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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개혁,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에서

런던 아이(London Eye)
오디세우스는 항로에서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머리가 6개인 괴물 스킬라는 한 번에 여섯 명까지만 사냥할 수 있다. 반면 소용돌이인 카리브디스에 휘말리면 배가 통채로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 고민 끝에 오디세우스는 스킬라를 택해 부하 6명을 바치고 통과했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Between Skylla and Charybdis)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 상황을 의미한다. [알레산드로 알로리 작, 프레스코화(1575)]

오디세우스는 항로에서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머리가 6개인 괴물 스킬라는 한 번에 여섯 명까지만 사냥할 수 있다. 반면 소용돌이인 카리브디스에 휘말리면 배가 통채로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 고민 끝에 오디세우스는 스킬라를 택해 부하 6명을 바치고 통과했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Between Skylla and Charybdis)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 상황을 의미한다. [알레산드로 알로리 작, 프레스코화(1575)]

괴물 스킬라와 소용돌이 카리브디스 사이에 놓인 오디세우스처럼 문재인 대통령은 재벌 개혁의 위험한 여행을 시작했다. 너무 적은 개혁은 정치적인 악재가 될 것이고, 너무 과한 개혁은 의도치 않은 높은 경제적 비용을 유발할 수 있다.
 
최근 열린 제 10회 존템플턴투자회의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큰 안건으로 등장했다. 투자자들은 한국 고유의 4가지 특징에 대해 우려했다. 첫째, 재벌을 중심으로 한 기업들의 복잡한 지배구조다. 광범위한 상호 출자를 통해 낮은 지분율로도 기업 전체를 통제한다. 둘째는 이사회가 거수기로 전락하면서 나타나는 경영 투명성의 부족, 셋째는 무시되는 소액 주주들의 권리, 넷째는 적은 배당금이다. 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홍콩·말레이시아 등 영미식 관습법을 따르는 나라보다 한국·일본 등 독일식 성문법 국가에서 주주의 권리를 낮게 보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국은 지금까지 많은 투자 유치 기회를 날렸다.
 
확실히 재벌은 이 같은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될 만하다. 4대 그룹 계열사의 시가총액이 한국 주식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경제력 집중이 심하다. 재벌 경영진은 주주들이 배당금을 받는 대신 기업 성장을 통해 주가 차액을 얻도록 하는데 집중했다. 국민연금공단의 지분을 재벌 기업 간 합병에 동원했다는 스캔들도 벌어졌다. 이사회는 무용지물이었다. 지난해 이사회에서 결정된 4000건의 안건 가운데 사외이사가 반대한 것은 1%도 안된다.
 
이런 모습은 국제 투자자들을 쫓아냈다. 한국의 배당 수익률은 평균 2% 미만으로 시총 기준 상위 24개 증시 가운데 22위다. 상호 출자와 투명성의 부재는 과반수는커녕 10%도 안되는 지분율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주식 하나에 투표권 하나’라는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관점에서는 공평하게 보이지 않는다. 외국 투자자들은 4대 그룹에 집중하고 100위권 이하의 회사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코스피 전체의 외국인 지분율은 6% 정도지만 상위 25% 기업들에 대해서는 50%에 달한다.
 
지주회사 도입, 배당 강화 등 긍정적
재벌들이 최근 강한 압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삼성과 롯데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스캔들에 연루된 것이 문 대통령의 당선 요인 중 하나가 됐다. 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은 ‘재벌 개혁 없이는 경제 민주화나 성장도 없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재벌 저격수’로 불리던 김상조 교수를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하면서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전자 투표의 도입도 공약했다. 현재까지 37%의 회사만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전자 투표를 도입했다. 지난해의 경우 기업들의 90%가 5월 하반기에 정기 주주총회를 진행했기 때문에 많은 주주들이 직접 참석하기 어려웠다. 또 집단 소송 요건 완화, 집중투표제 도입, 종업원 대표의 이사회 참석 의무화 등도 공약했다.
 
다만 공정위는 교조적이 아니라 실용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기대된다. 문 대통령의 공약은 하나 하나 따지면 탁월하지만 전체적으로 재벌에 대한 공격에 이용될 경우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으로 재벌이 너무 심한 피해를 입는다면 주가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는 소액주주들의 피해로 이어진다. 작은 것을 버리다가 큰 것까지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격이다.
 
한국은 경제 상황에 맞춰 독자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발전시켰다. 맞지 않는 틀에 억지로 끼우기보다는 지금까지 흘러 온 역사와 현재 상황에 맞는 지배구조를 개발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미 지주회사 체제를 비롯한 많은 개혁을 자체적으로 시행했다. 그들은 투명성을 높이고 더 많은 외국인 투자자를 모으기 위한 첫 걸음을 떼고 있다. 최근 삼성의 배당 강화 정책도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역설적이게도, 정말 문제가 있고 소액 주주에 대한 대우를 개선해야 하는 것은 상위 100대 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다.
 
지금의 뜨거운 여론을 업고 너무 급하게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 위원장이 이끄는 공정위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포함해 넓게 자문을 구해야 한다. 규정에 기반한 접근보다는 원칙 기반의 접근법이 나을 수 있다. 재벌을 포함한 모든 이해당사자가 동의할 수 있는 기업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내야 한다. 목표는 과거 행위에 대해 재벌들을 처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경영 체제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이사회 통해 개혁 권유해야
564조원의 자산을 지닌 국민연금은 개혁 과정에서 두 가지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먼저, 현재 27%인 해외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을 5년 안에 40%로 끌어올리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결정이다. 이는 국내 증시를 좌지우지하는 과도한 지배력을 줄여서 기업들이 주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투자한 회사의 이사회를 통해 개혁을 하도록 권유할 수 있다. 모든 주주에게 이득이 된다고 설득하는 것이 공정위가 규정을 통해 강제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모델을 참고할 만 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접적인 규제는 없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이 실제로 한국 증시에서 거래에 나서기는 녹록치 않다. 글로벌예탁증서(GDR)나 미국예탁증서(ADR)의 형태로 뉴욕이나 런던 증시에 상장한다면 훨씬 접근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한국 기업은 겨우 9개 뿐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차의 ADR이 미국 증시에서 더 이상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 투자자들은 직접 이들 기업 주식을 사기 어렵다. 예탁증서 발행 관련 규정을 조금만 손본다면 외국인 투자가 늘 수 있다.
 
정리하자면 재벌을 완전히 해체하는 것은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신 공정위와 재벌이 머리를 맞대고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드는 편이 효과적이다. 이를 통해 재벌들 역시 훨씬 더 효율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오디세우스와 같은 처지에 놓인 문 대통령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키를 돌리기를 기원한다. 여행과 치유가 시작되기를.
 
 
로리 나이트 : 전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장
스위스 중앙은행 부총재와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인 템플턴칼리지 학장을 역임했다. 현재 영국의 대표적 투자자문사인 옥스퍼드메트리카를 이끌고 있으며, 템플턴 재단 이사로 투자위원회 의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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