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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m였던 산이 45m로 …산 깎아 모은 흙으로 지반 높이는 리쿠젠타카타

 
 2011년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이 발생한지 약 6년반. 당시 최대 진도 9규모의 지진과 곧이어 발생한 높이 24m의 쓰나미는 도호쿠 지역 주민 수십만명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갔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더딘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복구와 부흥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와테현(岩手県)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는 신도시 공사 현장을 방불케 했다.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가 있었던 곳이라는 흔적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안전모를 쓴 인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굴착기 20여대와 트럭들이 쉼없이 오가고 있었다. 
 
시는 인근에 있는 산을 깎아서 나온 흙으로 지반을 높이는 공사가 수년째 진행중이다. 그 사이 높이 250m였던 산은 45m까지 키가 줄었다. 지반은 10m로 높아졌지만 더 이상 주거지역으로는 사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대지진 당시 최대 높이 20m의 쓰나미가 덮쳤기 때문에 주거지역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것이다. 
 
지반을 높이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이와테현 리쿠젠다카다시. [사진=윤설영 도쿄특파원]

지반을 높이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이와테현 리쿠젠다카다시. [사진=윤설영 도쿄특파원]

이와테현 리쿠젠다카다시 복구현장. 인근 산을 깎아서 나온 흙으로 지반을 높이는 공사를 했다. [사진=윤설영 도쿄 특파원]

이와테현 리쿠젠다카다시 복구현장. 인근 산을 깎아서 나온 흙으로 지반을 높이는 공사를 했다. [사진=윤설영 도쿄 특파원]

 
“여기는 아직 가설도로입니다. 지반 공사가 끝나면 이 도로도 폐쇄 할 겁니다”
 
높이 12.5m, 길이 2㎞의 방파제도 최근 완성됐다. "바다가 보이지 않아 싫다"는 주민 목소리도 있었지만,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쓰나미에 대비하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와테현 리쿠젠다카다시에는 아직도 곳곳에 빈 건물이 방치돼있다. [사진=윤설영 도쿄 특파원]

이와테현 리쿠젠다카다시에는 아직도 곳곳에 빈 건물이 방치돼있다. [사진=윤설영 도쿄 특파원]

 
하지만 아직까지 활발했던 마을의 모습까지 되찾은 건 아니다. 미야기현(宮城県) 미나미산리쿠쵸(南三陸町)는 아직도 가설주택에서 피난 중인 세대가 300세대에 이른다. 최근엔 구마모토(熊本) 지진, 도쿄올림픽 준비 등으로 건설 수요가 급증해 도호쿠 지역의 재건 작업은 다소 속도를 잃은 상황이다.
 
어업에 의존했던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생업을 포기한 채 지내고 있다. 바다는 예전 상태로 회복됐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간간히 미역이나 굴 양식 정도만 할 뿐이다. 이와테현 주민인 아즈마야 케이코(67)씨는 “배도 잃고, 집도 잃고, 가족도 잃은 채 혼자 사는 고령자가 많다”면서 “대피소와 가설주택을 전전하느라 커뮤니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쵸 지역 역시 쓰나미 피해지역의 지반을 10m로 높이는 지반공사가 진행중이다. 당시 최고 24m 높이의 쓰나미가 이 지역을 덮쳤다. [사진=윤설영 도쿄특파원]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쵸 지역 역시 쓰나미 피해지역의 지반을 10m로 높이는 지반공사가 진행중이다. 당시 최고 24m 높이의 쓰나미가 이 지역을 덮쳤다. [사진=윤설영 도쿄특파원]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쵸 복구 현장. [사진=윤설영 도쿄 특파원]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쵸 복구 현장. [사진=윤설영 도쿄 특파원]

 
정부의 지원책은 느렸다. 정부는 어민들에게 무상으로 배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오히려 지역 부흥에 팔을 걷고 나선 건 지역주민들이었다. 이와테현 게센누마(気仙沼)시 수산물가공업 15개 회사는 2012년 시시오리(鹿折)가공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들은 공장과 냉동창고, 사무실 등 큰 돈이 들어가는 생산설비를 공동으로 마련했다. 세계 3대 어장으로 손꼽혔던 지역인만큼, 수산물가공업을 번창시켰던 노하우를 살려 지역경제를 살려보자며 힘을 모았다.
 
