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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천박은 비굴을 먹고 자란다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수용소에 갇힌 포로들은 본능적으로 비굴해진다. 감시병들의 학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하지만 비굴해질수록 학대도 심해진다. 감시병들이 포로의 비굴함을 즐기는 까닭이다. 어느 날 수용소에 한 숙녀가 나타난다. 장교 출신 포로는 그녀를 맞은편 자리에 앉히고 정중하게 대접한다. 그녀는 장교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장교는 다른 포로들이 신사답지 못한 행동을 할 때마다 꾸짖는다. “숙녀 앞에서 무슨 짓이냐.” 이후 놀랍게도 포로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용렬함이 사라지고 당당해진다. 포로들의 변화에 감시병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 이유가 숙녀의 존재라는 걸 알고 체포하려 하지만 찾아낼 도리가 없다. 포로들의 범절 있는 행동에 감시병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숙녀가 되찾아준 포로들의 당당함
굴종이 모여선 사회가 설 수 없다

지난 세기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장편 『하늘의 뿌리』에 나오는 얘기다. 제약회사 욕쟁이 회장의 ‘갑질’ 기사를 읽으며 이 대목을 떠올렸다. 자기 운전기사를 종 부리듯 하는 인격 학대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감시병들의 학대와 꼭 닮았기 때문이다. 재수 없어서(?) 드러났을 뿐 그 말고도 인간성에 마구잡이 상해를 가하면서도 터럭만 한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 천박함이 이 땅에 차고 넘치지 않는가 말이다.
 
회장님의 운전기사 학대는 귀 닳도록 들은 터라 놀랍지도 않다. 당연한 보수 지불을 은전 베푸는 양 생각하는 태도가 기막힐 따름이다. 놀라운 건 반대 방향의 고용-피고용 관계에서도 학대가 발생한다는 거다. 특권층의 천박한 선민의식이 그렇게 만든다. “밥하는 아줌마가 무슨 정규직이냐”는 폭력이 그래서 국회의원 입에서 나온다. 피고용자인 국회의원이 고용자인 국민을 학대하는 것이다. 고용자건 피고용자건 학습효과가 있어선지 문제가 되면 사과들은 부리나케 하는데, 진심이 아니니 효과가 별무신통이다. 실수로 나온 학대란 없는 법이다.
 
이런 천박한 학대가 줄어들 것 같지 않고 정도도 덜해질 것 같지 않은 게 그래서다. 오히려 양극화에 발맞춰 더욱 심해질 게 뻔하다. “앞으론 알약으로 만든 ‘인간성’을 사 먹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는 로맹 가리의 예언이 과장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정말 우리도 ‘숙녀’가 필요하지 싶다. 그런데 어떻게? 가리와 비슷한 시대를 산 영국 소설가 이블린 워한테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4계급의 ‘이상사회’를 피력했었다. 4계급이란 군주-귀족-산업·전문가-노동자의 전통 분류와 큰 차이가 없다. 그가 강조한 건 각 계급의 덕목이다. 최상위 계급의 덕목은 ‘명예와 정의’다. 두 번째는 ‘전통과 도덕, 기품의 수호’며 세 번째는 ‘청렴과 결백’, 네 번째는 ‘숙련 기술’이다. 워는 각 계급이 자신의 덕목에 충실한 사회는 영원불멸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또한 그런 사회는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며 해마다 더 멀어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귀담아들을 건 다음 부분이다. “유행하는 시대정신에 이의를 표현할수록 그 시대정신을 몰락에서 끌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천박한 학대가 난무하는 세태를 개탄하면서도 그런 세태에 굴종하는 삶이 모여서는 사회 유지가 안 된다는 얘기다. 오늘날 계급사회는 아니지만 워의 덕목들을 갖춰야 할 각각의 위치가 있는 건 분명하다. 정의를 지켜야 할 자리가 있고 도덕을 수호할 자리가 있으며 청렴해야 할 자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 덕목이 망실될 때 학대가 발생한다. 그런 장면 앞에 설 때마다 우리의 ‘숙녀(또는 신사)’가 지켜보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당당하게 맞서 잃어버린 덕목을 되찾게 해줘야 한다. 천박은 비굴을 먹고 자란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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