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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6홀은 기본, 배낭여행 정신으로 코스 700곳 섭렵

골프여행가 백상현 올리버와이만 한국 대표
백상현 대표가 모은 각 골프장의 그린 마커들(위 사진). 백 대표는 죽기 전 꼭 다시 갈 3개 코스로 스코틀랜드에 있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아일랜드의 밸리버니언(아래 사진),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캐벗 링크스를 꼽았다. 한국 골프장도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임현동 기자

백상현 대표가 모은 각 골프장의 그린 마커들(위 사진). 백 대표는 죽기 전 꼭 다시 갈 3개 코스로 스코틀랜드에 있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아일랜드의 밸리버니언(아래 사진),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캐벗 링크스를 꼽았다. 한국 골프장도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임현동 기자

2010년 여름 모건스탠리 서울지사의 백상현(50) 전무는 부인과 함께 아일랜드 골프 여행을 했다. 부인은 투병 중이었다. 여행은 힘겨웠다. 2주간 매일 이동하며 한두 코스를 돌아다녔다. 비바람은 심했고 카트도 타지 않았다. 그래도 부인은 남편과 함께 대자연을 느끼는 것을 아주 행복해했다. 놀랍게도 부인의 건강은 좋아졌다.

재경부 공무원 출신 금융전문가
유럽·미국·호주·카리브해까지
80개국 여행 마일리지 200만 마일

알뜰 경비로 최고 골프장 투어 경험
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에 뽑혀
“골프 여행으로 아내 건강 되찾아”

 
백상현씨는 지금 한국 최고의 골프여행가로 불린다. 해외 골프장 약 500개를 포함해 그간 700여 개의 코스를 섭렵했다. 부인과 함께 다닌 골프장은 약 200개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차석 합격한 엘리트 공무원 출신이다. 스탠퍼드대 MBA, 골드만삭스 이사와 모건스탠리 전무를 거쳤다. 현재는 세계 최대의 금융산업 전문 전략컨설팅 회사인 올리버와이만 한국 대표다. 이력을 보면 엄청난 ‘금수저’ 출신이거나, 피도 눈물도 없는 월가 금융인이 연상된다. 그러나 백 대표의 인생역정은 순탄치 않았다.
 
전북 익산시청에서 근무하던 아버지가 1980년 신군부의 공무원 강제해직 조치로 실직했다. 이후 변변한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여섯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다. 백 대표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독지가가 제공한 독서실 책상 아래에서 잤다. 어느 날 꿈이 생겼다. 군산상고 야구팀이 우승한 후 에이스 조계현의 아버지가 군산시청에 특별 채용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 대표는 “내가 만약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하면 우리 아버지도 다시 시청에 복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새벽이슬을 맞으며 달렸다. 복싱 영화 ‘록키’ 주제가를 흥얼거리며 실베스터 스탤론처럼 이기겠다고 다짐하면서다. 억척스럽게 공부했고 전국 4등, 전북 수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아버지 취직 도우려 억척스럽게 공부
그는 역마살이 있다. 가난했지만 그래서 곤궁한 여행이 두렵지도 않다. 백 대표는 군 복무 후인 91년 200만원을 모아 배낭여행을 떠났다. 하루 5달러로 9개월간 아시아와 유럽 30개국을 돌아다녔다. 그는 “여행하면서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를 봤다. 우리나라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나라를 위해 경제정책을 펴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새벽을 달리면서 의지를 불태웠다. 2년 후 행정고시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97년 외환위기 시 재경부 국제금융과에서 국가신용등급 상향 업무를 맡았다. 그는 재경부에서 1년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재미동포와 결혼했다. 그러나 부인은 한국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백씨는 꿈을 접고 미국으로 가야 했다. 스탠퍼드대에서 MBA를 땄다.
 
34세에 골드만삭스 홍콩지사에 입사했다. 백씨는 “일고여덟 살 어린 동기들과 경쟁해 IT(정보기술) 버블 붕괴라는 살벌한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했다”고 술회했다. ‘록키’는 또 이겼다. 한국에 처음으로 주가지수연계정기예금을 출시해 대히트를 쳤다. 그는 은행·증권·투신사에 수조원에 이르는 주가지수연계증권(ELS)을 팔았다. 2005년 모건스탠리로 옮겨 전무로 채권 발행과 IPO 등을 담당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은 스트레스는 많았으나 휴가가 비교적 길어 여행엔 좋았다. 2006년 가족과 함께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다 눈부신 바닷가 골프장에 매혹됐다. 부인이 투병하게 된 후엔 더 자주 가족여행을 떠났다. 골프 코스에서 병을 치료했다고 백 대표는 믿는다.
 
아들이 중학교에 가면서 주로 혼자 여행을 다니게 됐다. 2013년 모건스탠리에서 퇴직하고는 내친김에 전 세계 명골프장을 다녀보자는 목표를 잡았다. 그는 “47일 동안 유럽 7개국 47개 코스를 여행했고, 43일간 미국을 서부에서 동부로 횡단하며 미국 퍼플릭 100대 코스 가운데 53곳에서 플레이했다. 캐나다도 횡단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뉴질랜드·카리브해에 이르기까지 세계 100대 코스가 있는 곳은 다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에 여러 코스를 돌아보려니 일정이 빡빡하다. 하루 36홀은 기본이고 오전 일찍 플레이하고 300㎞를 운전해 오후에 한 게임 더 할 때도 많았다. 주로 혼자 다닌다. 백 대표는 “그런 일정에 누가 따라나서겠나”고 되물었다.
 