시시오리 가공협동조합의 호소야 카오루 사무국장. [사진= 윤설영 도쿄 특파원]

시시오리 가공협동조합의 호소야 카오루 사무국장. [사진= 윤설영 도쿄 특파원]

 
호소야 카오루(43) 협동조합사무국장은 “대지진 직후 유통채널이 절반으로 줄었다가, 지금은 전국 20개사로 납품하고 있다. 대지진 이전과 비교해 60~70% 수준까지 회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지원책 속도가 상공인들의 기대의 딱 절반 수준”이라면서 “건축 규제, 건설업자 부족, 노동력 부족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일본 전체가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지만 도호쿠 지역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최근 미나미산리쿠쵸에 문을 연 쇼핑센터는 시급 1200엔(일본 전국 평균 최저임금 848엔)에도 점원을 구할 수가 없었다.  
 
사토 진 미나미산리쿠쵸 정장(우리나라의 읍·면 사무소장에 해당)은 “시급 1200엔을 지급하면서 언제까지 지속가능할 지 의문이다. 지역 전체적으로 일자리는 있는데 일손은 없는 상황”이라면서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을 긴급 수혈을 하고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만들어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마을은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도쿄에서 잘 나가는 대기업 영업맨이었던 다카하시 카츠요시(55)씨가 2012년 하던 일을 모두 접고 리쿠젠타카타시로 온 것은 이 지역 젊은이들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폐허의 땅에서 벤처기업을 시작했다. 대지진과 쓰나미 속에서도 살아남은 동백꽃을 브랜드화해 녹차, 술잔, 파스타면 등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제품의 연구개발과 공장 설비 등에 1억5천만엔(약 15억원)을 쏟아부은 끝에 5년만에 판로가 열렸다. 그 사이 회사 직원은 3명에서 20여명으로 늘었고, 그를 보고 용기를 내 회사를 시작한 젊은이도 3명이나 나왔다.  
 
다카하시 카즈요시 사장이 동백꽃을 브랜드화 한 지역특산물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제조업을 통해 지역 젊은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윤설영 도쿄 특파원]

다카하시 카즈요시 사장이 동백꽃을 브랜드화 한 지역특산물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제조업을 통해 지역 젊은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윤설영 도쿄 특파원]

 
그는 “재해지역 제품은 처음엔 불쌍해서 사주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때문에 질 좋은 상품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다”면서 “제조업을 통해 지역의 젊은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고 말했다.
 
주민회관의 시계는 쓰나미가 덮쳤던 오후 2시 46분을 가리키고 있다. 당시 쓰나미는 이 건물 1층 천정까지 도달했다. [사진=윤설영 도쿄특파원]

주민회관의 시계는 쓰나미가 덮쳤던 오후 2시 46분을 가리키고 있다. 당시 쓰나미는 이 건물 1층 천정까지 도달했다. [사진=윤설영 도쿄특파원]

 
도호쿠 지역 주민들은 6년전 대재해의 기억을 잊으려고 하지 않았다. 미야기현 도쿠라(戸倉) 주민회관의 시계가 당시 쓰나미가 덮쳤던 2시 46분에 맞춰져 있는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재해는 집과 사람을 앗아갔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그들의 노력까지 앗아가지는 못한 듯 했다.
 
 미나미산리쿠쵸 주민인 아멜리아 사사키씨는 “이 지역엔 지난 100여년간 6번의 쓰나미가 왔고, 그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복구에 매달렸지요. 그런데도 왜 계속 여기서 사느냐고 물어봐요. 일과 가족, 삶의 역사가 모두 이 곳에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 정착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리쿠젠타카타(이와테현)·마나미산리쿠(미야기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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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