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이제 다시, 시작이다

피아노
‘다시 피아노’ (앨런 러스브리저 지음) 의 한 구절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피아노 앞에 앉으니 묘하게도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어차피 완벽한 연주란 불가능하다. 나는 그저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1년 넘게 매달려온 개인의 탐험이 맺은 결실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

그 여자의 사전  어린 시절 여자가 왠지 남들보다 잘할 수 있겠다 믿었던 자신감의 원천. 그러나 남들보다 뒤처지기 시작하며 어느 때부터 여자의 좌절감의 원천으로 뒤바뀐 것. 이제는 남에게 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자 맛보는 진짜 즐거움의 원천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  

 
오랜만에 다시 피아노 연주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계기는 영국 가디언지의 편집국장이 쇼팽의 발라드에 도전한 책 이야기를 본 일이다. 목표곡은 바흐의 ‘이탤리언 콘체르토’로 정했다. 매트 데이먼이 영화 ‘리플리’에서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이렇듯 귀가 얇은 유명인 ‘따라쟁이’ 같은 이유를 대긴 했지만, 더 큰 이유는 ‘그래, 나에게도 피아노라는 게 있었지’하는 마음의 소리가 문득 크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언급할 때면 어머니는 늘 술 마시고 귀갓길에 피아노 소리가 아름답게 들려 그 길로 곧장 외상으로 피아노를 싣고 오신 아버지의 생전 에피소드를 말씀하신다. 그렇게 전셋집에 모셔진 피아노의 활용방안으로 유일한 딸인 내가 피아노를 배우게 됐다는 이야기다.
 
어찌 됐던 나는 소질도 있다는 소리도 듣고 소소한 대회에서 상도 받고 하면서 바이엘에서 체르니를 거쳐 또래 아이들처럼 장래희망란에 ‘피아니스트’를 적고 일단은 그 길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꿈은 1979년 10·26 사태라는 역사적 장애물 앞에 꺾였다. 야심차게 1등을 노리고 두 시간 거리의 시외 원정 레슨까지 몇 달 동안 받으며 준비했던 대회가 일주일을 남겨두고 계엄령 선포로 무산된 것이다. 열한 살 소녀는 허탈감을 이기지 못하고 피아노를 접었다.
 
현대사의 중요한 한 장면에 조용히 꿈을 바쳤지만, 피아노와의 인연은 간간이 계속됐다. 고등학교 합창반에서 반주를 맡기도 했고 회사 노조 파업을 할 때 운동가요 반주로 동료들을 신나게 해주기도 했다. 가끔 화석처럼 남아있는 꿈이 꿈틀댈 때 적금 통장을 깨서 비싼 디지털 피아노를 사거나 영화 ‘섈 위 댄스’의 주인공처럼 서른 넘어 어느 날 빌딩 이층의 간판에 이끌려 몇 개월간 재즈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음은 조성진인데 내 손에서 나오는 멜로디는 이층집에서 들려오는 층간 소음 수준으로 퇴화한 모습만 확인해야 했다. 한 때 꿈이라고 했던 일을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나에게 화가 났고 좌절은 점점 커졌다. 멋진 피아노 연주를 볼 때면 왠지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핑 돌아 연주를 듣거나 보는 일도 서서히 멀리하게 됐다. 그리고 중년이 되어서는 내가 피아노를 쳤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었다.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본다. 손가락은 더 굳어버려 소리는 뭉개지기만 하고 악보 잘 읽는다고 칭찬받던 눈은 노안 때문에 악보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다. 내 손가락을 눌러 솔을 치면 솔 소리가 나고 미를 치면 미 소리가 난다. 건반과, 건반이 만드는 음 그리고 내 손가락 사이에 아무것도 가로막는 것이 없다. 힘들게 써도 내 마음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글쓰기보다, 어렵게 보고서를 써도 윗분들에게 잘 통하지 않는 내 진심이, 그냥 내 손가락 하나하나에 바로 바로 멜로디로 피어나는 것이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모습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 같았다. 아, 이것이 예술이 주는 ‘자유’라는 경지일까. 왜 그동안은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면서 나라는 관객 앞에서 유령 같은 무대 공포증을 느꼈던 것일까.
 
스스로에게 실망할 것이 두려워 피아노를 치지 않았던 그 시간을 아까워하며 다시 한번 건반을 눌러본다. 사실 이탤리언 콘체르토는 내 수준으로는 완성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평소의 끈기로 봤을 때 이런 일은 며칠 가지 않아 그칠 게 뻔하다. 가디언의 편집국장처럼 1년을 연습해서 남들 앞에서도 멋진 연주를 하고 책도 내고 그런 일은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불가능할 거다. 그러니 피아노를 시작했다는 이 글만을 남기고 아마도 내 피아노의 역사는 또 스르륵 사그라들 것 같은 예감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이전과는 달리, ‘내 귀’라는 엄격한 관객을 무시한 채 뚱가당 뚱가당 거리는 순간만큼은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
 
 
이윤정 : 칼럼니스트. 사소하고 소심한 잡념에 시달리며 중년의 나이에도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인 여자.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