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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 개발로 70년대 노다지(금) 영광 재현하겠다는 충남 청양군

금괴. [중앙포토]

금괴. [중앙포토]

1970년대 초까지 남한 최대 금광(金鑛)이던 구봉광산이 개발될 전망이다.
14일 청양군에 따르면 민간 개발업체인 서든골드코리아㈜가 청양군 남양면 구룡리 구봉광산 금광 갱내와 주변을 탐사해 물과 토양의 표본조사 등을 하고 있다. 성분 분석 뒤 오염물질이 있으면 정화할 수 있는 지 검토한다는 게 이 업체의 계획이다.  

청양군, 한때 남한 최대 금광이던 구봉광산 민간업체에 맡겨 개발키로
금 28t 매장 추정, 남은 17t 채굴 가능할 것으로 전방
1967년 광부 김창선 씨가 16일 동안 매몰된 뒤 구조돼 화제가 된 곳

 
이 회사는 매장량과 개발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한 뒤 사업 타당성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이를 근거로 금광이 있는 남양면 지역주민 여론을 반영해 개발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기본 조사에만 적어도 2년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석화 청양군수는 "금광 채굴권은 이 업체에 있으며 채굴허가는 규정상 충남도가 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구봉광산의 금 매장량은 총 28t 정도로 추정된다. 이전에 생산된 11t을 제외하면 17t을 채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봉광산은 1911년 광업권을 최초로 등록한 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광부들이 금을 캐내면서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줬다.
 
1950∼1960년대 금광의 성업으로 남양면 인구가 청양군 전체(2016년 말 3만3333명)보다 훨씬 많은 4만5000여명에 이르기도 했다. 구봉광산에서는 1926∼1937년 금 2만 5838g, 은 28만 5867g이 생산됐다. 1949∼1970년에는 금 1113만 6100g, 은 33만 1203g이 생산되었으나 이후 생산이 급격히 줄었다. 금 생산량이 줄면서 구봉광업소는 결국 1971년 문을 닫았다. 
이후 광부 대부분이 떠나 지역경제가 위축됐다. 1967년에는 광부 양창선(96)씨가 이 광산 지하에 16일 동안 매몰된 뒤 구조돼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건물 50층 높이인 지하 125m의 갱 안에 갖혔다. 막장 안을 받치는 갱목이 너무 오래돼 썩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양씨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에 살고 있다.
이석화 청양군수가 지난 13일 구룡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광산개발 사업 설명회를 하고 있다. [사진 청양군]

이석화 청양군수가 지난 13일 구룡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광산개발 사업 설명회를 하고 있다. [사진 청양군]

 
이석화 군수는 "본격적인 개발에 앞서 현지 주민과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며 "아직 남아 있는 금 매장 추정량이 상당한 만큼 구봉광산이 제대로 개발되면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금광에서 일했다는 한 주민은 "옛날처럼 금이 폭포같이 쏟아져 낙후된 우리 지역이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구봉광산 위치

구봉광산 위치

하지만 개발에 대한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 과거 채굴 당시 금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각종 약품으로 중금속 오염이 심각해 주민들의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한국광해관리공단은 2009년 구봉광산 토양오염 정밀조사를 거쳐 2012년 12월부터 2년 가까이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청양=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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