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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정담] “내가 범죄자인가요” 19년간 5번 개명한 행안부의 한숨

나의 이름은 ‘행안부’(행정안전부)다. ‘안행부’(안전행정부) 아니냐고? ‘행자부’(행정자치부)? 실은 나도 헷갈린다. 지난 9년 동안에만 네 번이나 오락가락했으니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부터 나는 행자부→행안부→안행부→행자부를 돌고 돌았다. 그런데 국회가 20일 나를 도로 행안부로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계획에 찬성했다.
 

조선 500년 지켜온 이름 ‘이조’
갑오개혁 때 내무아문 새 이름

DJ가 지방자치 시대 의미 담아
행자부로 바꿀 땐 조금 설렜어

MB 이후 행안부, 안행부, 행자부
정권 바뀌면 내 이름부터 손대

왜 그렇게 이름을 자주 바꾸냐고? 경찰에 쫓기는 범죄자냐고? 새 이름은 미아리 점집에서 받아오냐고? 난들 알겠는가. 아무튼 정치가들은 유난히 내 이름에 집착한다. 대선에서 이기면 내 이름부터 살펴본다. 원래 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때부터 ‘내무부’로 오랜 세월을 살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오랜만에 내 이름을 ‘행자부’로 바꿀 때는 다소 설레기도 했다.
 
이웃에 있던 총무처의 일감을 받아왔고, 무엇보다 95년 지방선거가 부활하며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명분이 있었다. 솔직히 임시정부 때부터 써왔던 이름을 개명한다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주변에서 “내무부는 옛날식 이름이라서 촌스럽다”느니 “원래 귀한 집안의 자식으로 들어가거나 출세를 하면 이름을 바꾼다”느니 하면서 꼬드겼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10년은 별 탈 없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은 9년 전부터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이름을 바꾸자고 했다. 행정 다음에 ‘자치’ 대신 ‘안전’을 넣자면서. 중앙인사위원회와 국가비상기획위원회 등의 업무를 가져오기는 했는데, 이름까지 바꿀 일일까….
 
5년 뒤인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은 행안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라고 했다. 주변에선 “말장난하느냐”고 했다. 나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새 대통령은 ‘안전한 대한민국’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행안’을 ‘안행’으로 바꾼다고 대한민국이 더 안전해지나? 주변의 만류도 많았지만 박 대통령의 고집을 꺾는 건 불가능했다. 돈도 많이 들었다. 새로운 이름표와 명찰, 명함 등을 만드는 데 수억원을 썼다.
 
지금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한 대통령직인수위원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안전’에 방점을 찍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안전 인프라를 깔기 위한 메시지다. 단순히 몇 천만원, 몇 억원보다 휠씬 더 큰 가치가 있다.”
 
아, 그렇구나… 내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 그런데 이듬해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운 참사이자 기억이다. “대체 뭐가 더 안전해진 것이냐”는 질책과 항의가 쏟아졌을 때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며, 슬며시 나를 ‘행자부’로 또 바꿔버렸다. 개명한 지 1년8개월 만이었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나를 도로 행안부로 만들어 놓긴 했는데, 과연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그런데 뼈대 있는 집안의 이름을 이렇게 돌리고 돌리고 돌려도 되는 건가. 내 조상은 조선시대에 이조(吏曹)라 불리셨다.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 등 6조에서 이조는 선두주자였고, 이조판서는 양반집 족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명예로운 관직이었다. 조선시대를 말아먹었다고 비판받는 당쟁(黨爭)도 지금으로 치면 행안부 인사기획관쯤 되는 이조전랑(吏曹銓郞) 자리를 놓고 싸우면서 시작됐다.
 
세종대왕을 비롯해 폭군 연산은 물론 500년간 어떤 왕도 ‘이조’라는 이름을 바꾸거나 권한과 업무를 변경하지 않았다. 참고로 조선에서 우리 가문의 이름을 바꾼 건 500년간 딱 한 번, 내무아문으로였다. 1894년 ‘갑오개혁’ 때다.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임금님들도 가만 놔둔 내 이름을 갖고 겨우 5년 동안 자리에 있는 대통령들이 왜 이리 흔드는지 모르겠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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