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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위기 맞은 ‘연명의료결정법’

윤영호 서울대 의과대 교수

윤영호 서울대 의과대 교수

“10년은 더 살게 해 드리겠다”고 한 의사 아들의 희망을 뒤로한 채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내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와 투석 기계, 수많은 주사·튜브에 둘러싸여 있던 어머니, 죽음이 임박하자 임종실로 모셔 가족들의 슬픔 속에서 작별의 시간을 보냈다. 삼우제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날, 어머니가 떠나면서 선물이라도 주신 듯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토록 매달렸던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 법안을 심의하기 위한 단독 법안소위와 상임위가 열렸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지난해 2월 공포되었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는데, 국민과 국회·정부가 만든 기적이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위해
관련 법안 국회 통과됐지만
시행 앞두고 별다른 진척 없어
정부, ‘죽음의 질’ 관리 나서야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 연명 의료중단이 살인죄로 판결 나면서 임종 환자의 병원 퇴원이 어려워졌으나, 서울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에 대해 연명 의료중단 결정을 내린 2009년 역사적 대법원 판결이 전기가 되었다. 의료기술이 발전해 수명이 늘어나면서 임종 과정 또한 길어지고 의료화하는 것이 추세다. 그러나 기계에 매달린 채 준비 안 된 죽음을 비참하게 맞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질병 치료가 불가능해졌을 때 죽어가는 인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삶의 ‘완성’으로 승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또 죽음을 ‘환자와 가족’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명의료결정법은 최근 여러 논란 속에서 방향이 모호해지고 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구성한 사회적 합의기구인 ‘무의미한 연명 치료중단 제도화 특별위원회’의 입법 권고안에, 종교계의 생명권 보호 그리고 호스피스 확대 요구를 가미한 절충안이 나왔다. 국회 논의 과정에선 재정 대책이 사라지고, 요양병원이 호스피스 기관으로 들어오고, 중단할 수 있는 연명 의료에 대한 선택이 제한되었다. 물론 부족하더라도 우선 법을 통과시키고 시행하면서 고쳐 나가는 것도 좋다.
 
어쨌든 연명의료결정과 호스피스가 하나의 법으로 통합되면서 임종문화 인식 개선 및 호스피스 인프라 확충을 위한 법 시행 유예기간을 호스피스의 경우 1년 반, 연명의료결정은 2년을 두기로 합의했다. 원래대로라면 호스피스 법은 다음달, 연명 의료는 내년 2월에 시행할 예정이었다. 그럼에도 진척된 내용 없이 고작 시범사업을 하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한 준비도 턱없이 부족하다. 당시의 간절함을 되돌아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학병원 40곳 중 호스피스 병상을 운영하는 곳은 10곳뿐이다. 내년까지 운영할 계획을 가진 대학병원도 5개 정도다.
 
오히려 요양병원이 호스피스 전문기관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현대판 ‘고려장’ 우려가 현실화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온다.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말기 환자와 임종 과정 환자에게 따뜻한 의료를 제공하기 위한 전문훈련을 받아야 하지만 선뜻 나서려는 병원이 없다. 상급 종합병원들은 병실과 중환자실에서 맞이하는 비참한 임종에 대해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있던 호스피스 병실마저 폐쇄하려 한다. 말기 환자와 임종 환자에 대한 체계적·통합적 종합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부처에 실장급 추진단을 구성하고 전담조직을 신설해야 한다.
 
통계청 추산에 따르면 2050년까지 국내 사망자 수는 1900만 명에 달한다. 한 사람의 죽음이 최소 친지 5명 이상에게 큰 고통을 안길 걸 감안하면 9500만 명 이상이 고통을 겪게 되는 셈이다. 국가적 재앙도 이런 재앙이 없다. 국민을 잘살게 해 주는 것 못지않게 잘 죽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환자가 고통스러운 만큼 가족·친지는 그 고통과 슬픔을 오래 기억하며 살기에 개개인의 죽음을 푸대접해서는 안 된다.
 
호스피스를 국가적 차원에서 챙기기 위해서는 철학과 재정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국민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중기 재정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 의료비를 줄이고 경제를 살리는 선제적 투자이기도 하다. 법률 초안에 포함되었으나 논의 과정에서 사라진 호스피스 기금이나 재단을 마련해 재정 지원과 웰다잉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정부의 ‘치매 국가책임제’처럼 ‘웰다잉 국가책임제’를 공약으로 내세울 대통령을 기다려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죽음의 질’ 세계 1위인 영국처럼 “국민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나라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하길 바란다.
 
윤영호 서울대 의과대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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