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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세탁기·페루 요리용 오븐…프리미엄 경쟁속 다른 길 가는 동부대우

동부대우전자가 개발한 중동 특화 세탁기. 일명 '히잡 세탁기' [사진 동부대우전자]

동부대우전자가 개발한 중동 특화 세탁기. 일명 '히잡 세탁기' [사진 동부대우전자]

드럼세탁기에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가리개)을 넣고 '이슬라믹 린스' 코스 버튼을 누른다. 얇고 부드러운 천이 상하지 않도록 손빨래 하듯 세탁이 진행된다. 이 세탁기는 코란에 나오는 히잡 세탁법 규율도 알고 있다. 세탁조의 35%만큼 물을 채우고 탈수 코스를 진행하기 전 세탁조를 시계방향·반시계방향으로 각각 두 번씩 30초간 회전하게 해 이슬람교 세례 의식을 표현한다. 2014년 동부대우전자가 출시한 이란 수출용 7kg 드럼세탁기, 일명 '히잡 세탁기'다.
동부대우가 중동에서 파는 냉장고에는 자물쇠가 달려 있다. 외부인이나 아이들이 함부로 음식물을 꺼내지 못 하게 한 것이다. 제품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왜 자물쇠까지 달아 불편함을 더 강조했을까. 동부대우전자 관계자는 "이 냉장고는 물이 부족한 중동 지역 현지 특성에 맞춰 제작됐다"며 "중동에서 팔리는 동부대우 냉장고 10대 중 6대가 이 제품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동부대우전자는 물이 부족한 중동 지역 특성에 맞게 자물쇠가 달린 냉장고를 개발했다. [사진 동부대우전자]

동부대우전자는 물이 부족한 중동 지역 특성에 맞게 자물쇠가 달린 냉장고를 개발했다. [사진 동부대우전자]

 
삼성·LG전자가 프리미엄·혼수 가전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 제3의 길을 택한 동부대우전자의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 새 전략의 키워드는 현지 특화·싱글족(1인 가구)·아이디어 제품 개발이다. 현지화 전략으로 지난해 말 전체 매출액 중 해외 매출 비중이 80%까지 늘었다, 싱글족(1인 가구)을 타깃으로 한 미니 가전제품의 2009년 이후 누적 판매량도 올해 상반기 220만대를 돌파했다. 메인스트림은 떠났지만, 자기만의 새로운 영역을 다져나가는 모습이다.
동부대우의 전신 대우전자는 1987년 설립 이후 10년 동안은 줄곧 메인스트림에 있었다. 95년에는 전 세계 22개국에서 대우전자의 33개 제품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한국 전체 가전제품 수출의 38.8%를 대우전자가 차지했다. '탱크주의, 품질보다 더 좋은 광고는 없습니다.' 서른 살이 넘는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기억하는 대우전자 광고 카피는 광고업계에서도 "광고계 최고의 명언"으로 꼽힌다. 브라운관 위를 때려야 화면이 잘 나올 정도로 잔고장이 많고, 무게도 부담스러웠던 가전 제품을, 힘겹게 들고 전파사를 들락거려야 했던 시절, 튼튼함을 상징한 '탱크주의'는 삼성·LG전자와 차별화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였다.
 
탱크주의 내구성과 함께 대우전자 기술 혁신의 상징은 '공기방울 세탁기'였다. 91년 출시 한 달만에 2만8000대가 팔렸다. 기포발생장치에서 나온 공기방울이 옷감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삶아 빤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이 세탁기의 기술은 지금도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동부대우는 지난 4월 초미세 공기방울 발생장치를 탑재한 '공기방울 4D 마이크로'를 출시했다.
대우전자의 위기는 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왔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 부채를 갚지 못한 대우전자는 99년 채권단 주도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02년 채권단은 대우전자의 가전 부문을 떼어내 대우모터공업에 넘긴 뒤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출범시켰다. 이후 2013년 동부그룹이 채권단으로부터 대우일렉을 인수해 지금에 이르렀다.
채권단 관리를 벗어난 뒤 가전 시장을 돌아보니 삼성과 LG전자가 벌려놓은 기술 격차를 쫒아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같은 길로 쫒아가기 보단 지름길을 가야했다.
 