43일간 미국 횡단하며 53개 코스 돌아
백씨가 다닌 거리는 얼마나 될까. 잘 계산이 안 된다. “비행기 마일리지는 200만 마일”이라고 했다, 여행 다닌 나라는 총 80개국, 골프 관련해서는 40개국이다. 백 대표는 대학 시절 했던 배낭여행 정신을 지키고 있다. 싼 여행 계획을 짜는 데 박사다. 그가 2014년 쓴 ‘당신도 라운드할 수 있는 세계 100대 골프 코스-유럽편’에는 저렴하게 여행하는 법도 소개했다. 백 대표는 가장 싼 비행기 티켓과 깨끗하면서 싼 숙소를 얻고 렌터카를 빌려 여행을 한다. 아무리 먼 거리도 직접 운전한다. 환전수수료 등 작은 부분도 챙긴다. 그러나 그린피같이 꼭 써야 할 곳엔 아끼지 않는다. 백 대표는 골프 전문지의 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이 됐다. 『당신도 라운드할 수 있는 코스』 시리즈를 이어 갈 계획이다. 골프 실력은 80대 초반인데 “요즘 퍼트에 눈을 떠 70대로 접어들었다”며 좋아했다.
 
백 대표의 국가별 골프장 품평은 디테일이 살아 있다. 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니 당연지사다. “일본은 청결하고 음식이 맛있으며 인프라가 좋아 여행 자체로도 좋다. 거목들이 즐비한 숲에서 골프를 즐길 곳도 많다. 하지만 골프장은 전반적으로 밋밋한 편이어서 재미가 떨어진다. 중국은 반대로 여행 여건이 열악하고 음식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계적인 설계가들이 만든 첨단 코스가 많아 재미있고 역동적인 골프를 즐길 수 있다. 유럽과 호주는 최고 명문 프라이빗 클럽이라도 주중 또는 주말 오후에 비회원의 방문을 허용하는 개방성을 갖고 있다. 반면 미국의 프라이빗은 회원 동반 없이는 플레이할 수 없다. 동남아시아는 잘만 선택하면 좋은 코스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받으며 저렴하고 여유로운 골프를 즐길 수 있다.”
 
여러 나라를 돌다 보니 한국 골프장도 잘 보인다. “골프장은 수준급인데 벙커 정리가 가장 나쁜 곳이 한국”이다. 그래서 올 초 사비를 들여 골프문화재단과 함께 벙커 정리 캠페인 팸플릿 2만 부를 인쇄해 골프장에 배부했다. 앞으로도 골프 문화 발전을 위해 뭔가 기여하려 한다.
 
백 대표가 가본 곳 중 가장 인상적인 골프장은 호주 멜버른 남쪽 케이프 위컴이다. 멜버른에서 경비행기로 한 시간여를 날아가면 닿는 킹 섬에 있다. 백 대표는 “바람과 파도가 강해 19세기에 수없이 많은 배가 코스 앞 바닷가에서 난파당했다고 한다.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 바위와 들풀·파도가 극적인 풍경을 펼쳐낸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이 코스를 돌면서 도전과 흥분, 성취감을 느꼈다. 마지막 몇 홀을 남겨놓고 갑자기 쏟아진 빗속에 마무리한 18번 홀에서 코스를 뒤돌아볼 때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고 말했다.
 
죽기 전 다시 가고 싶은 곳은 세인트앤드루스
죽기 전에 세 곳을 다시 갈 수 있다면 어디일까. 첫 번째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다. “골프의 성지에서 수백년 전 볼을 굴리며 골프라는 게임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숨결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이유다. 두 번째는 아일랜드의 밸리버니언 골프장이다. “거대한 둔덕을 낀 장쾌한 정통 바닷가 코스여서 꼭 다시 플레이하고 싶다”고 한다. 마지막은 캐나다 노바스코샤 먼 북쪽에 자리 잡은 캐벗 링크스다. 오지에 자리 잡은 풍광이 그림 같은 코스라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매크리하니시, 아일랜드의 워터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레오퍼드크릭, 웨일스의 세인트 에노독, 도미니카공화국의 카사드 캄포도 그런 곳들이다.
 
백상현 대표는 “골프에서 강조하는 정직을 통해 클라이언트와 신뢰를 쌓았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백상현 대표는 “골프에서 강조하는 정직을 통해 클라이언트와 신뢰를 쌓았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백 대표는 다른 세상에 대한 눈을 뜨고 있다면 여행이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 시절 배낭여행으로 얻은 글로벌 시각과 영어회화 능력이 평생의 커리어에 도움이 됐다. 공무원으로 국제업무를 맡게 됐고 외국계 증권사에 겁 없이 들어간 것도 여행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80개국 이상 여행하다 보니 어느 나라에 대한 주제가 나오든 여행을 통해 익힌 느낌과 지식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한 어느 나라 고객·투자자·전문가를 만나든 그 나라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스토리를 이야기할 수 있다. 해외 금융 전문가들과 함께 협업을 통해 고객을 서비스하는 직업의 성격상 해외에서의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된다.”
 
골프를 통해 배운 것은 더 많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 언제든지 샷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얻어지는 겸허한 마음, 동반자와의 플레이 속에서 얻어지는 배려의 마음, 샷을 하는 내가 누리는 자유의 소중함….” 또 골프에서 강조하는 정직을 통해 까다로운 회사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골프 여행에 대해 가장 감사하는 것은 가족이다. 백 대표는 “골프 여행이 아내의 건강을 회복하게 해줬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한 느낌을 갖게 했다. 지금도 골프 여행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아내와 더 많이 여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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