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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연의 풍수기행] 남양주 양절공 한확 묘

인수대비의 아버지이며 성종의 외할아버지인 양절공 한확(1400~1456)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 69-5 (능내리 단산로 551)에 있다. 팔당댐에서 다산로를 따라 양수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도로변 야트막한 산자락에 있다. 입구에 있는 비각과 묘지의 규모는 왕릉에 버금간다. 특히 비각 안의 신도비는 중국에서 가져온 대리석이다. 이 거대한 돌을 어떻게 가져왔을까? 이 의문은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100리 떨어진 양주시 은현면 용암면 산 54-1에 있는 부인 남양홍씨 묘 신도비를 보고 풀렸다. 이곳과 같은 대리석으로 중국 황제가 내려 준 것이다. 운반은 코끼리가 했다고 한다. 홍씨 묘 앞에는 돌을 싣고 온 코끼리 묘가 있다.

한확은 청주한씨이며 순창군수를 지낸 한영정의 아들로 태어나 태종~세조대까지 영달을 누렸던 인물이다. 그 배경에는 손위누이와 여동생이 있었다. 원나라가 고려에 공녀를 요구했던 것처럼 명나라도 조선에 공녀를 요구했다. 조선은 명의 제3대 황제 영락제부터 제5대 선적제까지 약 26년 간 100여명의 공녀를 바쳤다고 한다. 태종 17년(1417) 2명의 공녀가 선발되었는데 그중 한확의 누이가 포함되었다. 그녀는 영락제 주체의 총애를 받아 후궁인 여비(麗妃)에 책봉되었다. 그녀는 명의 황후가 죽자 황궁의 정사를 전담하는 등 실세가 되었다. 그러자 그녀를 명나라까지 호송하였던 한확에게도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이라는 명의 작위가 내려졌다. 그러나 영락제가 몽고 원정길에 사망하자 당시 풍습에 따라 여비도 순장을 당하였다.

영락제의 장남 홍희제가 제4대 황제에 올랐으나 1년 만에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손자 선덕제가 제5대 황제에 올랐다. 그러자 한확은 자신의 여동생을 공녀로 보내기로 했다. 언니가 순장으로 죽음을 당한 것을 알고 있는 여동생은 반발했다. 그러나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그녀는 공녀로 명궁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74세까지 천수를 누리며 제8대 성화제를 어릴 때 보육한 공으로 공신부인에 책봉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한확을 출세가도로 달리게 했다. 특히 세조는 의경세자빈을 한확의 여섯째딸로 책봉함으로서 사돈관계를 맺었다. 한확은 좌의정과 좌익공신에 이어 서원부원군에 봉해졌다. 세조2년(1456)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는 세조의 왕위찬탈을 양위라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도중 사하포에서 57세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곳의 소조산은 옛 문헌에 예빈산(禮賓山)으로 표시된 예봉산(678.8m)이다. 태조산은 천마산(810.2m)이며 중조산은 백봉(587.2m)·갑산(549.3m)·적갑산(684m)이다. 예봉산과 적갑산은 1.5km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 모습이 예절로 손님을 맞는 거와 같다하여 예빈산이라 블렀고, 일제강점기 때 예봉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예봉산 중심맥으로 내려온 용맥은 팔당호 가까이에 이르러 단아한 현무봉을 만든다. 주산인 예봉산은 높고 험준한 반면 현무봉은 낮고 순화되었다. 현무봉에서 양옆으로 청룡과 백호를 벋고 그 가운데로 중심맥이 내려온다. 중심맥은 후덕하면서도 힘이 있어 보인다. 입수룡의 토양은 밝고 단단하여 보통 기가 아님이 느껴진다.

묘가 위치한 혈장의 모양은 여인의 풍만한 젖가슴처럼 생긴 유혈(乳穴)이다. 그러나 전체 국세를 보면 닭 둥지처럼 우묵하게 들어간 와혈(窩穴)이기도 하다. 우측 백호는 물을 거스르며 감싸주고 있고, 좌측 청룡 능선은 혈에서 보이는 것만 해도 이중 삼중으로 원을 그리듯 감싸고 있다. 지도에서 보면 다산 정약용 생가가 있는 능선도 이곳을 감싸주는 형태로 있다. 더구나 능선에 있는 봉우리 하나하나가 귀인봉이고 노적봉이다. 이 때문에 귀한 인물과 부자를 낼 땅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특히 전면 좌측에 있는 낮은 봉우리는 미인의 눈썹처럼 생긴 아미사(蛾眉砂)다. 용과 혈이 좋은데 아미사가 있으면 왕비가 난다고 옛 책에 적혀 있다.

이 때문에 딸인 소혜왕후가 대비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사실 그녀는 남편 의경세자가 일찍 죽어 왕후나 대비가 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동생인 예종이 즉위 1년2개월 만에 죽자 자신의 둘째아들이 성종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남편이 죽어서나마 왕이 되었으므로 자신은 왕비가 되었고, 아들이 왕이므로 대비가 된 것이다. 청주한씨는 삼한갑족으로 크게 번창했는데 그중에서도 한확의 후손인 양절공파가 더욱 번창하였다. 이 묘의 발복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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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