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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대통령, 세일즈맨, 그리고 협상가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어둠 속 목소리는 빡빡한 일정의 정상외교를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대통령께서 매우 엄중한 대외환경 속에서도 한·미 정상회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이끄신 것을 경하드린다. 이로써 우리 안보 상황은 좀 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대외적 위상은 확실히 제고되었다. 이 같은 대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가 여전히 여야 교착에 빠져 추경예산안·정부조직법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어둡지만 달콤한 속삭임은 한편으로 수긍이 가지만 다른 한편 위험하기 짝이 없는 귓속말이다. 외교적 재앙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을 매끄럽게 마무리 지은 것은 외교 경험이 많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의 뚜렷한 성과다. 또한 독일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에서 탄핵 이후 조기 선거를 통해 당선된 문 대통령에게 각국 정상의 높은 관심과 기대가 쏠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관리해 나가고 있는 외교 성과와 수렁 속의 국내 정치를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것은 자칫 문재인 대통령을 오도할 위험을 안고 있기도 하다. 현실 정치에서 모든 대통령은 두 개의 대통령직(two presidencies)이라는 딜레마와 씨름하게 돼 있다. 대통령은 한 사람이지만, 대통령직을 수행하다 보면 대통령은 지극히 대조적인 두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만 한다. 외교, 안보, 국제 협력 등을 다루는 대외정책 무대에서는 대통령의 주도권은 폭넓게 인정되고 국가 이익 수호자로서의 각별한 위상을 갖는다. 따라서 대외정책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배치 논란과 같은 예외가 가끔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의 직무에 대한 심각하고도 세세한 도전은 드물게 이뤄질 뿐이다.
 
다른 한편 국내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은 국가 이익의 수호자라는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지루하고 피곤한 당파 정치의 한 당사자가 된다. 예를 들어 문 대통령이 국회로 보낸 추경예산안과 정부조직법의 의도가 아무리 건전하고 민생을 위한 것이라고 한들, 야당들은 호락호락 그에 동의해 주지 않는다. 야당들은 대통령의 제안에 정치적 전리품이나 맞교환을 끊임없이 요구하게 마련이다.
 
널리 알려진 제왕적 대통령의 유혹 못지않게 두 개의 대통령직 딜레마를 외면하고 싶은 욕구(즉 국내 정치도 대외정책처럼 풀어 가고 싶은 욕구)는 대통령들을 괴롭혀 온 고전적 과제다. 대통령제를 오랫동안 관찰해 온 미국의 정치학자들은 두 개의 대통령직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한 몇 가지 해법을 제시해 왔는데, 문 대통령이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한 내용이다.
 
첫째, 이미 널리 알려진 고전적 해법으로서, 야당을 설득하는 정치. 즉 대통령의 권력은 곧 설득하는 힘이고, 설득의 정치가 작동할 때에만 대통령의 권력은 비로소 실질적인 것이 된다는 논리다. 달리 말해 대통령은 예산권·인사권 같은 공적 자원뿐만 아니라 지지도·소통 능력과 같은 비공식 자원까지 두루 동원해 야당을 설득하는 정책 세일즈맨이 돼야 한다는 처방이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처지는 나쁘지 않다. 가장 핵심 자원인 시민들의 지지율은 무려 75% 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남은 임기라는 시간적 정치 자원도 풍부하다. 대통령이 야당에 대한 압박보다 정책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만 한다면, 협상의 주도권은 대통령 쪽으로 기울 수 있다.
 
둘째, 조금은 비관습적인 해법. 이미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는 정상외교의 빛나는 성과를 칭찬하면서 국내 정치의 고루함, 야당과의 줄다리기의 피곤함을 대비시키는 참모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내부의 권력 경쟁, 공식 절차의 형식 속에 빠져드는 이들 참모만으로는 대통령의 성공이 보장되기 어렵다. 공식 참모들의 보고·정보·판단을 넘어 문 대통령 스스로가 대통령직을 위한 최고정보책임자(intelligence processing-in-chief)가 돼야 한다. 달리 말해 지금의 여야 교착을 풀 수 있는 협상의 실마리, 그리고 이에 관한 시민들의 견해를 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소통 채널이 문 대통령에게 필요하다. 페이스북, 구글 트렌드, 네이버 검색어, 오랜 친구들과의 허심탄회한 전화 통화를 통해 정보 균형을 맞추다 보면, 야당을 설득하고 추경을 통과시킬 수 있는 실마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제왕적 대통령의 협곡을 힘겹게 건너왔다. 이제 문 대통령과 우리 민주주의의 과제는 대외정책과 국내 정치 무대에서 벌어지는 두 대통령직의 딜레마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로 모이고 있다.
 
장 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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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