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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권익 증진' VS '소송 남발 부작용'…집단소송제의 명과 암

  2011년 미국의 다우코닝이 제조한 실리콘을 이용해 가슴확대 수술을 받은 한국인 여성 660명이 총 390만 달러(약 43억5000만원)의 배상금을 받았다. 이 실리콘 때문에 부작용을 겪은 세계 각국 피해자들이 다우코닝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데 따른 배상금이 한국인 피해자에게도 뒤늦게 지급된 것이다. 
 
피해자들은 1994년 해당 실리콘이 건강에 해롭다는 점을 회사가 알고도 숨겼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오랜 법정 다툼 끝에 미국 연방 대법원은 2004년 다우코닝에 24억 달러의 배상기금을 조성하라고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주게 된 다우코닝은 파산보호(법정관리)를 신청하기도 했다.
 
집단소송제의 '무서움'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발표한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할 것을 공식화하면서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찬성 측에서는 기업의 그릇된 행위에 대해 소비자들의 대항력을 키울 수 있다고 반기는 반면, 반대 측에서는 악의적인 소송 남발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집단소송제란 기업의 잘못된 행동으로 여러 소비자가 피해를 봤을 때 소비자 한 명 또는 일부가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들도 별도의 소송 없이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다. 한국에선 2005년부터 증권 분야에 한해 집단소송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소송허가 규정이 까다로워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2005년 시행 이후 제기된 소송은 겨우 9건에 불과하다. 이에 소송허가 규정을 완화하고 적용 산업 분야도 확대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이는 집단소송제가 소비자의 권익을 높이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사실 소비자가 피해를 보더라도 손해액이 작거나 소송 비용이 많으면 개인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가 곤란하다. 하지만 집단소송제는 적극적으로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 뿐 아니라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모든 소극적 피해자들까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집단소송제가 있었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 등에서 소비자의 대응이 쉬웠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ㆍ영국ㆍ독일 등 에서는 다수 소비자들의 피해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장치로 집단소송제를 운용하고 있다.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는 예방 효과도 기대된다. 기업 입장에선 경제적으로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부 통제 시스템’을 더 충실히 운영하게 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예율의 허윤 대표 변호사는 “예컨대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이어지는 것은 기업들이 내부 보안에 투자하는 것보다 과징금 등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훨씬 적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며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막대한 보상 비용을 생각해서라도 내부 보안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일단 기업이 패소하면 엄청난 보상금을 지불해야 하는데다,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쓰는 법무 비용이 적지 않다. 미국 '클래스액션서베이'에 따르면 올해 집단소송과 관련해 미국 기업이 부담해야 할 관련 비용은 22억2000만 달러(약 2조4800억원)에 달한다. 책임소재를 가리기 어려운 우발적 사태나 검증하기 힘든 유해성 시비에 휘말려 공신력 있는 회사도 한순간에 도산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의  ‘앰뷸런스 체이서(Ambulance Chaser)’처럼 피해자를 찾아다니며 소송을 이끌어내는 이른바 ‘소송꾼 변호사’가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대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내부 통제시스템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피해가 더 크고, 소송비용 등을 제품 가격 인상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전 정권에서도 집단소송제 확대를 추진했으나 진척이 없었던 것도 이런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면 ‘반(反)기업 정서’를 이용해 특정 기업을 타깃으로 하는 이른바 ‘기획 소송’이 쏟아지게 될 것”이라며 “미국 등에서는 최종 판결까지 시간이 걸리다보니 사건의 80~90%가 화해로 조정되는데, 이는 결국 변호사들만 이익을 본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에서는 소비자 권익 증진과 기업 견제 차원에서 집단소송제의 조속한 도입을 주문하고 있다. 반면 재계는 정부가 주문하는 최저임금 인상·비정규직 전환·동반성장 정책 등에 이어 기업 경영에 불확실성이 또 하나 늘어난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에 고민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공청회를 열고 각계 의견을 수렴해 집단소송제의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을 역임한 한철수 법무법인 화우 고문은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게 갈리는 제도인 만큼, 소비자의 권익을 증진시키면서 각종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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