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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과학 속에 숨은 성차별주의, 그 허울을 벗기다

200년 동안의 거짓말
바버라 에런라이크·

생리·임신·폐경을 병으로 규정
여성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어
잘하면 다할 수 있다는 건 허구
전문직, 좋은 엄마 겸임 불가능

디어드러 잉글리시 지음
강세영 외 옮김, 푸른길
 
슈퍼 우먼은 없다
앤 마리 슬로터 지음
김진경 옮김, 새잎
 
이 두 책은 다 제목에 부정적인 단어를 썼다. ‘거짓말’과 ‘없다’다. 원서의 표제가 아니라 한국판 의역이지만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현대 여성이 처한 상황, 특히 인류의 나머지 반쪽인 남성과의 관계에서 빚어진 비틀린 현실이 ‘옳지 않음’을 각성시키려는 작명은 일리 있어 보인다. 20세기 들어 서구 세계에서 여성 개인이 처한 궁지를 뭉뚱그려 부른 ‘여성 문제(woman problem)’의 새로운 해답을 찾아보려는 저자들의 시도는 가열하다.
 
『200년 동안의 거짓말』은 부제 ‘과학과 전문가는 여성의 삶을 어떻게 조작하는가’ 한 줄에 내용이 요약돼 있다. 미국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언론인인 바버라 에런라이크와 디어드러 잉글리시는 40여 년 전 대학원생 시절에 이미 과학과 전문가라는 이름을 등에 업은 남성이 여성이 키워온 전통적 지식과 자신감을 어떻게 탈취해 갔는가를 방대한 자료 조사로 실증했다.
 
두 필자는 19세기부터 지금까지 과학이라는 미명으로 여성들이 받아들이도록 요구받아 온 방향을 크게 세 갈래로 짚는다. 첫째, 여성에게 주어진 과학적 전문가의 조언은 과학이라는 허울을 쓴 성차별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여성문제의 해법이라 처방된 ‘가정중심성’을 여성이 수용한 이유는 구질서(산업혁명 이전 사회)의 가부장적 지배 권력을 넘겨받은 과학적 전문가가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여성과 전문가의 관계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와 다르지 않아 결국 남성우월주의 지배, 즉 일종의 로맨스였다.
 
주류 의사들은 “생리는 휴식과 격리가 필요한 주기적인 병, 임신은 고질적이고 장애를 유발하는 병, 폐경은 일종의 죽음”이라며 여성은 “심한 호르몬 불균형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육아 전문가들은 아이가 생물학적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의 돌봄 속에서 고통 받을 것이라 주장해 여성이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이비 과학 이론을 폭로해 거짓을 들춰낸 지은이는 조언한다. “전문가가 아무리 많은 학위를 당신에게 보여 주더라도, 그들이 아무리 많은 연구를 인용할지라도, 당신 스스로 더 깊이 탐구하고 당신 자신의 실제 생활 경험에 가치를 부여하고 스스로 생각하라.”(27쪽)
 
영화 ‘원더우먼’의 한 장면. 이렇게 달려도 여성이 직장·가정·아이를 다 갖기는 버겁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영화 ‘원더우먼’의 한 장면. 이렇게 달려도 여성이 직장·가정·아이를 다 갖기는 버겁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슈퍼 우먼은 없다』는 바로 이 거짓말의 실상을 체험과 실전으로 입증한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의 여성 최초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을 지내다 사직한 앤 마리 슬로터(59)는 당시 ‘왜 여성은 여전히 다 가질 수 없는가’란 글을 발표해 논쟁을 일으켰다. 살인적인 근무 시간에다 사춘기 두 아들과 떨어져 살아야했던 슬로터는 결국 공직을 떠나 대학 교수이자 엄마로 돌아왔고 ‘일과 가정의 균형’에 대해서 솔직한 자기 고백에 이르게 되었다. 전문직과 좋은 엄마의 겸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털어놓자 그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변했는데 특히 ‘다 가지기(having it all)’란 개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컸다. 오랜 세월 통용돼 온 세 가지 금과옥조, 즉 ‘일에 헌신하면’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하면’ ‘순서를 잘 정하면’ 다 가질 수 있다는 건 허구라는 것이다.
 
슬로터는 대신 “밥벌이와 돌봄이 동등한 세상을 창조하는 데에 있어 작지만 효과적인 방법은 직장에서 자신이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 “만약 우리가 경쟁적인 신화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하는 데 성공한다면, 경쟁이 인간의 중요한 동력이지만 보살핌보다 더 가치 있지는 않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여성 해방을 단지 경쟁할 자유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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