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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스타 피아니스트는 2000년생

10세에 게르기예프에게 발탁되고, 대형 국제 무대에서 먼저 데뷔한 피아니스트 임주희. 1일엔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쇼팽을 연주했다. [사진 평창대관령음악제]

10세에 게르기예프에게 발탁되고, 대형 국제 무대에서 먼저 데뷔한 피아니스트 임주희. 1일엔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쇼팽을 연주했다. [사진 평창대관령음악제]

 “아마도 다음 스타 피아니스트는 2000년생 중에 나올 것 같다.” 한 중견 피아니스트가 한 말이다. 2000년생 두 피아니스트가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 음악계에서 입김이 가장 센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발탁, 데뷔시킨 임주희가 2000년 10월 생이다. 또 청소년 국제 대회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지난해에는 성인과 경쟁하는 콩쿠르까지 우승한 이혁이 2000년 1월 생이다. 
 
둘 다 국내 음악 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어려서부터 홈스쿨링을 했고, 해외에서 먼저 연주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국내 예술학교 진학, 해외 유학, 국제 콩쿠르 입상이라는 그간의 ‘피아니스트 성장 관행’을 깨고 실력ㆍ경험을 쌓고 있다.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기분이 제일 좋고 정신이 멀쩡해진다”고 하는, 긴장감과 주목받기를 즐기는 17세들이다. 이달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각각  무대에 오른 루키 피아니스트들을 만났다.
 
#타고났다 밖에 할 수 없는 재능, 임주희
게르기예프는 임주희가 보낸 연주 DVD를 보고 무대 기회를 줬다. 2010년 러시아 백야 축제에 초청됐고, 2012년 게르기예프와 런던 심포니가 내한했을 때 깜짝 협연자로 소개됐다. 2014년부터는 지휘자 정명훈의 총애를 받았다.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쇼팽ㆍ베토벤 협주곡을 협연했고 올 9월에는 정명훈, 도쿄필하모닉과 함께 도쿄에 데뷔한다.
 
1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임주희는 쇼팽 협주곡 1번 1악장을 연주했다. 만 16세였지만 음악에 대한 확고한 생각으로 연주를 끌고 나갔다. 배워서라기보단 본능적으로 음악을 만들었고, 기술적으로 화려한 부분보다는 음악적으로 노래하는 부분에서 재능이 빛을 발했다.
 
“이번 연주를 준비할 시간이 2주 정도 밖에 없었어요.” 임주희의 가장 큰 특징은 처음 연주하는 곡도 빠르게 익히고 외워서 무대에 올린다는 점이다. 2014년 쇼팽 협주곡 1번의 전악장(3악장)을 연주할 때는 악보를 처음 보기 시작하고 2달 만에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했다. 같은 또래 피아니스트들이 한 악장 정도를 익힐 만한 기간이다.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부모 덕에 어려서부터 피아노 소리는 원없이 들었다. 돌쯤 됐을 때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정확히 부를 정도가 됐다. 연습벌레는 아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것보다 책과 영화 보는 시간이 더 많고 그림 그리기도 좋아해요”라고 했다. 한 곡의 완성을 빨리 하다보니, 음악과 관련된 책ㆍ영화도 보고 생각할 시간이 많이 생긴다.
 
다만 무대에서 연주할 때는 무섭게 집중한다. 임주희는 “정신이 가장 멀쩡할 때가 바로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인 것 같아요”라면서 웃었다. “곡 생각을 하면 주변이 안 보이고, 연주 직전까지는 긴장하다가도 음악이 시작되면 정신이 맑아져요.” 되도록 다양한 작곡가의 많은 작품을 연마하는 것이 임주희의 목표다. 이미 러시아와 한국의 권위있는 무대에서 연주한 협주곡이 하이든ㆍ모차르트ㆍ베토벤ㆍ라벨 등 전 시대에 걸쳐있다. 콩쿠르도 명문 음악학교도 아닌 대형 국제 무대에서 경력을 먼저 시작한 임주희의 성장 한계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연습도 연주도 즐거운 피아니스트, 이혁
지난해 파데레예스키 국제 콩쿠르에 최연소로 참가해 우승한 피아니스트 이혁. 첫 참가한 성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 이혁 제공]

지난해 파데레예스키 국제 콩쿠르에 최연소로 참가해 우승한 피아니스트 이혁. 첫 참가한 성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 이혁 제공]

피아니스트 이혁은 지난해 11월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20대 후반까지 참가한 대회였고, 이혁은 참가자 중 최연소였는데 우승을 했다. 게다가 모차르트 협주곡 21번을 연주하고 이틀 후에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했을 정도로 강도가 만만치 않은 대회였다.
 
이혁은 “청소년 콩쿠르만 나가다가, 성인 대회에 나오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문들이 어려워질수록 그는 더 즐거워졌다. “몸은 힘든데 이상하게 더 재미있더라고요. 나중에는 콩쿠르라는 부담이 없어지고, 청중에게 이 음악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이혁은 초등학교 입학 한 달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했다. 바이올린ㆍ피아노를 동시에 하고 있었는데 음악에 시간을 더 많이 쓰고 싶어서였다. 이혁은 “어렸을 때도 악기 연습을 한 번도 지루해한 적이 없어서 선생님들이 신기해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혁은 어려서부터 국제 콩쿠르에 도전했다. 특히 2013년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한 청소년 콩쿠르의 바이올린 부문에 나갔다. 심사위원이었던 모스크바 중앙음악원 교수가 그를 발탁했는데 이혁은 결국 피아노로 러시아 유학을 떠났다. 지금은 모스크바 중앙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 중이다.
 
전형적으로 무대를 즐기는 스타일의 피아니스트다. “연주를 해야만 즐거운 기분이 들고, 새로운 작품을 익히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음악이 꼭 놀이하는 것만 같아요.”
 
한국에서는 이혁의 연주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다. 5일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멘델스존 2중 협주곡을 연주한 후에는 한국 연주 일정이 없다. 유튜브로 이혁의 연주를 들어보면 기술적으로 손색이 없고 완벽하다. 그는 “어릴 땐 테크닉이 너무 부족해서 고민이었기 때문에 요샌 기초적인 손가락 연습에 시간을 많이 썼더니 기술적으로 좋은 평을 들어요”라고 말했다.  
 
미래에는 작곡가의 뜻을 전달하는 피아니스트가 되려 한다. 이혁은 “작곡가의 심정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 전달해서, 제 연주가 끝나면 청중도 작곡가의 생각을 똑같이 느낄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국내 무대에서는 통 실력 확인할 무대가 없지만 국제 무대에서는 어려운 프로그램을 해치우며 활동 중이다. 이달 11일엔 폴란드에서 쇼팽 스케르초ㆍ폴로네이즈ㆍ녹턴ㆍ발라드와 베토벤 소나타, 리스트 헝가리안 랩소디 등을 한 무대에서 연주한다. 연주 곡목 만으로도 성장하는 17세의 기세를 알 수 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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