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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중국의 피카소’ … 그 아득한 경지 펼치다

병아리와 풀벌레가, 나팔꽃과 잠자리가, 오이넝쿨과 개구리가, 배추와 감이 저마다 하나의 화폭에 어우러진다. 관념적 상징이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보는 소박한 소재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60년 전 세상을 떠난 중국 예술가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사진)의 솜씨다.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는 가난한 목공으로 시작해 시, 서, 화를 모두 아우르며 20세기 중국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우뚝 선 인물이다. 중국에서는 “젊은이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후난성박물관 유강 학예실장)고 할 정도다. 그의 작품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 ‘치바이스-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가 한중수교 25주년을 기념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중국 후난성박물관이 소장한 그림과 서예 전각 등 작품 50점과 상탄시 치바이스기념관이 소장한 여러 유품, 현대미술·서예·전각 등 한중 작가들의 오마주 작품까지 함께 선보이는 전시다.
 
특히 유화 ‘동해 새우’ 등 여러 점의 오마주 작품을 선보인 사석원 작가는 남다른 기억도 들려줬다. 고등학생이던 1976년, 서울 명동의 당시 대만대사관 앞 서점에서 우연히 화집을 통해 치바이스의 작품을 처음 접하고는 “가슴이 쿵쾅”거렸던 강렬한 경험이다. 그는 “새우, 게, 닭 등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놀라웠다”며 “먹색을 제대로 내는 데만도 수십 년 걸린다고 하는데 ‘새우’같은 작품은 수백 년 살아도 따라가기 힘든 경지”라고 말했다.
 
1948년 그린 ‘새우’(종이에 먹). 치바이스의 작품으로 중국 후난성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예술의전당]

1948년 그린 ‘새우’(종이에 먹). 치바이스의 작품으로 중국 후난성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예술의전당]

‘새우’는 먹의 농담과 붓선만으로 투명한 새우를 생생하게 묘사한 빼어난 작품이다. 전시장에는 이를 비롯, 대담한 채색으로 생동감을 살린 여러 생물의 그림과 인물화, 풍경화 등이 자리했다. 특히 그가 그린 생물은 가난한 농가에서 나고자란 어린시절부터 친숙했던 것들이다. 생전에 구술한 회고록에는 집의 아궁이에 불을 땐 지 오래돼 물이 고인 자리에 개구리가 울었다거나 힘든 일과를 마치고 못가에 발을 담갔다가 새우에 찔렸다는 등의 일화가 나온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대개 유쾌한 서정이, 때로는 은근한 유머가 흐르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동국 수석큐레이터는 “치바이스의 개구리는 유년의 지독한 가난의 트라우마가 잠복해 있지만 화폭에 옮겨진 개구리는 너무나 평화롭다”며 “‘새우’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1940년 무렵 그려진 ‘병아리와 풀벌레’(종이에 채색). 치바이스의 작품으로 중국 후난성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예술의전당]

1940년 무렵 그려진 ‘병아리와 풀벌레’(종이에 채색). 치바이스의 작품으로 중국 후난성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예술의전당]

유품 중에는 청나라 때 화보집 ‘개자원화전’처럼 천재적 재능의 소유자일뿐 아니라 부단한 노력파였던 면모를 보여주는 서적도 있다. “밤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소나무 기름에 나뭇가지로 불을 붙여 만든 등불 아래서 한 폭 한 폭 그려나갔다. 반년은 족히 걸려서 한 권 빠진 ‘개자원화전’의 그림을 다 베꼈다. 그때부터 내가 새기는 조각은 모두 ‘개자원화전’을 근거로 더욱 새로운 문양들을 선보였고, 그림도 격에 맞고 균형을 잃지 않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 대한 치바이스의 회고다. 농사일이 힘에 부쳐 10대 시절 목공을 배운 그는 전각에 이어 2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려서 친가와 외가의 할아버지에게서 한자를 배운 것을 제외하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여러 예술가와 교류하며 시문을 짓고 익히며 한층 깊고 새로운 예술세계를 추구해나갔다. 그는 “선인들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롭게 구상했다”는 스스로의 말처럼 전통의 답습을 넘어섰고 “같지 않은 가운데 같은 것을 그려낼 수 있어야 그 신운(神韻)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처럼 사물의 실제 모사가 아니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묘사를 해내곤 했다. 농민화에서나 다룰 법한 소재를 문인화를 능가하는 품격으로 그려낸 그의 이른바 ‘신문인화’는 전통을 현대화한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치바이스는 93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만 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번 전시로 그 면모를 두루 헤아리기는 역부족이지만 중국 현대 예술 사의 중요한 거장을 접하는 기회가 지닌 의의는 뚜렷하다. 치바이스의 작품은 2011년 중국 현지 경매에서 700억원대에 낙찰(위작시비로 최종 대금은 지급되지 않았다)되는 등 높은 가격도 유명하다. 예술의전당은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 역시 작품평가액이 1500억여 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10월 8일까지.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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