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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문학] 슬픔의 관리

황현산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황현산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한 15년 전쯤의 일이다. 시 낭독회가 엄숙하게 진행되고 있다. 예의 바르고 매사가 깔끔한 신철규(37) 시인이 자기 차례를 맞아 단상에 오른다. 마이크의 높이를 조정하고 원고를 펴 드는 짧은 절차 뒤에 이윽고 시가 낭랑한 목소리를 타고 울려 나온다.
 

신철규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그런데 ‘토종 경상도’ 억양이었다. 저 얼굴, 저 태도에서 저 억양이 나오다니. 그것도 시를 낭송하면서. 사람들은 웃음을 참느라고 어금니를 물었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그날 시인은 늠름했고, 그래서 분위기는 곧 가라앉았다. 눌러 앉힌 웃음 때문에 청중들은 오히려 더 시에 집중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흔한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기대 밖에 있었던 그날의 토종 억양은 신철규 안에 또 다른 신철규가 있다고 믿게 하는 어떤 기운을 만들어냈다.
 
신철규 시인의 새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도 우선 그 제목에서부터 또 다른 신철규를 생각나게 한다. 저 단정한 신철규에게도 슬픔이 있는가. 물론 있다. 그것도 깊고 넓은 슬픔이 있다. 다만 그의 다른 모든 행동처럼 그 슬픔이 잘 관리되고 있을 뿐이다. 바로 시집의 저 제목이 시구로 들어가 있는 시 ‘슬픔의 자전’에서는 ‘타워팰리스 근처의 빈민촌에 사는’, 그래서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가 그 묵은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첫 시집을 낸 신철규 시인. 경남 거창 태생이다. 그에게 눈물은 삶의 흔적이자 자취다. [사진 문학동네]

첫 시집을 낸 신철규 시인. 경남 거창 태생이다. 그에게 눈물은 삶의 흔적이자 자취다. [사진 문학동네]

시인은 그 정황을 ‘혀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다’고 쓴다. 그 기억을 지닌 사람의 말이 모두 눈물이고, 그 말의 재료들이 들어 있는 심장과 뇌와 신체 조직이 모두 눈물이며, 그 슬픔의 몸과 신토불이(身土不二)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삼라만상이, 다시 말해서 이 지구가 모두 눈물이라는 말일 터인데, 그 눈물이 흘러나와 땅바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눈물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 눈물을 가득 담고 자전하고 있는 이 지구가 파열할 위험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슬픔은 잘 관리돼야 한다.
 
넓고 깊은 감정과 철저하게 관리되는 감정 사이에서 신철규의 무심한 듯하면서도 긴장도 높은 언어가 만들어진다. 시인은 ‘돌이 되는 눈물’에 관해 자주 이야기하는데, 눈물이 진정으로 돌이 될 수는 없지만, 투명한 말-현실은 덕지덕지 불투명한데 남의 말 하듯이 오직 맑기만 하기에 오히려 유머처럼 읽히는 말-이 되어 백지 위에 적힐 수는 있다. 그때 돌은 시인의 가슴속에 들어가 앉는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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