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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은 위기 고조 때 잘 성사, 대화·전쟁대비 함께 해나가야

[세상을 바꾼 전략] 핵무기 공포의 균형
1 2017년 7월 4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오른쪽에서 셋째)이 평안북도 방현 지역에서 ‘화성-14형’ 미사일 발사 준비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1 2017년 7월 4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오른쪽에서 셋째)이 평안북도 방현 지역에서 ‘화성-14형’ 미사일 발사 준비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72년 전인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30분쯤, 미국 뉴멕시코주 ‘죽은 자의 여정(Jornada del Muerto)’사막에서 인류 최초의 핵무기 폭발 실험이 있었다. 맨해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삼위일체(Trinity)로 명명한 이 실험에서 약 6㎏의 플루토늄은 거의 2만t의 TNT에 해당하는 폭발을 일으켰다. 다음달 6일과 9일 실제 핵폭탄이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됐고 15일 일본은 항복했다.
 

핵무기 동등한 힘 필요한 게 아니라
상대 파멸시킬 수 있으면 도발 억제

무조건 반핵, 북한 포용은 비전략적
진영적 대처만으론 위기 수습 못해

핵무기는 전쟁을 없애버려 세상을 바꿔 버렸다는 주장도 있고, 또 전쟁 발발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세상을 전혀 바꾸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핵무기는 1945년 등장하자마자 그 파괴력 때문에 이전 무기와 질적으로 판이한 ‘절대적 무기’로 불렸다. 이전의 재래식 군사력이 상대국과 비교해 얼마나 강하냐 또는 약하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평가된 반면, 핵무기는 상대국의 군사력 크기와 관계없이 일정한 효능을 절대적으로 갖는다. 핵무기를 사용한 전쟁의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핵무기 등장 이후 정책결정자가 전쟁이라는 대안을 더욱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핵전쟁의 참담한 결과 때문에 핵보유국 간의 전쟁 가능성은 줄었고 동시에 제3세계에서의 대리전쟁 빈도는 늘었다. 그런 맥락에서 핵무기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현상유지에 기여함으로써 세상이 덜 바뀌게 하기도 했다.
 
 
핵전쟁 결과 참담해 일어날 가능성 줄어  
2 2006년 10월 3일 북한의 첫 핵 실험 다음날의 평양 거리 모습. ‘사상과 투쟁, 생활도 선군의 요구대로’라는 선전구호판 아래로 평양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중앙포토?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2 2006년 10월 3일 북한의 첫 핵 실험 다음날의 평양 거리 모습. ‘사상과 투쟁, 생활도 선군의 요구대로’라는 선전구호판 아래로 평양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중앙포토?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핵무기 출현으로 힘이 비슷(balance of power)해야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상대를 파멸시킬 수 있기만 하면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이른바 공포균형(balance of terror) 개념이 등장했다. 도발 억제에 충분하면 되지 반드시 동등한 힘이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게 되었다. 즉 핵 억지의 균형(equilibrium)은 쌍방이 상대방의 선제 공격에 살아남아 상대를 파멸시킬 수 있는 군사력을 서로 갖는 상황이지, 반드시 핵무기의 평형(balance)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도발하려는 의도 그리고 위험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매우 비(非)대칭적이라면, 핵 군사력이 비슷하든 아니든 핵 균형은 깨져 도발이 발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핵무기 등장으로 공격력과 방어력의 구분이 뚜렷해졌다. 재래식 전쟁에서는 공격에 투입되는 군 부대를 그대로 방어에도 투입할 수 있어 공격력을 방어력으로, 또 방어력을 공격력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이와 달리 핵무기 시대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처럼 상대를 침공할 때 동원하는 군사력 그리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처럼 쳐들어오는 상대를 격퇴시키는 군사력은 기술적으로 서로 구분된다. 핵무기는 국내로 침공해 오는 상대국 병력보다 상대국 본토에 투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무기다. 그래서 상대국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기는 힘들어도, 상대국을 공격하여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 가능해졌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 대신에 상대의 방어를 무력화하여 상대가 도발을 자제하게끔 만드는 방식이 주가 된 것이다.
 
재래식 무기보다 훨씬 큰 파괴력을 지닌 원자폭탄의 등장만이 세상을 바꾼 것은 아니다. 생산 비용에 비해 훨씬 더 큰 파괴력을 가진 수소폭탄 등의 후속 핵무기,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상대를 파멸시킬 수 있게 하는 운반 수단, 상대의 기습 공격에 살아남아 상대에 반격할 수 있게 하는 기술 개발, 상대의 공격을 무력하게 만드는 기술 개발 등과 함께 세상을 바꾼 것이다. 즉 핵무기는 그 자체뿐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의 운반 수단 그리고 상호확증파괴(MAD) 등의 전략적 사고와 함께 게임 체인저로 기능했다.
 
