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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겐 이분법이 없다

삶과 믿음
1520년 스페인은 당시까지 격리되어 있던 멕시코를 침략했다.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자신을 스스로 아스텍인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 낯선 이방인들은 어떤 노란 금속에 극도의 관심을 나타냈다. 아스텍 원주민들 역시 노란 금속, 즉 황금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황금은 빛이 아름답고 가공하기 쉬워서 그것으로 장신구나 조각상 같은 것을 만들었다. 하지만 먹을 수도 없고 천을 짤 수도 없으며 너무 물러서 도구나 무기를 만들 수도 없는 금속에 침략자들이 왜 그리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원주민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묻자, 그들 중의 우두머리가 대답했다. “나와 내 동료들은 황금으로만 나을 수 있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중 ‘돈의 향기’라는 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이 얼마나 황금에 집착했는가를 잘 보여 주는 이야기다. 황금에 대한 탐욕을 감추기 위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그때부터 자본주의 문명이 극에 달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마음의 병은 고칠 수 없을 만큼 더 깊어진 것이 아닐까.
 
오늘날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사는 이들 또한 이 마음의 병에서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배불뚝이 신(Mammon)을 숭배하는 탓이다. 이 배불뚝이 신에 사로잡히면 매사에 손익과 효율을 따진다. 손익과 효율을 앞세우는 신자들은 조건 없이 신을 사랑하지 못한다.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설교집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어떤 신자가 자기 스승에게 물었다. “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하느님만이 우리가 그분을 사랑해야 할 이유이다. 하느님은 무(無)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아무 방법 없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손익과 효율을 따지기에 익숙한 신자들은 ‘하느님만이 우리가 그분을 사랑할 이유’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하리라. 주판알을 튕겨 주고받음에 익숙한 자본의 사슬에 묶인 사람들은 ‘하느님 사랑’의 보답으로 돌아올 ‘하느님=무’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
 
요컨대 엑카르트의 가르침은 무조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인데, 이 말은 곧 천국이라든지 영원한 생명이라든지 하는 목표도 없이 사랑하라는 것이니, 이런 비효율적인 사랑을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천국이나 영생 같은 바깥에 있는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그것은 곧 이분법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 속에 그런 목표 없이 무조건적으로 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자각이 싹튼다면, 우리는 이미 천국과 영생을 우리 속에 실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들에 피는 백합이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꼭 백합이 아니라 어떤 꽃이든 상관없다. 꽃들은 어떤 이유를 가지고 피어나지 않는다. 어떤 손익과 효율을 따지면서 피어나지 않는다. 꽃들에겐 이분법이 없다. 그냥 핀다. 그냥 피어나는 꽃들은 마음의 병도 없다. 우리 삶의 스승이 멀리 있지 않다! 
 
 

고진하 목사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김달진 문학상과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원주 한살림 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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