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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진실의 순간에 들어서” … 높아진 코리아 패싱 우려

美 전방위 대북 압박 가속화 파장
미국의 대북제재가 본격화하고 있다. 강도와 속도 양면에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북한이 미국을 사정거리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거듭하면서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에 근접하고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미 상·하원이 압도적 표결로 통과시킨 북한·이란·러시아 패키지 제재 법안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공식 발효됐다. 이 법안은 북한의 원유와 석유 제품 수입 차단, 북한과의 인력·상품 교역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북한 정권으로 들어가는 돈줄 죄기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대미 총력전을 펴고 있는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대화 제안을 일축하고 있다.
지난달 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제재에 여전히 소극적인 중국에 무역전쟁으로 으름장을 놓으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5일(현지시간)엔 미·중 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경제 활동에 실질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담은 대북제재 결의안 초안 표결에 나선다. 이 초안은 북한의 수출액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10억 달러(약 1조1260억원)를 감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미 재무부는 일단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해 징벌적 관세를 매길 수 있는 통상법 제301조 발동을 미뤘다.
 
대치와 타협을 숨 가쁘게 오가는 미·중 경합의 이면에선 한국을 배제한 미·중 빅딜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렇듯 외교안보 위기가 중첩되면서 한반도에 이중, 삼중의 파도가 몰려오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대북 압박 국면에서 국제적 제재와 공조의 대열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북한이 홀로 제재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판단해야 제재의 실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위원은 “압박 국면이 급변할 때에 대비해 유엔 제재에 포함되지 않는 범위에서 민간 교류의 끈은 계속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ICBM 도발로 북·미 대립 첨예화
전문가들은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현실이 패러다임 전환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기존의 대치 국면은 핵과 미사일 고도화에 열중하는 북한과 이를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통해 막아보려는 국제사회의 단계적 압박이 축을 이뤘다. 하지만 이젠 미국의 독자 제재와 ICBM 개발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북한의 속도전으로 판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중국을 통한 대북제재가 구체화되면서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며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놓고 미·중 간에 역대 최고 수위의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동북아 안보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화성-14형 시험발사를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화성-14형 시험발사를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미·중 간에는 전면적 경제·외교적 제재와 북한 정권 교체, 기습적인 군사 옵션 가능성, 대화 국면으로의 대반전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신성원 국립외교원 경제통상연구부장은 “지금은 미국의 본격적인 경제·외교 압박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며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군사적 옵션까지 테이블에 올려놨다고 공언하는 상황에서 관련 국가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비상하게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북핵·미사일 사태가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에 들어선 것”이라며 “북한의 핵무장 현실화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미 정보 당국의 평가 이후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고서라도 미국이 외교 자산을 투입해 전면 압박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미 국방정보국(DIA)은 북한이 지난달 4일 발사한 화성-14형 분석 결과 2018년엔 핵탄두를 탑재한 ICBM으로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이는 2020년에야 가능할 것으로 분석됐던 기존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관건은 북한이 대외 경제의 9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중국이 이번 국면에서 얼마나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이냐다.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패키지 제재법이 시행에 들어가면서 중국과의 대립각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중국과 러시아가 결국 비호해줄 것으로 믿고 줄타기식 도발을 하고 있는 북한에 격렬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 경제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중국도 인식하도록 하는 게 이번 제재의 주안점”이라며 “이러다가 북한 정권이 붕괴될 수도 있겠다고 느낄 정도로 중국이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라고 전했다. 우리 정부도 독자 제재 의지를 천명한 뒤 실무 부서에서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남북 교류가 거의 끊어지다시피 한 상황에서 실효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미국 경제도 내상을 입을 수 있는 강력한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정권의 돈줄 죄기가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있다. 대중 경제 보복과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까지 단언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행보에 중국이 일단 한발 양보하는 모양새지만 북한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원유 금수 등 결정적 조치에 대해선 좀처럼 물러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관계에 정통한 전직 대사는 “중국이 대북제재 강화에 전폭적으로 협력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북한과 함께 제재 대상이 돼 버린 러시아도 반발하고 있어 돈줄을 제대로 끊을 수 있을 것으로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유엔 제재 범위 안에서라도 중국의 역할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의 핵무장을 차단하기 위해 무엇보다 장비와 재료의 해외 조달을 막아야 한다”며 “북한이 목재 운반용으로 수입한 미사일 이동 트럭도 용도 위반을 들어 재반출시키거나 부품 공급을 차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대의 대북 압박과 별도로 급부상하고 있는 북한 정권 교체론, 이른바 미·중 빅딜론도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제 압박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경우 정권만 교체해 비핵화를 이룬다는 게 시나리오의 골자다. 비핵화의 대가로 미국은 미군 철수 또는 지상군 재배치 등으로 중국의 안보 우려를 덜어준다는 것이다. 신성원 연구부장은 “미국이 군사적 수단을 검토하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하는 쪽으로 정책 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석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 학계·연구기관·언론 등에서 레짐 체인지가 일제히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내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실현 가능성을 떠나 적대적 제휴 관계인 북·중 관계의 틈새를 파고들 여지가 있는 만큼 북한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중 빅딜 대응 레버리지 확보 시급
미·중 빅딜론과 맞물려 ‘코리아 패싱’(한국 배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중 빅딜은 “북한이 붕괴하면 한반도가 한·미 동맹 영향권에 들어갈 것”이라는 중국의 안보 불안을 해소시켜 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의 이해는 부차적인 것으로 떠밀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미·중 빅딜을 견제하기 위해선 한·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등 대응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양기웅 한림대 교수는 “미·중 빅딜은 동맹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의 이해가 같다”며 “한·일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게 되면 미·중의 빅딜 계산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최 부원장은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해 이 자산을 레버리지로 삼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말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1990년 이후 한·미 양국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한·미 동맹이 굳건하게 작동하고 있고 한·중 관계도 경제적으로 엮여 있는 등 세 나라는 상호의존적 관계”라며 “코리아 패싱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협상 국면 급선회 가능성 대비해야
그런 가운데 예측 불가능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거의 배제돼 왔던 군사 행동의 불씨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에게 북한에 대한 군사 옵션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공개되면서다. 마크 밀레이 미 육군참모총장은 최근 “대북 옵션 중 분명 좋은 옵션은 없지만 미국은 이제 나쁜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최 부원장은 “미국과 북한의 리더십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위기 지수가 높다”며 “군사 옵션은 전에도 언급되곤 했지만 트럼프의 전쟁 불사 발언으로 위협의 정도가 완전히 다른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고 진단했다.
 
신 전 차관은 “미국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을 수준이라고 판단할 경우 국지적인 제한 타격에 나설 수도 있다”며 “우리 정부와 세밀하게 협의하지 않고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북한도 다음달 정부 수립 기념일 또는 10월 당 창건 기념일을 전후해 6차 핵실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6차 핵실험은 ICBM에 탑재할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 여부를 평가하기 위한 것으로 고강도 추가 제재나 미국의 군사행동을 부르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는 북·미가 운전대를 180도 돌려 대화와 협상 국면으로 전격 전환할 가능성도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비해 우리 정부도 대북 창구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북 소식통은 “최근 노동신문을 보면 북·일 간 민간 교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민간 창구는 계속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다중 접근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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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