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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귀신이 엿보고 있다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최치원의 『계원필경(桂苑筆耕)』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부귀와 명성이 높은 집안은 귀신이 해치려고 틈을 엿본다(高明之家 鬼瞰其室).” 부귀와 명성이 귀신과 동행한다니, 섬뜩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 틈은 부귀·명성의 또다른 동반자인 교만이 만든다. 돈 많고 이름 높은 사람들이 이 말 한마디 가슴에 품고 행동을 다스렸더라면 가뜩이나 폭염에 시달리는 국민들 가슴에 열불을 지피는 일은 없었을 터다. 곳곳에서 우후죽순 터져 나오는 ‘갑질’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사실 기업 회장님이나 프랜차이즈 본사가 갑질의 본산은 아니다. 고기 한 점 먼저 집을 ‘권력’만 있으면 눈앞 술자리에서도 벌어지는 게 갑질이다. 그래서 그리고 그렇게 공공기관이나 기업, 택시 심지어 편의점에서까지 상대적 강자가 상대적 약자에게 패악을 부리는 ‘갑질 사슬’이 이 사회에 온통 얽히고설켰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도저히 납득 못 할 한 가지 진상 갑질이 있다. 바로 정치인들, 특히 국회의원들의 갑질이다.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갑질의 일반적 속성임에도, 이들의 갑질은 ‘전방향’이다. 청와대서부터 정부 관료, 공공기관, 민간기업에 이르기까지 오지랖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때마다 “국민의 이름으로”를 외치지만, 국민들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행동들이 드물지 않다. 더욱 놀라운 건 그들의 갑질이 자주 국민을 향한다는 거다. 피고용자가 고용주에게 갑질을 하는 꼴이다. 그들의 고용이 선거라는 절차를 거쳐 이뤄지는 까닭이다. 유권자에게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또는 쉬이 잊어버리고) 자신이 잘나서 당선된 줄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만이 싹트고 온갖 데에 갑질 만용을 부리다 귀신의 해코지를 당하는 것이다.
 
‘손 안 대고 장화 신기’ 신공(神功)이나 ‘노 룩 패스(No look pass)’ 묘기 같은 게 갑질의 고수들이 무심코 노출하는 귀신의 관심사들이다. 억울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래에서 위를 향해 찍은 사진이라 거만한 모습으로 잡혔고, 달려오는 비서를 향해 가방을 밀어 수고를 덜어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갑질의 필요충분조건인 걸 모르는 거다. 옷도 안 버리고 돕겠다는 건 아니었을 터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직접 장화를 신는 게 상식인 거다. 기사가 가방을 들어주는 건 의무가 아니고 도와주는 거다. 고맙다고 등을 두드려 줬다면 감동이라도 있었다.
 
그런 행동을 바꿀 수 없다면 정치는 그만두는 게 낫다. 장화 신겨 주는 사람과 가방 받아 드는 사람이 바로 다른 장소의 국민들이고 그들에게 봉사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국회의원들인 까닭이다. 그런 행동은 국민 대신 한 사람의 권력자를 섬기는 배신으로 종착되기 쉽다. 그게 뭐? 귀신이 제일 좋아할 짓이다. 이들뿐 아니다. 지도부만 바라보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교만이요 갑질이다. 초선이고 비례라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배지를 던지고 나오는 게 낫다. 그처럼 세월 죽이라고 의원마다 연간 7억~8억원씩 보태주는 게 아니다. 귀신이 엿보고 있다.
 
귀신만 두려워할 게 아니다. 세상 이치가 원래 그렇다. 『주역』의 겸괘(謙卦)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의 도는 찬(滿) 것을 일그러뜨려 겸손한 자를 보태주고, 땅의 도는 찬 것을 변화시켜 겸손으로 흐르게 하며, 귀신은 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자를 복 주고, 사람은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자를 좋아한다.” 성경 역시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으로 겸손을 꼽는다. 다른 얘기가 아니다. 국민 앞에 겸손하라는 얘기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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