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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듣는 짧은 시

청사 안광석의 전각 ‘월하탕주(月下?舟)’, 6.0×6.0 cm,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

청사 안광석의 전각 ‘월하탕주(月下?舟)’, 6.0×6.0 cm,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

월하탕주(月下盪舟). 달 아래 배를 젓는다. 이야기는 오른쪽 위에서 시작한다. 달이 떠 있다. 달 아래로 조각배를 움직이는 이가 있으니, 저 아래 또 한 척의 배는 아마도 물 위에 비친 그림자일까. 압축과 생략이 과감하니 정사각형의 공간 안에 여백이 넉넉하고 풍경이 한껏 호젓하다. 단 네 글자만으로 한 폭 그림 같고, 한 수 시 같다.  
 

유지원의 글자 풍경

무늬【文】와 증식【字】
청사 안광석의 전각 ‘삼림(森林)’, 2.6×2.6 cm

청사 안광석의 전각 ‘삼림(森林)’, 2.6×2.6 cm

같은 작가의 전각 작품 ‘삼림(森林)’에는 나무가 다섯 그루 들어있다. 그러나 겹쳐져 무수히 빽빽해 보인다. 풍경은 역시 오른쪽부터 전개된다. 불과 수 센티미터 작은 크기의 공간이지만 마치 현대 추상화 같다.
 
대학원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 중국 여학생 린린이가 있었다. 林林이라는 이름 속에는 나무만 네 그루다. 출석부에는 단지 Linlin이라는 로마자로 표기되었을 뿐이지만, 린린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木木木木, 나무로 엮은 생울타리가 한 번씩 상쾌하게 펼쳐지곤 했다. 이 이름에 대한 심상은 중국인, 대만인, 일본인, 한국인이 다 조금씩 비슷하고도 다른 것 같았다. 엄마가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했다. 린린이의 엄마는 딸의 이름에 시를 쓰셨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순우리말 이름도 많지만 대개 한자인 우리 이름에도 추상적인 가치ㆍ우주ㆍ자연ㆍ인간 이상향과 조화로움이 시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한자는 문(文)과 자(字)로 이루어진다. 후한 시대의 책 『설문해자』에 따르면, 文은 우주만물의 무늬를 본딴 것이다. 그래서 한자는 소리적 성격보다 그림적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이런 상형성을 바탕으로 하니, 한자는 대상과의 관계가 직관적이다. 한자와 로마자를 인식할 때 인간의 뇌는 서로 다른 기능의 영역을 사용한다고도 한다. 구체적 대상을 무늬로 본딴 것은 상형문자, 추상적 의미를 표현한 것은 지사문자다. 字는 文이 낳은 ‘아들’들이다. 상형문자와 지사문자를 조합해서 형성문자와 회의문자로 증식시킴으로써 한자는 복잡한 세계를 표현해낸다. 그러니 한자 한 글자에만도 그림과 시가 이미 함축적으로 담긴 셈이다.
 
글【書】과 그림【畵】
포토그래피는 ‘빛(photo)’으로 남긴 ‘흔적(-graphy)’이다. 뇌파를 검사할 때에도 뇌의 전기적 활동을 그대로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electroencephalography(뇌전도)’라는 표현을 쓴다. 활자를 다루는 타이포그래피에도, 손으로 쓴 글씨를 다루는 캘리그래피에도, ‘-그래피’라는 접미사가 등장한다.  
 
이 접미사는 라틴어 ‘-graphia’, 더 멀게는 그리스어 동사 ‘γρãφειν(gráphein)’에서 왔다. 이것은 ‘글’일까, ‘그림’일까? 글과 그림이 분화되기도 전으로 거슬러 간, 원초적인 자국이다. 무언가를 기록해서 흔적으로 남긴다는 의미이고, ‘시간’ 속에 머무르던 소리와 생각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공간’으로 옮겨서 고정시키는 과정이다.
 
