주의 시대의 도시 풍경이 될 겁니다.”
 
그는 요즘 빈에서 “멍 때리는 즐거움을 누리며” 이제는 건축을 좀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70 나이에 육박하니 의미 있는 작업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에도 시달린다. 돈 안 되는 기념관, 빛 안 나는 공공건축에 쏟아부은 지난날이 감사할 뿐이지만 명작에 대한 아쉬움이 지는 석양을 다시 보게 만든다. “오래된 건축은 큰 기억창고죠. 이 시대를 기록할 수 있는 진실한 집을 짓기 위해 새벽이슬을 더 밟아야겠죠.”

 
30년 검도 수련이 40대 체력의 비결
서울 동숭길 이로재의 하루는 오전 7시에 열린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는 “머리, 허리, 손목” 고함이 골목길을 울린다.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지하 1층 다용도 마루방은 아침마다 검도장으로 변신한다. 8시30분까지 1시간30여 분 승효상 대표와 직원 20여 명이 전문 사범을 모시고 함께 검도를 수련한다. 밤샘 작업이 많은 건축가로서 60대 중반에도 40대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검도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친구 따라 검도부에 들어갔어요. 제가 71학번인데 유신체제 밑에서 휴업이 잦았고 서울대 시스템에도 실망한지라 건축 공부를 혼자서 열심히 했던 시절이죠. 그러고선 한동안 검도를 잊고 있었는데 아들이 중학교 들어갈 때 검도장에 데려가며 저도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30년 죽도를 잡은 손이 강건해 보인다. 마른 몸피에 바른 자세는 규칙적인 수련이 준 선물이다. 해외 출장과 답사 여행으로 서울에 없거나 부득이한 조찬 모임에 가야 할 때를 빼고는 늘 검도로 아침을 시작하기에 피로가 쌓일 틈이 없다고 한다. 3단 유단자로서 수련은 그의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이어질 도의 길이다.

 
승효상
1952년 부산생. 메가시티(거대도시)가 아닌 메타시티(성찰도시), 계급적 도시를 극복하는, 연대하는 공유도시를 설계하는 건축가. 땅의 기억, 사람 사이의 관계,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삶터의 복원에서 건축의 미래를 본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나와 빈 공대에서 수학했다. 김수근 건축가의 ‘공간’에서 15년을 일하고 89년 ‘이로재’를 개설한 뒤 파주출판도시 코디네이터, 제4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공동감독,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를 지냈다. 대표작으로 ‘수졸당’ ‘수백당’ ‘웰컴시티’ ‘노무현 대통령 묘역’ 등이 있으며 『빈자의 미학』 『지문』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등을 펴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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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