특히 핵 위협이나 핵 억지가 먹히려면 상대가 믿어줘야 한다. 소련의 도발이 있는 경우 소련 본토에 직접 대량으로 보복하겠다는 미국의 대량보복 전략은 소련이 과연 신뢰할까 하는 의문이 들자 유연반응 전략으로 바뀌었다. MAD와 같은 핵 전략의 공유가 핵 억지를 가능하게 하였다. 핵 전략의 상호 이해가 없었더라면 핵 억지는 실패하여 심각한 제3차 세계대전으로 치달았을 여지도 있다.
 
지난 4일 북한은 화성-14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성공적인 ICBM이라고 발표했다. 이제 북한은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국이자 ICBM 보유국으로 여겨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북한 외에 핵무기 장착 ICBM을 보유한 국가로는 미국·러시아·중국·인도·이스라엘 5개국에 불과하다. 핵무기, 생화학무기, 중장거리미사일 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북한이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이란·리비아 등의 핵무기 포기 사례를 쉽게 따를 것으로 기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재래식 무기에서의 열세를 뒤집기 위해서라도 핵무기에 의존하려는 동기가 크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그 효과를 보고 있다. 실제 핵무기의 효능은 사용되지 않았을 때이지, 사용되면 그 효능은 오히려 준다. 북한의 ICBM이 실전 배치된다면 이는 한·미 동맹의 효능을 바꿔 버릴 것이다. 미국이 본토에 직접 핵 공격을 받을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한반도에 개입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 미국 핵무기의 억지력이 한국으로 확장되는 이른바 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는 불확실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미 동맹 외에 핵 무장을 포함한 자체 군사력의 증강을 시급히 서둘 것이다. 핵보유국의 확장억지가 작동하지 않으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는 붕괴될 수도 있고, 이는 중국을 포함한 기존 핵보유국들에게도 위기이다.
 
핵무기는 대체로 상대에게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강압(compellence)의 수단이라기보다, 현상 변경에 저항하는 억지(deterrence)의 수단이다. 강압 수단으로서의 핵무기는 미국이 독보적인 핵 우위를 점하고 있던 1950년대에서나 가능했다. 강압의 수단이 될지 아니면 억지의 수단이 될지는 핵 군사력의 월등한 차이뿐 아니라 전쟁 의지의 차이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전면적 교류나 개방을 원치 않는 정권의 속성상 경제 상황이 나쁠 수밖에 없는 북한은 기존 질서와 다른 새로운 변화를 주변국에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북한의 핵무기는 지역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잠재적 요인이다.
 
북한 정권에 핵은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 상품처럼 대박이 될 수도 또 쪽박이 될 수도 있는 옵션이다. 대외적으로뿐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담은 없다. 바깥과의 담이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내부의 담이 뚫릴 가능성은 크다. 핵무기가 정권 지속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핵무기를 지키려다 정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합리적 레드라인 밝혀 사태 수습해야  
최근 레드라인(최종금지선)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레드라인의 위치를 확인할 수가 없다. 구체적인 조건과 일정을 말하면 나머지 행동은 허용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까 봐 레드라인을 구체화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구체화되지 못한 레드라인은 레드라인이 아니다. 이미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언급하지 않은 행위뿐 아니라 직접 경고한 행위까지 지속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터이다. 대외 경고를 지키지 못하면 직위에서 물러나야 할 민주 국가 지도자는 대외 경고 역시 국민과의 약속으로 여기고 대체로 준수한다. 독재국가의 지도자와 다른 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합리적인 레드라인을 적극 표명하여 사태를 잘 수습해야 한다.
 
1951년부터 시작된 한반도 정전 협상이 2년을 끈 후에야 합의에 이르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쌍방이 상대에게 강력한 화력을 퍼붓는 전선 상황이었다. 무릇 합의는 쌍방이 합의되지 않을 때의 기회비용을 더욱 체감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타협은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오히려 잘 성사되는 이유이다. 지난 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6·25전쟁 이후 최대 위기”, “위기는 기회” 등을 표현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모두에게 위기임은 분명하면서도 동시에 기회로 전환될 여지 또한 존재하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는 대화대로, 또 전쟁을 대비한 만반의 준비는 준비대로 해 나가야 한다. 민방위체계의 재정비를 비롯한 여러 핵 전쟁 대비책은 평화적 타결의 측면 지원책이기도 하다. 무조건 반핵이니 무조건 북한 포용이니 하는 비(非)전략적이고 진영적인 대처만으로는 한반도 위기를 수습하지 못한다.
 
 

김재한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2009년 미국 후버 내셔널 펠로. 2010년 교육부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정치 현상의 수리적 분석에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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