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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울림 담긴 음반, 생생한 날 것 그대로

팔리지 않고 잘 알아주지도 않는 국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음반사가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음반사 가운데 가장 특색 있다고 할 ‘악당이반’이다. 음악을 다루는 회사 이름이 험상궂은 어감의 악당이라니, 의아스럽게 느껴진다. 회사 설립자의 독특한 성격과 장기 계획을 녹여낸 작명이다. 악당은 노래 ‘악(樂)’ 무리 ‘당(黨)’의 조어로, ‘노래를 즐기는 무리’가 된다. 이반(二班)은 인생의 두 번째 계획인 음반 사업을 뜻한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65>
국악브랜드 ‘악당이반’

악당이반의 김영일 대표는 이십 년 전쯤 우연히 채수정이 부르는 단가 ‘편시춘’을 듣게 된다. 모태 음악애호가를 자처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고 했다. 클래식 음악이 전부인 줄 알았던 편향의 시선을 돌리게 해 준 우리 음악의 힘과 매력 때문이다. 이후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다. 본격적으로 국악을 들어볼 요량으로 관련 음반을 찾아보았다. 국악 판의 실태와 빈약하고 허술한 음반의 구색과 수준에 바로 실망한다.  
 
관심은 제 발로 찾아가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소리꾼들을 찾아내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7년 동안 지리산에서 홀로 판소리를 수련하는 이를 보았다. 소리꾼의 목에선 피가 터졌고 폭포 소리에 주눅 들지 않는 성량을 확인했다. 판소리는 전쟁과 같은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했다. 북은 소리를 잡으려 길길이 뛰었고 소리는 북을 타고 넘으려 핏발을 세웠다.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산조의 매력도 만만치 않다. 사설 있는 판소리와 다른 기악의 높은 예술성은 주목할 만했다. 가사와 반주도 없이 악기 하나만으로 한 시간 가까이 변주되는 산조다. 서양 음악과 달리 산조는 반복의 형식이 없다.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의 시간과 놀랍도록 닮았다. 평생에 걸쳐 한 곡만이 완성되는 산조다. 제자는 선생의 음악을 해석해 자신만의 음악으로 이어간다.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는 음악의 세계가 펼쳐진다. 현대음악의 어법을 조선시대에 완성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소리꾼 뒤편의 풀벌레울음 소리도 담아
듣고 싶을 때 이런 음악들을 들을 수 없다. 남겨진 음반이 빈약한 탓이다. 제대로 된 국악 앨범은 1980년대 한창기가 ‘뿌리깊은 나무’에서 만든 전집 정도였다. 이후 일본인 프로듀서에 의해 기획되어 삼성계열사인 ‘나이세스’ 레이블로 나온 한국의 음악 시리즈가 있다. 내용을 알면 부끄러운 점 투성이인 작업들이다. 공백은 컸다. 아무도 하지 않으니 직접 국악 음반을 내 볼 생각을 했다. 지금 챙겨두지 못하면 영영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제 나라의 소중한 기록이 안타까웠다.  
 
8년 가까이 전국을 떠돌며 우리 음악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완성된 300여 개의 녹음 테이프를 CD로 만들기 위해 음반사를 찾았다. 문전박대당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2005년 악당이반을 차려 본격 국악 음반을 만드는 계기로 삼았다. 최고의 음질로 우리 음악의 감동을 담자-. 출발의 결심은 단순하지만 단단했다. 오디오 파일로 살아온 오랜 이력과 영향력 있는 국제음악박람회 미뎀(MIDEM)의 참가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세상은 좋은 음악이라면 무엇이든 수용한다. 이전엔 포르투갈 ‘파두’가 그랬고 요즘 뜨는 리투아니아의 음악이 그렇다. 한국의 산조라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통용될 만한 음악이란 확신이 들었다. 문제는 녹음과 음질의 퀄러티. MIDEM에서 CD 수준의 음질로는 관심조차 끌기 어려웠다. 최고의 음반 포맷 SACD의 바탕인 DSD(Direct Stream Digital) 기술을 쓰기로 했다.  
 
