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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의 변방에서] 이제 그만 ‘○업’ 하시면 어떨까요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내가 대학원생이던 때, 큰 규모의 학회가 열렸다. 원로 교수 한 분이 축사를 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섰다. 아마도 오늘의 날씨로 시작해 학회의 성과, 문학연구의 즐거움과 당위성, 젊은 연구자들에 대한 당부, 이런 내용들이 이어질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나이를 먹으면 세 가지 ‘업’이 필요하다고 합디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드레스 업’, “옷을 잘 입어야 한다는데 오늘 제가 입은 옷이 좀 괜찮은가요?” 하고 물었다. 그는 실제로 꽤 괜찮아 보였다. 정갈한 감색 정장, 거기에 색이 어울리는 손수건을 포인트로 두어서 후줄근한 젊은 연구자들보다 오히려 차림새가 나았다. 모두가 “네” 하고 답하자 그는 ‘페이 업’, “어디 가서든 돈을 잘 내야 한다고 해서 조금 준비했는데요, 끝나고 뒤풀이하는 데 보태십시오”라며 실무를 맡은 대학원생에게 깨끗한 봉투를 내밀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셧업’, “말을 줄여야 한다고 합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이만 내려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정말 연단에서 내려왔다. 그날 그는 그 학회의 모든 발표와 토론을 합친 것만큼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10여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느 자리에 가야 할 때마다 그 노교수의 ‘업’이 종종 떠오른다. 얼마 전 대학생들이 마련한 작은 행사에서는 초대받은 50대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행사의 의미, 자기 회고와 그에 따른 감정의 고조, 학생들에 대한 걱정, 당부, 그런 것들이 오랜 시간 이어졌다. 대학생들은 그가 흥분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휴대전화를 꺼내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이만 ‘셧업’하시고 학생들의 말을 들으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하고 싶었다.
 
‘말의 점유’, 그것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이들이 있다. 간편한 술자리, 지인들과의 독서 모임, 크고 작은 회의 등 일상의 모임에서도 그 욕구를 내려놓지 못한다. 발화할 권력은 대개 직위와 나이의 높낮음에 따라 결정된다. 나도 먹어가는 나이에 비례해 이전보다 말이 늘어간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가장 좋은 어른은 후배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자신의 말을 내려놓았다. 그를 떠올리며 나도 입을 닫고 귀를 열기로 한다. 그 내려놓음이 나와 당신을 조금 더 높은 자리로 데려다 줄 것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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