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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 디자인에 숨겨진 동굴 주거 DNA

[도시와 건축] 인류 최초의 집, 동굴
인류 최초의 집은 동굴이다. 가장 오래된 동굴주거 유적인 알타미라 동굴 안에는 비를 피하고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등 인간주거 조건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런 동굴의 특징은 현대인의 주거 공간인 아파트(아래 사진)에서도 근본적으로 동일하게 나타난다. [중앙포토]

인류 최초의 집은 동굴이다. 가장 오래된 동굴주거 유적인 알타미라 동굴 안에는 비를 피하고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등 인간주거 조건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런 동굴의 특징은 현대인의 주거 공간인 아파트(아래 사진)에서도 근본적으로 동일하게 나타난다. [중앙포토]

초기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보면 꼬리가 있다. 과학자들은 이 꼬리가 과거 진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처럼 생명체는 과거의 흔적을 DNA 속에 간직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집 역시 진화하지만 과거의 흔적을 내포하고 있다. 구석기 시대에 수렵채집을 하면서 동굴에서 살던 호모 사피엔스 인간은 지금 수십 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고 있다. 고층 아파트 디자인에는 동굴 주거의 DNA가 숨겨져 있다.
 

알타미라 동굴은 주거의 줄기세포
비 피하고 난방·조리·벽·장식 등
주거의 특징 동일하게 나타나

주어진 기후 속 문제해결 지능이
도시와 건축의 진화 만든 원동력

우리가 볼 수 있는 인류 최초의 집은 동굴이다. 가장 오래된 동굴 유적은 사냥하는 모습이 그려진 동굴벽화로 유명한 ‘알타미라 동굴’이다. 이 동굴은 시기적으로 후구석기 시대에 속하는 1만 년에서 2만 년 전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빙하기기 완전히 끝나기 전이고 해수면은 계속 상승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동굴주거이다. 이 주거형태와 동굴벽화를 보면 수렵채집의 시기에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사냥을 하고 돌아와서는 모닥불에 모여서 음식을 먹고 쉬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입구는 하나만 있어 보안상 유리
알타미라 동굴은 주거의 줄기세포와 같다. 동굴주거 안에는 이미 인간주거 조건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우선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주변 동물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줄 동굴 벽이 둘러쳐 있다. 입구는 하나만 있어서 보안상 유리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불을 가운데 두어서 보온을 했고 음식을 익혀서 먹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불을 쳐다보면서 쉴 수 있었다. 벽화를 그려서 주거 공간을 장식했다.  
 
동굴 주거공간이 보이는 7개가량의 특징들이 이후 농경사회에서도, 산업사회에서도, 지금의 정보화사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인류는 동굴에서 나온 후 집을 지어야 했다. 우선 비를 피하기 위해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지붕을 만들었고, 주변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벽을 둘러서 집을 지었다.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서 담장을 만들어 2중으로 방어벽을 세웠다. 동굴의 입구가 하나가 있듯이 집의 정문과 현관문은 하나씩이다. 모닥불로 보온을 하던 것이 벽난로가 되고 훗날 보일러가 됐다. 한편으로는 가스불이 돼서 음식을 한다. 또 다른 불은 TV모니터 속의 영상이 됐다. 과거에 동굴벽화를 그리듯이 벽지를 고르고 사진액자와 그림을 건다.  
 
이처럼 2만 년 전 인간의 주거와 현대인의 주거는 근본적으로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유전적으로 바뀐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뇌과학자 이대열 교수는 ‘지능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우리 지능의 본질은 거의 변한 것이 없는 듯하다. 과거 우리가 가진 기술과 재료로 동굴주거라는 해결책을 만들었듯이, 현대인은 같은 문제해결의 지능을 가지고 아파트를 짓고 케이블TV를 보면서 산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간의 주거 환경들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인공화돼 왔다는 점이다.  
 
2만 년 전에는 비와 번개와 동물이 생존에 위협이 되는 조건들이었다. 지금은 우리가 만들어 낸 도시공간과 복잡한 사회 환경, 경제문제, 교통체계, 정치체계 등이 우리가 생존하는 데 극복하고 적응해야 하는 조건들이 됐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같은 목적이지만 주변의 조건들이 바뀌면서 좀 더 복잡해진 건축들이 발생했다. 고인돌, 스톤힌지, 피라미드, 파르테논 신전, 콜로세움, 왕궁들, 성, 교회, 고층아파트, 초고층 오피스 등 이전에는 없었던 형태의 건축들이 발생했다. 이들 복잡한 형식의 건축들은 이전시대에 만들어진 환경에 반응해서 발명 혹은 발생한 건축양식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의 건축을 이러한 진화의 방향으로 이끌었을까.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후변화이다.  
 
