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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공론의 장에서 피어나는 성숙한 시민사회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면세점 선정 과정에서 일부 기업이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특혜는 부당한 것이고, 그런 일을 하자니 선정 과정이 은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은밀함은 부정의 수단 이상으로 사회에 넓고 깊은 해악을 미친다.
 

개인의 이익 넘어 공익 지향하는 사회로
원전 같은 갈등이슈 공론의 장에 끌어 내야

세상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고 나쁜 일도 겪는다. 객지로 떠난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는 자식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나쁜 일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둘 중에 한 가지만 빌 수 있다고 한다면 어머니는 어떤 선택을 할까?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도할까, 아니면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할까? 아마도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하지 않을까 싶다. 호강하지 않아도 좋으니 무탈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선과 악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관심도 비슷하다.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남에게 해를 끼치면 악한 행동이고, 이로움을 주면 선한 행동이다. 사회적 제도는 선행을 장려하는 쪽보다는 악행을 막는 쪽으로 압도적으로 발전해 있다.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 중의 하나는 사법제도인데, 사법제도는 신체적·심리적 또는 경제적 피해를 주는 것을 막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어 야만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서로를 위협하는 악행을 막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 사회의 성숙도는 악한 행동을 예방하는 정도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얼마만큼 공통의 이익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가에 달려 있다. 작게는 질서를 지키는 일에서부터 크게는 조세의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까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펴낸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는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뼈아프게 지적한다. 공공성은 공동의 이익에 자원이 투입되는 정도(공익성), 자원 활용의 형평성(공정성), 공익 관련 사안에서의 시민의 참여 역량(공민성), 의사결정의 투명성(공개성)으로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이 모든 영역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에 위치하고 있다.
 
공통의 이익을 위하여 사는 것이 상식이 되고, 양보와 배려, 더 나아가 헌신과 희생이 존중받는, 살 만한 사회로 가는 것을 무엇이 가로막고 있을까? 문제는 공개성과 투명성이다. 사람이 속이 보이지 않으면 믿음이 가지 않고, 그런 사람과는 서로 협조하여 도움을 주는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없다. 사회라고 다를 것 없다. 어떻게 결정되고 집행되는지가 투명하지 않은 정책은 소수의 권력에 의하여 악용될 지 모른다는 의심을 낳고 실제로 공정성을 위협한다. 공정성이 의심스러워지는 제도에 구성원들은 참여를 주저하게 되고, 구성원들의 뜻을 모아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상은 점점 멀어져 간다. 지난 정권이 남긴 가장 쓰린 상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음습한 구석에서 소수의 이익을 위하여 정책이 결정되었음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신뢰는 배신당했고, 그러지 않아도 유아기적 수준에 머물던 우리의 공공의식은 뒷걸음쳤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과정을 거쳐 의사를 결정하는 일은 고통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다양한 생각을 조율하여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때론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공론의 장에 던져지는 순간 원전을 어찌할 것인가, 자사고·외고를 폐지할 것인가, 최저임금을 어느 선에서 결정할 것인가 등의 문제는 종착점에 이르지 못한 채 공중분해 위기감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과에 매몰되어 공론의 장을 우회하는 만큼 공적인 이익에 동참하는 시민의식이 성장할 기회는 줄어든다. 국민적 차원의 공공의식을 성장시키는 업적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성과주의에 현혹된 세태에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갈등으로 국력의 소모가 과도한 우리 사회에서 누가 이 업적을 가벼이 볼 수 있을까?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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