우리 음악의 생동감은 녹음실 스튜디오에서 잡아내지 못한다. 음악이 펼쳐지는 현장이라야 제격이다. 원래의 국악은 무대에 서는 공연 형태를 취해 본 적이 없다. 한옥에서 녹음한다면 음악의 신명과 분위기는 물론 현장의 자연스러움까지 더해질 것 같았다. 사방이 터진 대청마루에서 나무와 흙벽과 종이의 울림이 섞인 음향은 바라던 느낌이기도 했다. 창호지는 장구나 북의 음을 효과적으로 걸러내고 서까래는 소리를 퍼뜨려준다. 우리 음악에 딱 어울리는 맞춤형 스튜디오라 할만 했다.  
 
녹음 장소의 파격만큼 기술적 관행도 따를 이유가 없다. 음향 효과를 덧붙이고 채색하는 편집과정을 빼버렸다. 현장의 생생한 소리를 마이크로 잡아내 그대로 원본을 만드는 다이렉트 레코딩이다.  
 
악당이반의 음반 뒤엔 ‘Music from Hanok’과 ‘Pure Recoding’이라는 말이 찍혀 있다. 평소 듣던 CD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면 장소와 녹음방식의 차이를 저절로 알게 된 거다. 소리꾼의 뒤편에서 풀벌레 울음과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가 난다. 밀실의 차단 대신 한옥이란 개방공간의 울림을 그대로 담았다. 소리를 둘러싼 주변 분위기까지 음악이라는 지론의 실천이다. 날것의 생생함이 그대로 다가오는 듯한 음향 특징은 악당이반 음반의 공통점으로 삼을 만 하다.
 
2012년 그래미상에 국내 음반 최초로 후보 오르기도
악당이반의 레코드는 최고와 최초의 기록들을 여럿 갈아치웠다. 12년 남짓한 기간 동안 100여 개가 넘는 국악 타이틀을 만들어냈다. 매년 열 개 가량의 음반을 꾸준히 낸 기록은 대단하다. 국가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걸 알면 이 작은 회사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지 모른다.  
 
또 하나는 국내 최초의 SACD와 세계 최초 DSD 256 레코딩과 아날로그 릴 마스터 프레싱 LP의 발매다. 이런 성과는 기술적 부분이니 들어도 별 감흥이 없을게다. 우리 음악을 최고의 상태로 세계인에게 전달하려는 충정과 집념의 행동이란 점만 알면 된다.  
 
2012년엔 제54회 그래미상에 ‘정가악회 풍류가곡’이 노미네이트 된 이변이 일어났다. 국내 음반의 전 역사를 통해 처음 있는 일이다. 수상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그래미협회의 자격요건은 미국에서 정식 유통되는 음반과 국제저작권번호(ISRC)가 있는 것에 한정된다. 우리나라는 국제저작권협회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 ‘KR’이란 국제 저작권 인정을 받기 위한 4년의 세월은 아무도 모른다. 미국에서 20장 남짓 팔린 정가악회 CD가 거두어들인 성과만 기억하자.  
 
악당이반의 음반들은 규모가 크다는 교보의 핫트랙스에서 한 타이틀당 일 년에 10장 정도 팔린다. 하루가 아니다. 한 달도 아니다. 판매량만 보자면 악당이반은 당장 문을 닫아야 한다. 팔리지 않는 국악 음반을 최고의 퀄러티로 만들어내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상한 회사의 이상한 셈법은 주변의 우려와 안타까움을 더한다. 다른 데서 돈 벌어 우리 음악을 지키는 데 쓰는 것 일뿐이라니….  
 
적자가 쌓여가는 악당이반은 외려 사업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이 땅에서 들리는 소리와 벌어지는 음악행위를 한국의 음악으로 파악하기 시작한 변화다. 악당이반을 모 기업으로 삼아 각기 다른 성격의 음악을 특화시킬 계획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소리를 기록해 종자은행과 같은 ‘사운드 소스’를 확보하는 거다. 한국의 원형을 발견해 내고 수집해 음악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된다.  
 
이를 담당할 새로운 회사의 이름은 ‘오뉴월’이다. 악당이반 만큼 이상한 작명이다. 좋은 계절인 5~6월과 ‘Oh New World Music’이라는 뜻을 담았다. 세상에 통용될 만한 새로운 한국음악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동안 확보한 1400여 종 음원의 스트리밍 서비스도 준비 중이란 소식을 들었다. K팝으로 대표되는 한국 음악의 지평을 넓히려는 거다. K클래식, K전통음악도 두루 섞여 탄탄해진 우리 음악이 대안이다. K뮤직이란 플랫폼을 깔아 세계인이 열광하는 음악을 공급하는 일, 생각만으로도 멋지지 않은가. ●
 
 
윤광준 :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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