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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북·중 혈맹관계, 6·25 아닌 1927년 난창봉기 때 맺어졌다

창군 90주년 맞은 중국인민해방군 
오는 8월 1일로 창군 90주년을 맞는 중국 인민해방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6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과는 선혈로 맺어진 관계고 한국과는 25년 전에 수교했다”고 발언한 때문이다. 시 주석의 발언 의도는 오리무중이지만 혈맹이라는 용어는 ‘당의 군대’인 해방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실제로 해방군 역사를 살펴보면 북·중 간 혈맹의 인연은 여간 깊지 않다. 수많은 조선인이 중국 공산당과 해방군의 초기 역사에서 활약해 상당수가 목숨까지 바쳤다. 이들 중 일부는 북한 정권 설립에 참가했다. 북·중 혈맹은 흔히 6·25전쟁에 중국 인민지원군이 참전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 역사는 훨씬 깊다.
 

해방군 탄생한 난창·광저우 봉기
조선인 의용병 수백 명 참여해 희생

만주의 조선·중국 혼성 동북항일군
소련 거쳐 해방 뒤 북 정권 설립 주도

혁명 성지 옌안서도 무정·정율성 등
독립운동, 반제국주의 투쟁 활약

생각보다 깊고 오래된 북·중 인연
잘 알고 대응해야 한반도 문제 풀려

해방군의 탄생 과정에서부터 조선인이 보인다. 해방군은 처음으로 국민당에 무력으로 대응했던 장시(江西)성 난창(南昌)봉기 개시일인 1927년 8월 1일을 창군기념일로 삼는다. 난창봉기 당시 구성된 중국 공산당 홍군은 팔로군 등을 거쳐 오늘날 중국 인민해방군이 됐다. 중국 공산당은 이날을 기념해 휘장과 깃발에 팔일(八一)이라는 숫자를 새기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그해 장시성·후난(湖南)성의 추수봉기와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봉기 등 공산당 무장투쟁이 벌어져 중국 공산당 초기 역사의 큰 줄기를 이룬다.
 
한국인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이 37년 중국 서북부 옌안(延安)에서 미국인 님 웨일스를 만나 구술한 내용이 바탕인 『아리랑』(동녘)에는 당시 중국 공산당의 무장봉기에 참가했던 조선인의 이름과 상황이 상세히 등장한다. 이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이미 국공합작 시절이던 26년 7월 국민당이 군벌을 타도하기 위해 벌였던 북벌전쟁에 의용병으로서 참전했다. 대부분의 조선인은 장파쿠이(張發奎)의 철기군에 가담했는데, 난창봉기의 핵심도 바로 이 철기군이었다. 그해 12월 광저우봉기 당시에도 장파쿠이가 이끌었던 2000여 명의 교도단 중 80명이 조선인이었다. 중산대학 학생 등 광둥 지역 조선인 200여 명도 동참했다. 12월 10일 67명의 조선인을 포함한 2000여 명의 교도단원이 모여 혁명위원회를 열고 중국인 예융(葉鏞)을 새 교도단장에, 조선인 이영을 정치군사고문에 임명했다. 또 다른 조선인 양달부·오성륜·김충창·김산 등도 간부로 활약했다. 13일 국민당군이 들어오면서 진지를 사수하던 200명의 조선인 파견대는 1명을 제외하고 전원 사살되거나 포로로 잡혀 집단 처형당했다. 다른 곳에 있던 김산 등 조선인 15명은 광둥성 산터우(汕頭)를 거쳐 하이루펑(海陸豊·현재 산웨이(汕尾))으로 이동해 그곳 소비에트에 합류했다. 하이펑(海豊)과 루펑(陸豊)을 합친 하이루펑의 소비에트는 그해 9월 9일 중국 최초로 생긴 농민소비에트였다. 하이루펑도 국민당 공격으로 무너지면서 상당수 조선인들은 희생됐다. 극소수 생존 조선인들은 상하이나 동북 지역, 나중에는 옌안 등지로 옮겨 활동을 계속했다. 조선인들은 독립과 반제국주의 투쟁의 하나로 중국혁명에 참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정부에서도 김산 등 당시 혁명가에게 건국훈장 등을 추서해왔다.
 
27년 당시 추수봉기를 일으켰다 실패한 마오쩌둥(毛澤東)은 군사지도자 주더(周德)와 함께 장시성 징강산(井崗山)에 해방구를 마련했다.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국제공산당인 코민테른을 통해 요구한 도시봉기 대신 농촌혁명이라는 중국 공산당 고유의 혁명 방식을 새롭게 정립했다. 이를 바탕으로 31년 장시성 루이진(瑞金)에서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을 수립했으며 이는 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으로 이어졌다. 난창봉기와 광저우봉기 등은 중국 공산당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해방군을 탄생시킨 결정적인 전기였다. 이러한 중국 공산당과 해방군의 초기 역사는 중국인과 조선인의 피로 썼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국이 북한과의 혈맹을 강조하는 첫째 이유다.
 
