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승일 수석논설위원
민간의 원전 중단 결정은 어불성설
국론 분열 통합의 장으로 거듭나야
대법관 출신 공론화위원장을 비롯해 민간 위원들은 이토록 ‘손에 흙 묻히길 싫어하는’ 기색인데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여전히 “정부는 위원회의 결정에 따른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되뇌었다. 민간인들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따른 공론조사를 참고자료로 넘기고 싶은데 정부와 청와대는 건설 중단 결정문을 주문하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동상이몽이다.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원전 건설 중단에 관한 ‘배심’을 하지 않기로 한 건 잘했다. 그런 중대 국사를 민간이 결정하도록 하면 정부와 국회는 왜 있는가. 하지만 민간 주도 공론화 작업까지 흐지부지돼선 곤란하다. 에너지 민주주의에 입각한 공론화위원회는 시민 주도 촛불정치의 유산이라는 논란을 낳고 있다. 하지만 그 덕에 나라를 두 쪽 낼 듯한 원전 갈등을 둘러싸고 건국 이래 처음 공론의 장이 섰다. “신뢰하기 힘든 여론조사를 시민들의 학습과 토론으로 정제하는 숙의(熟議)민주주의의 실험장으로 삼아야 한다”(한국행정연구원 은재호 선임연구위원).
공론조사는 대의민주주의의 쇠락을 보완해 현장 주민의 염원, 비전문가 계층의 집단지성을 반영한다. “전쟁은 군인에게만 맡기기엔 너무 중요하다”(클레망소 전 프랑스 총리). 탈핵 진영이 자주 인용하는 이 문구처럼 원전을 원자력 전문가에게만 맡길 수 없다면 향후 에너지 전환 정책의 주체를 어떻게 구성할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원전·에너지 전문가들도 원전과 석탄을 포기하면 전기값이 얼마쯤 오를지 공론조사 과정에서 국민 앞에 제시했으면 좋겠다. 진영별로, 입장에 따라 너무 많은 수치들이 중구난방 난무하고 있다. “전력 공급 과잉인 상태에서 전기요금이 절대 올라갈 수 없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는 안이한 정부 시각에도 경종을 울려줘야 한다.
공론조사 과정에서 ‘12인의 성난 사람들’처럼 처음엔 성내다가도 헤아리고 공감하는 경청과, 옳고 그름을 초월하는 개시개비(皆是皆非)의 자세가 긴요하다. 공론화에 빠듯하게 석 달을 잡아놨지만 부족하면 반 년, 1년의 끝장토론이라도 해서 원전 대타협에 다가가야 한다. 그 정도 뜸 들일 가치가 있을 만큼 원전과 에너지 전환 문제는 21세기 국가대계다.
홍승일 수석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