동부대우전자가 개발한 중국 특화 차(茶) 보관용 냉장고. [사진 동부대우전자]

동부대우전자가 개발한 중국 특화 차(茶) 보관용 냉장고. [사진 동부대우전자]

동부대우가 가장 먼저 차별화한 것은 '현지화 전략'이었다. 미국·프랑스·영국 등 선진국은 물론 멕시코·페루·이란·리투아니아 등 신흥 시장까지 총 11개 현지 판매법인과 20개 해외 지사에선 주재원과 현지에서 채용한 직원이 해외 거래처를 직접 찾아가 어떤 제품을 원하는 지 먼저 들었다. 가전제품도 맞춤복처럼 제작하길 시도한 것이다. 히잡·바틱 등 무슬림 전통 의복 전용 세탁기, 10여가지 멕시코 현지 요리를 조리할 수 있는 전자레인지, 러시아·이란·페루 요리를 자동으로 조리할 수 있는 복합 오븐, 물이 부족한 중동 지역을 위한 자물쇠 달린 냉장고, 중국에 특화한 차(茶) 보관 냉장고 등이 이런 전략 아래에서 탄생했다. 그 결과 동부대우는 지난해말 기준 시장점유율로 멕시코 전자레인지 시장 1위, 칠레 냉장고 시장 2위, 중국 소형세탁기 시장 1위 등의 성과도 보여줬다.
국내 내수 시장에선 늘어나는 싱글족을 겨냥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1인 가구는 총 520만3000가구로 지난 25년 사이 5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회적 변화를 고려해 3㎏ 용량의 소형 드럼세탁기나 벽걸이용 드럼세탁기·소형 김치냉장고 등 미니 가전 라인업으로 2009년 소형 세탁기 출시 이후 올 상반기까지 총 220만대의 미니 가전을 판매했다. 권대훈 동부대우 홍보실 차장은 "싱글족을 겨냥한 미니 가전은 동부대우 전체의 내수 시장 매출액에서 25%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동부대우전자는 싱글족(1인 가구)를 겨냥해 벽걸이용 소형 드럼세탁기를 내놨다. [사진 동부대우전자]

동부대우전자는 싱글족(1인 가구)를 겨냥해 벽걸이용 소형 드럼세탁기를 내놨다. [사진 동부대우전자]

또 아이디어 가전으론 업계 최초로 출시한 충전용 USB 포트 적용 전자레인지를 이달 초부터 미국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에 출시하고 다음달부터는 중국·유럽 등지로도 수출하기로 했다.
동부대우전자는 충전용 USB 단자가 달린 전자레인지를 이달부터 미국과 유럽·중국 등지로 수출한다. [사진 동부대우전자]

동부대우전자는 충전용 USB 단자가 달린 전자레인지를 이달부터 미국과 유럽·중국 등지로 수출한다. [사진 동부대우전자]

 
동부대우의 제품 차별화 전략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빠르게 개선되지 않는 재무 지표는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동부대우의 영업이익은 판매촉진비·판매보증비 부담이 늘면서 지난해보다 89억원 감소한 20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도 금융비용과 환차손 등으로 227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KTB프라이빗에퀴티·SBI팬아시아펀드 등 재무적투자자(FI)와 맺은 "자기자본 1800억원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동부대우의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은 1634억원에 그쳤다.
내년 주식시장 상장으로 FI들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지키기 어렵게 됐다. 동부대우는 지난 2014년 이후 3년 연속 당기순이익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 성과 지표가 미흡해 주식시장 상장 기준을 통과하기 힘든 것이다. FI들은 동부대우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대주주 동부그룹이 보유한 지분까지 모두 처분할 수 있는 동반매각청구권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동부그룹은 현재 자베즈파트너스 컨소시엄과 지난 4월 투자유치 양해각서(MOU)를 맺고 중국계 가전업체 오크마와 국내 투자자들을 모아 FI들이 보유한 지분 46%를 인수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권기주 동부대우 홍보팀장은 "현재 FI 지분 매각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투자 의사를 밝힌 중국 오크마의 영업망과 동부대우의 해외 영업망이 결합하면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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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