주변의 조건 바뀌며 복잡한 건축물 발생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그의 저서 『총균쇠』에서 ‘대륙의 모양이 가로로 기냐 세로로 기냐’라는 간단한 지리적 사실을 가지고 복잡한 인류 역사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유라시아대륙은 가로로 길기 때문에 농업이 초기에 발생했을 때 주변지역으로 전파가 쉬웠다는 것이다. 대륙이 가로로 길면 동서방향으로는 위도가 같아서 기후대가 동일하다. 자연스럽게 이쪽 지역에서 성공했던 종자가 이웃으로 전파되기가 쉽다. 반면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은 남북으로 길어서 조금만  밑으로 내려가도 기후대가 달라지면서 농사에 실패를 했다는 것이다. 농업을 먼저 시작하면서 가축을 키우게 되고, 가축에서 얻은 전염병으로 고생을 먼저 했지만 대신 내성이 생겼다. 그래서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보다 농사를 먼저 시작해서 전염병에 내성이 강해진 스페인 사람이 아메리카대륙에 진출했을 때 인디언은 전염병에 죽고 유럽인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이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이야기는 지리적인 조건이 인류의 문명을 규정하는 가장 큰 요소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이론은 건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수메르인이나 이집트인들이 더 똑똑해서 인류문명이 그곳에서 처음 발생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강의 하구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여기서 이러한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유전적으로 인간의 지능은 별로 바뀐 게 없는데 왜 기원전 3500년께 수메르문명이 시작된 것일까?” 이는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만 년 전 지구는 빙하기였다. 기후학자들은 빙하기 시대에는 지역마다 기온차가 심해서 바람도 지금보다 훨씬 더 셌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는 유기질 토층이 유실돼 농사를 짓기 어렵다. 빙하기가 끝나기 시작하면서 기온이 조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인류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강 하구의 비옥한 땅을 찾았고 정착을 했다. 하지만 마을을 만들어도 계속해서 올라가는 기온에 해수면이 상승해서 자리 잡은 마을은 몇 백 년 후에는 침수가 됐을 것이다. 수메르문명 이전의 더 오래된 문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승한 해수면 때문에 침수됐을 가능성이 크다.  
 
고대의 많은 신화들은 그러한 침수로 인해서 문명이 멸망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틀란티스 문명과 노아의 홍수 이야기뿐 아니라 거의 모든 문명에는 홍수설화가 존재한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이 신화들이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 문명이 있는 마을이 해수면 상승으로 계속 사라지다가 기원전 5000년께 해수면 상승이 멈추면서 그때부터 문명의 축적이 이뤄지고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1500년 정도 지난 후에는 고대 수메르문명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한옥은 기후와 기술력이 만들어낸 결과물
[연합뉴스]

[연합뉴스]

수메르문명이 발달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엔 숲이 없다. 사막에 강이 흐르는 형식이다. 주변에 나무가 부족하다 보니 건축 재료는 진흙을 구워서 만든 벽돌을 사용했다. 이러한 농경문명은 가로로 긴 유라시아 대륙으로 펴져나갔다. 그리고 그 지역의 기후에 따라서 다른 형태의 건축물로 진화하게 된다. 수천 년이 흘러 극동아시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한옥이라는 주거형태를 가지게 됐다. 한옥의 형태는 형이상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나온 디자인이다. 우선 농경사회에서 벼를 수확한 것을 탈곡하고 각종 작업을 할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집을 주변으로 짓고 가운데 마당을 두었다. 우리 조상들 집의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지 않다. 작업장이기 때문이다. 당시 구할 수 있는 주요 건축 재료는 나무였다. 달구지 같은 교통수단과 노동력으로 지을 수 있는 건축물의 규모는 지금 우리가 보는 한옥의 좁은 변의 길이 정도였다. 많은 방이 필요하면 기둥을 한 방향으로 이어서 옆으로 길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대륙의 동쪽에 위치해 계절풍의 영향으로 집중호우가 많은 몬순기후이다. 그래서 연강수량 1000mm 이상에서나 가능한 벼를 재배해서 쌀을 주식으로 삼는다. 장마철에는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조적식 벽을 세우기 어려워서 기둥을 사용하였다. 나무기둥은 하부가 물에 잠겨서 썩지 않게 주춧돌 위에 세웠다. 땅이 습하니 마루는 땅에서 들려진 높이에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대청마루는 디딤돌을 밟고 올라간다. 한옥디자인은 기후와 당시의 기술력이 만들어 낸 진화의 결과물이다. 그러던 우리가 지금은 콘크리트와 보일러와 엘리베이터 덕분에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다.
 
도시와 건축의 진화는 주어진 기후 속에서 문제해결을 하는 지능이 만들어 낸 과정의 결과물이다. 환경의 변화는 삶의 형식을 바꾼다. 바뀐 경제·정치구조는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만든다. 새롭게 만들어진 건축도시환경은 다시 사람을 바꾼다. 바뀐 사람은 다시 정치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조직을 바꾼다. 이는 다시 건축과 도시와 주변자연환경을 바꾼다. 전체적으로 그 규모와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 2만 년 전 동굴에서 수십 명이 살던 인간이 지금은 수천 만 명이 사는 도시를 만들고 지구의 반대편까지 하루도 안 돼 갈 수 있는 시간거리의 공간으로 지구를 바꿨다. 기후가 바뀌면 건축과 도시와 사회가 바뀐다. 기후변화가 심하게 다가오는 이 시대에 진화의 수레바퀴는 다음 세대에 우리를 어떤 사회와 건축과 도시로 이끌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유현준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건축의 흐름』『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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