중국 공산당은 34년 11월부터 35년 6월까지 서북부 산시(陝西)성 옌안으로 이동하는 대장정을 통해 근거지를 마련했다. 그 뒤 37~45년 항일전쟁을 치르면서 세력을 회복해 국민당을 대만으로 밀어내고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다. 옌안 시절에도 양림·김병희(가명 무정)·최정무 등 수많은 조선인이 공산당에서 활동했다. 무정은 25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고 루이진에서 중화소비에트공화국 건국에 참여했다. 대장정에도 참가해 함께했던 조선인 10여 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팔로군 총사령부 작전과장을 거쳐 포병사령관을 지냈다. 해방 후 북한으로 돌아가 인민군 창설에 참여했다. 의열단 출신의 조선인 정율성(본명 정부은)은 옌안에 머물며 ‘팔로군행진곡’ 등 해방군 군가를 다수 작곡했다. 옌안 시절 중국과 북한의 인연은 중국이 지금도 혈맹을 언급하는 둘째 이유일 것이다.
 
셋째 이유는 항일전쟁 당시의 인연이다. 핵심 인물의 한 명이 최용건이다. 그는 광저우봉기에 160여 명의 조선인 학생을 이끌고 합류했다. 21년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이듬해 최추해라는 가명으로 윈난(雲南) 육군강무당 보병과 17기에 입학했다. 국공합작 시절인 24~27년 황푸(黃浦)군관학교 교관을 지냈는데 나중에 중국 총리를 지내는 저우언라이(朱恩來)가 당시 정치주임이었다. 최용건은 26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광저우봉기 뒤 동북 지역으로 옮겨 한·중 연합부대였던 동북항일연군에 최석천이라는 가명으로 들어갔다.
 
동북항일연군 소속의 김일성·최현(나중에 북한 부수상)·김책(부수상 겸 산업상)·강건(인민군 참모장)·최용진(북한 제1부수상)·김일(본명 박덕산, 북한 제1부수상) 등은 해방 후인 1948년 수립된 북한 정권의 핵심을 맡게 된다. 중국 공산당 중앙당사연구실이 2014년 공산당 창당 90주년을 맞아 펴낸 『중국공산당역사』(번역본 출간은 서교출판사)는 “조선의 공산주의자 김일성, 최용건, 김책 등은 … 중국의 동지들과 일치단결해 같이 싸우면서 중국 인민과 조선 인민의 해방을 위해 중차대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동북항일연군의 역사는 북·중 혈맹론의 셋째 이유에 해당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은 G2를 노리는 중국의 시 주석이 한·중 정상회담 자리에서 핵과 미사일 개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북한과의 ‘혈맹’을 언급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북·중 관계와 한·중 관계의 이면에는 이런 역사가 바위처럼 웅크리고 있다. 이를 직시하고 극복해야 북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은 물론 남북관계 개선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열 수 있을 것이다.
 
[S BOX] 중국 혁명 참가했던 최용건·무정, 6·25 때 북 인민군 지휘
1950년 6·25전쟁과 관련한 중국 공산당의 북한정권 지원은 ‘북·중 혈맹’의 뼈대였다. 지원은 전쟁 전부터 이뤄졌다. 팔로군 소속 조선인들을 귀국시켜 조선인민군 4사단과 6사단을 편성케 했는데, 이들은 6·25전쟁 당시 남침과 서울 점령의 선봉을 맡았다. 중국 공산당이 펑더화이(彭德懷)를 사령원(총사령관)으로 하는 중국인민지원군(항미원조의용군)을 파병한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지원군 최초 교전일인 10월 25일을 항미지원의용군의 날로 기린다.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은 평북 동창군 총사령부에서 일하다 50년 11월 25일 미군 공습으로 사망해 평남 회창군 인민지원군 혁명열사능원에 묻혀 있다. 지원군은 58년 10월 26일 철수했다.
 
지원군은 연인원 135만 명이 참전해 전시 60만 병력을 유지한 것으로 파악된다. 사상자에 대해 중국 당국은 15만2000여 명으로 주장하지만 미국 당국은 전사 40만 명 이상, 부상 48만6000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중국 혁명에 참가했던 최용건은 6·25전쟁 발발 당시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겸 민족보위상이었다. 펑더화이의 부관이던 무정도 인민군의 핵심이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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