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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우울한 세계 1위 삼성전자

이철호 논설주간

이철호 논설주간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의 기업에 등극했다. 48년 만에 이룬 꿈이다.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한때 자웅을 겨뤘던 LG전자의 매출액(14조원)과 맞먹는다. 하지만 삼성은 침울하다. 지난 6일 사상 최대의 실적을 알리는 보도자료는 무미건조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추정치를 담은 딱 두 문장뿐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3년째 병석에 누워 있고 이재용 부회장마저 구속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 반도체 시장이 역성장한 것은 딱 두 번밖에 없다. 2008년과 2012년이다. 그때마다 삼성전자의 움직임은 특이했다. 2008년 리먼 사태가 덮치면서 반도체 시장은 22%나 쪼그라들었다. 그해 4분기, 삼성전자는 충격적인 74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하지만 2009년 신년 연휴에 삼성전자 이윤우 대표가 조용히 승지원을 찾아 이건희 회장을 만나고 돌아왔다. 그리고 2월 18일, 느닷없이 “초격차 전략”을 선포했다. 예상을 뒤엎는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졌다. 그해 독일 반도체업체 키몬다는 파산했다. 삼성은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아 11조원의 영업이익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2012년도 운명의 한 해였다. 당시 반도체 불황은 세계 3위였던 일본의 엘피다마저 무너뜨렸다. 하지만 서초동 사옥으로 매일 출근한 이건희 회장은 ‘초격차 확대’를 주문했다. 2위와의 기술 격차를 더 크게 벌려 압도적 1위를 차지하자는 것이다. 그해 삼성은 ‘갤럭시S’로 벌어들인 영업이익(29조4700억원)의 절반 가까이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투자에 쓸어 넣었다. 오늘날 ‘반도체 수퍼호황’의 황금기는 이때 밑거름이 뿌려졌다.
 
반도체는 생산 라인 하나 까는 데 15조원의 돈과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삼성 반도체 기적은 오너의 과감한 결단, 미래전략실의 효율적인 컨트롤타워 기능, 그리고 계열사의 자율 경영이란 삼박자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지금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 부재 중이고, 미래전략실은 해체됐다.
 
2년 전 반도체 시장조사기관인 IHS는 “D램 시장 규모는 2015년 486억 달러→2016년 442억 달러→2017년 441억 달러로 쪼그라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금 IHS의 D램 시장 전망은 완전 딴판이다. “클라우딩과 데이터 센터, 사물인터넷이 급속히 커져 2017년에 1038억 달러, 2018년에는 1070억 달러로 팽창할 것이다.” 불과 2년 만에 천당과 지옥을 오갈 만큼 반도체 시장은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지난 4일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 37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사상 최대라는 지난해 투자 규모(24조원)를 훌쩍 뛰어넘는 통 큰 투자다. 재계에선 “그런 천문학적 투자는 이 부회장과 교감 없이 함부로 결단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삼성 이종왕 고문변호사의 말은 좀 다르다. “요즘 이 부회장은 매주 사흘씩 재판을 받는다. 자정을 넘겨 16시간 재판을 받기도 한다. 구치소에서도 태평양 법무법인 변호사들과의 면회가 최우선이다. 일반인 면회는 하루에 한 차례 있을까 말까다.” 정상적인 경영 결정은 어렵다는 뜻이다.
 
이 부회장의 1심 재판은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당초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특검의 자신감은 무너져 버렸다. 재판부는 뇌물죄의 ‘스모킹 건’이라던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수첩을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로만 받아들였다. 수첩의 증거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다. 이렇게 재판이 결정적인 증거 없이 양쪽의 지루한 공방전으로 흐르면서 특검이 무리하게 구속기소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1위에 올라섰지만 “앞으로 언제까지 정상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우울한 분위기다. D램은 나노 기술로 얼마나 미세한 회로를 만들지, 낸드 플래시는 적층 기술을 이용해 얼마나 많이 쌓는지에 따라 경쟁력이 결판난다. 속도와 시간의 싸움인 것이다. 반도체 다음의 바이오와 자동차 전장(電裝) 같은 신수종 사업은 더하다. 수많은 실패를 무릅써야 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운을 건 오너들의 고독하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오너 일가의 결단이 삼성전자를 오늘날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올려놓았다. 앞으로 5~10년 후가 문제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없어도 실적이 좋지 않으냐”는 오해에 답답해하고 있다.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간신히 10조원을 밑도는 9조9000억원으로 맞췄다. 이번 2분기 세계 최고 기업에 우뚝 서고도 달랑 두 문장의 보도자료만 내놓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세계 1위 삼성전자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이철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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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