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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에게 시를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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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이 현안을 놓고 시(詩)로 대화하는 것은 오래된 대화의 기법이다. 동서양이 마찬가지다. 공자(孔子)도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 고 했을 정도다. 시는 본래 정치적 화법의 중심에 있었다.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의 한시(漢詩)가 화제가 됐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문 검찰총장을 임명하며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으셨다”고 하자 문 총장이 대만 학자 난화이진(南懷瑾)의 시로 대답했던 것이다.


 
하늘이 하늘 노릇하기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라네
집을 나선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고
농부는 비 오기를 기다리는데
뽕잎 따는 아낙네는 흐린 날씨를 바란다
 
 
이 시는 미묘한 파장을 불러왔다. ‘검찰개혁’의 총대를 멘 검찰총장이 청와대와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이 분분했다. 청와대는 “각계각층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대통령은 얼마나 힘드시냐는 의미였다”고 해석했다.
 
번역시로 보면 두 해석이 모두 그럴듯해서 원문을 찾아보니 문 총장의 애초 의도는 대통령의 어려움에 대한 위로로 보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첫 구절, 주천난주사월천(做天難做四月天). 사월 하늘(四月天)은 각박하고 변덕스럽고 힘들다. 하늘이 되었는데(做天) 하필 각박한 4월 하늘이 되었으니(做四月天) 얼마나 어렵겠느냐는 뜻이다. 첫 구절만 원문으로 읊고 해석을 붙였으면 깔끔하게 뜻이 통했을 것을, 뒷 구절까지 붙이는 바람에 해석 논란으로 번진 것이다. 실로 뒷부분은 입만 열면 검찰 개혁을 외치는 신 정권에 긴장하고 있을 검찰 조직을 위로하는 의미로 읽힐 수 있어서다. 문 총장의 시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져서인지 넘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결과적으론 검찰 조직도 위로하고, 대통령도 위로하는 두 개의 메시지를 동시에 던졌다.
 
시는 은유·비유·암시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어 대화 시작의 수단으로 이점이 많다. 대화를 하려면 상대의 의중을 알아야만 그 다음 단계로 진전할 수 있다. 만일 상대와 화합할 수 없는 의견차가 있다면 대화를 멈춰야 한다. 자칫 감정의 갈등으로 치달으면 견해차만 더욱 확실해져 소통이 안 된다. 이럴 때 자신의 의중을 은유적으로 알리면서 상대의 의중을 점잖게 떠보는 기법으로 시 만한 것이 없다. 직설법은 물러서기 어렵지만 시는 물러설 곳을 마련해 준다. 이게 바로 은유적인 ‘시의 대화’가 갖는 묘미다.
 
고대로부터 식자층의 시는 단순히 감성을 고양하는 문학적 용도로만 활용되지 않았다. 시는 주요한 정치적 대화의 수단이었다. 이방원(李芳遠)의 ‘하여가(何如歌)’와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는 시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국면을 바꾼 대표적 장면이다.
 
공자(孔子)는 시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공자가 당대 시 300여 편을 묶어 ‘시경(詩經)’을 편찬한 것은 모두가 아는 바다. 이런 공자의 시 사랑을 놓고 문학적·정서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하지만 공자는 평생 벼슬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주유하며 제후들에게 유세한 사람이다. 그의 가르침은 좋은 인간이 되라는 것을 넘어 좋은 정치인과 벼슬아치의 처신을 논한 것이었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시를 공부하는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시 삼백 편을 외웠더라도 그에게 정치를 맡겼을 때 잘 해 내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외교에 제대로 응대하지 못하면 시만 많이 외웠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자로편)
 
“시를 배워야 임금을 섬길 수 있다”(양화편)
 
이처럼 시는 정치적 언어로서의 이점이 상당히 많다. 시로 문답을 하면 말의 행간을 해석하기 위해 사색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폭넓은 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문 총장의 시에 대해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첫째, 둘째, 셋째로 나열하는 ‘직설법’으로 대응한 건 아쉬웠다. 이는 직설법밖에 없는 우리 정치인들의 화법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직설법은 의미가 분명하지만 물러설 곳이 없어 여유가 없고 전투적이다. 정치인들의 언어에 여유와 사색의 여백을 둔다면 이 각박한 정치현실이 조금은 숨쉴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정치인들에게 시 공부를 권하고 싶다.
 
 
양선희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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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