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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서 굳건해진 사랑…류샤오보 마지막 한마디는 "잘 사시오"

지난 13일 타계한 중국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왼쪽)과 그의 아내 류샤의 생전 행복했던 한때 모습. [사진 BBC 캡처]

지난 13일 타계한 중국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왼쪽)과 그의 아내 류샤의 생전 행복했던 한때 모습. [사진 BBC 캡처]

지난 13일 타계한 류샤오보(劉曉波·1955~2017) 부부에겐 결혼사진이 없다. 
 
그와 아내 류샤(劉霞·55)가 백년가약을 맺은 건 1996년 중국 베이징 동북지방의 노동교화소(수용소)에서였다. 류샤오보는 그 전해 천안문 6주년 기념행사에서 정치개혁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복역 중이었다. 면회 온 연인 류샤와 결혼사진을 찍어 혼인신고서를 낼 참이었지만 사진사의 카메라가 말을 듣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둘은 각자의 기존 사진을 오려내 같이 찍은 사진처럼 붙인 뒤 가까스로 혼인신고를 했다. 피로연은 수용소 구내식당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다.  
 
결혼은 그들에게 작은 승리였다. 합법적인 아내가 된 류샤는 이때부터 베이징에서 왕복 1600㎞에 이르는 면회 길을 한 점 원망 없이 달려갔다. 류샤오보와 처음 만났을 당시 6세 연하의 촉망받는 여류시인이었던 류샤는 이때부터 민주화운동가의 아내라는 굴레를 짊어져야했다. 그 심정을 류샤는 이렇게 표현했다.
 
“수용소로 향하는 저 열차/흐느끼며 내 몸 위로 구르네/그래도 나는 여태 당신의 손을 잡지 못했네(駛向集中營的那列火車╱嗚咽地輾過我的身體╱我卻拉不住你的手)”
 
중국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왼쪽)과 그의 아내 류샤. 류샤는 중국 당국의 인권 탄압에 항의하는 뜻에서 남편처럼 삭발을 했다. [사진 BBC 캡처]

중국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왼쪽)과 그의 아내 류샤. 류샤는 중국 당국의 인권 탄압에 항의하는 뜻에서 남편처럼 삭발을 했다. [사진 BBC 캡처]

중국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의 삶은 그의 아내 류샤를 떼놓고 말할 순 없다. 류샤는 남편을 20년간 옥바라지하면서 중국 당국의 핍박을 함께 견뎠을 뿐 아니라 남편을 대신해 중국의 반(反)인권 현실을 세계인에 폭로해왔다. 류샤오보가 마지막까지 해외에서 치료 받길 원했던 것도 아내 류샤의 장래를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이 한 여인에게서 보았어.”
 
영국 BBC의 6일 보도에 따르면 류샤오보는 류샤를 처음 만나고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20개월간 투옥됐다 풀려난 류샤오보는 교수직을 비롯해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은 상태였다. 감옥에 들락날락하는 사이 첫 번째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때 류샤오보는 인생의 빛이 될 사람을 만났다. 류샤는 두주불사일 정도로 술을 잘했고 류샤오보는 안주를 축내며 코카콜라를 마시는 정도였지만 두 사람은 빠르게 사랑에 빠졌다.
 
2010년 12월 10일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투르뵤른 야글란드가 중국 당국의 불허로 류샤오보(왼쪽)가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자 빈 의자에 메달과 증서를 올려놓고 있다. [AP=연합뉴스]

2010년 12월 10일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투르뵤른 야글란드가 중국 당국의 불허로 류샤오보(왼쪽)가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자 빈 의자에 메달과 증서를 올려놓고 있다. [AP=연합뉴스]

류샤는 은행 고위 관료의 딸로 유복하게 자랐다. 류샤의 부모는 의외로 두 사람의 관계를 허락해줬고 이들은 천안문 광장에서 멀지 않은 아파트에서 잠시나마 ‘정상적인’ 삶을 살기도 했다. 하지만 류샤오보는 항상 당국의 감시를 받는 상태였다. “왜 아이를 갖지 않느냐”고 친구이자 출판사 편집자인 랴오톈치(廖天琪)가 물었을 때 류샤오보는 계획이 없다면서 이렇게 답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지 애비가 경찰에 끌려가는 꼴을 보게 될 텐데 그게 싫어.”  
2008년 12월 ‘08헌장’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된 류샤오보는 이듬해 11년형을 선고받았다. 류샤는 이 소식을 접하고 “당신과 단 하루도 평화로운 날이 없었는데…”라며 울었다. 랴오텐치는 “류샤는 남편을 떠나려거나 어떤 다른 불평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극한 상황을 거쳐야 했는지를 호소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안타까운 마음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류샤오보는 “나는 유형의 감옥에서 형을 살지만, 당신은 가슴 속 무형의 감옥에 갇혀 있다”면서 “내 사랑은 다른 한편으로 자책과 후회로 가득차 있어 가끔 그 무게로 인해 비틀거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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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류샤오보가 중국의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당국의 핍박은 류샤에게도 향했다. 류샤는 가택연금에 처했지만 남편에게 이런 사실을 자세히 알릴 수 없었다. 당시 BBC 인터뷰 때 류샤는 “남편에겐 다만 ‘나도 당신과 비슷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가 이해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류샤는 당국의 부당한 탄압에 저항하는 뜻에서 남편처럼 머리를 삭발했다.
 
20년 부부 생활의 거의 전부를 떨어져 살았던 두 사람은 지난 5월 말 류샤오보가 간암 말기 상태에서 가석방되고 나서야 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났다. 류샤오보의 임종엔 아내 뿐 아니라 형 류샤오광(劉曉光), 동생 류샤오쉬안(劉曉喧) 등이 함께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남긴 말은 ‘혼자서도 잘 살아야 하오’였다. 류샤는 지난 8년 간 가택연금에 처하면서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매우 허약해진 상태로 알려져 있다.
 
지난 13일 간암으로 타계한 중국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왼쪽)과 그의 아내 류샤. [사진 BBC 캡처]

지난 13일 간암으로 타계한 중국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왼쪽)과 그의 아내 류샤. [사진 BBC 캡처]

외신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류샤오보의 시신을 화장해 바다에 뿌리라고 가족을 압박 중이라고 한다. 남편의 유골조차 수습하기 어려운 류샤에겐 남겨진 유품도 거의 없다. 
류샤는 96년 옥중 결혼 직후 99년까지 300여통의 편지를 썼고 남편도 그에 화답하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당국이 이들 집을 몇차례 가택 수색하는 사이 이들의 글과 편지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류샤오보의 타계 소식을 접한 세계는 이제 류샤의 연금해제를 촉구하고 있다. 류샤오보가 평생 걸었던 ‘인권 투쟁’의 길 위에 이제 그의 아내 류샤가 서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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