순우리말 ‘글’과 ‘그림’은 어원이 같다. ‘긋다’에서 왔다고도 하지만, ‘긁다’에서 왔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글과 그림은 그 자리에 부재하는 화자, 소리, 대상이 흔적으로 남은 것이다. 부재하는 것들은 그리움을 일으킨다. 흔적과 자국이 마음에 남는 것을 ‘그리움’이라고 부른다. 그리움도 글과 그림과 어원이 같다. ‘글’도 ‘그림’도 본질적으로는, 부재하는 무언가와 더 잘 연결되고 싶고 더 잘 소통하고 싶은 ‘그리움’을 동기로 한다.  
 
새김【刻】과 남김【印】
마음에 새겨지고 남겨져 깊은 인상으로 기억되는 것을 ‘각인(刻印)’이라고 한다. 영어에서는 긁혀서 새겨지는 ‘스크래치(scratch)’와 ‘필체’를 뜻하는 ‘스크립트(script)’가 어원이 같다.  
 
전각과 도장은 부드러운 붓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칼로 새긴다. 돌에는 아니지만, 나무에 글자를 새기고자 칼을 손에 쥐어본 적이 있다. 옛 활자를 다섯 배나 확대해서 새기려는 데도 무서워서 칼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나무도 칼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무의 결도 잘 살펴야 하고, 위에 남겨지는 면과 아래로 파내어지는 면 사이의 각도도 적정한 경사를 유지하도록 신경써야 한다. 그래야 나무 글자의 획이 쉽사리 떨어져나가지 않는다.  
 
전각·도장·활자·판화는 모두 날카로운 도구로 새긴 후 찍는 방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친족 관계인 예술이다. 칼맛을 이해하고자 칼을 직접 손에 든 순간, 몸이 천금같이 정직한 경험을 하던 그 순간에는, 이론이 물러간 자리에 명상이 들어섰다. 한 획 한 획 글자를 새기는 것을 각자(刻字)라고 한다. 그렇게 새긴 글자들을 찍어서 자국을 남기는 것을 인출(印出)이라고 한다. 刻과 印, 두 글자가 보태어지는 의미가 지극하지 않은가? 이렇게 새겨낸 글과 그림은, 여러 장 찍어낼 수가 있다. 복제가 되고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간다.  
 
월하탕주(月下盪舟)에서는 자연 속에 사람이 호젓하다. 강에 달빛이 떨어지는 정서를 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는 월인천강(月印千江)이다.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에 인쇄되듯 ‘찍힌다(印)’라는 표현을 썼다. 달은 부처님의 말씀을, 천 개의 강은 사람들의 마음을 의미한다. 말은 한 번만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남도록 복제와 대량 생산을 하는 과정이 ‘인(印)’이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1449)이라는 노래책의 제목은 세종이 지었다. 갓 창제된 한글(1443)로 한국어를 표기한 가장 오래된 문헌 중 하나이며, 이미 높은 수준으로 정제되어가던 금속활자 기술로 인쇄했다.  
 
‘월인천강’ 네 글자는 내게 인쇄술과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로 읽히기도 한다. 달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이고, 그 생각을 강물이라는 종이에 찍고 스크린에 실어, 여러 사람에게 전한다. 이것이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더 정련해서 전하고자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 또 타이포그래피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사람들이 책과 신문과 잡지를 만들고 인터넷을 하는 이유다.  
 
그림과 글자는 한 몸에서 분화했다. 한 폭의 그림같고 한 수의 시같은 글자들이 강물에 달 찍히듯 사람의 마음에 찍힌다. 자국으로 남겨지고, 그리움으로 그려지고, 기억으로 새겨지고, 여러 사람의 마음 속에 각인되어 살아남아 생명처럼 생생한 심상과 이야기를 이어간다. ●
 
 
유지원
타이포그래피 연구자·저술가·교육자·그래픽 디자이너. 전 세계 글자들, 그리고 글자의 형상 뒤로 아른거리는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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