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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인데 보험료 더 낸다?…부당한 차보험료 할증, 9월부터 사라진다

 A씨는 운전 중 걸려온 회사 전화를 받았다. 도로 1차선에 신호대기로 정차 중이었는데, 상사가 회사 본사가 아니라 거래처로 가라고 지시했다. 차선을 잘못 타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니 급한 마음에 방향지시등(깜빡이)도 켜지 않고 2차선으로 차선을 급변경했다. 순간 2차선에서 직진하던 B씨의 차량과 충돌했다. 깜빡이도 켜지 않았기 때문에 과실 10%포인트가 추가, A씨와 B씨의 과실 비율은 8대 2가 됐다. A씨는 사고로 자동차 보험료가 13% 할증했다. 그런데 피해자인 B씨 역시 가해자인 A씨와 똑같이 보험료가 13% 비싸졌다. B씨가 억울한 마음에 보험사에 따졌지만 “현행 할인ㆍ할증제도 아래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금감원, 차보험료 할증 차등화방안 마련
사고 나면 가ㆍ피해자 보험료 똑같이 할증
1년간 발생한 피해사고는 할증 산정서 제외
사고 피해자 15만명 보험료 평균 12.2%↓

 오는 9월부터는 B씨처럼 교통사고 피해자인데도 부당하게 자동차보험료가 할증되는 일이 사라지겠다. 금융감독원이 ‘자동차보험료 할증 차등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권순찬 금감원 부원장보는 10일 “자동차보험 쌍방과실 사고의 경우 가해자ㆍ피해자 간 민원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사고 피해자인데도 가해자와 똑같이 보험료가 할증되는 현행 할인ㆍ할증제도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해서 제기돼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권순찬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권순찬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현행 자동차보험료는 일반적으로 3가지 단계로 산출한다. ①종목별ㆍ담보별ㆍ차종별로 기본보험료(총보험금÷차량 대수)를 산정하고, ②피보험자의 연령이나 운전자 범위, 운행거리 등 차등화 요소를 감안하고, ③사고경력에 따른 개별적인 위험(할인ㆍ할증제도)을 반영하여 산출한다.  
 
 이 가운데 할인ㆍ할증제도는 자동차 사고가 발생해 보험금이 지급된 경우, 사고횟수와 피해규모를 감안해 이듬해 보험료를 올리거나 내리는 제도다. 사고 발생 위험이 큰 운전자에게는 보험료를 더 받고, 그렇지 않은 무사고 운전자에게는 보험료를 깎아준다. 할인ㆍ할증의 정도는 사고심도와 사고빈도를 따져 결정한다.
 
 사고심도는 사고의 크기, 곧 보험금의 규모를 말한다. 더 많은 보험금이 지급된 사고일 수록 할증폭이 크다. 작년 1년간 발생한 사고 내용별 크기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고, 이 점수로 할인ㆍ할증등급(최초 기본 11등급, 총 29등급 체계)을 평가한다. 1점당 1등급을 할증하며, 1등급당 보험료가 약 6.4% 할증(지난해 말 전 손해보험사 평균)된다. 예를 들어 대인사고는 피해자의 사망여부, 부상ㆍ장애 정도에 따라서 1점부터 4점까지 부여된다.
 
 사고빈도는 사고 크기와 관계없이 사고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따라 보험료의 할인ㆍ할증을 따진다. 직전 3년 및 1년간 발생한 사고건수를 기준으로 그룹화(10개)하여 사고를 빈번하게 낸 사람의 보험료는 할증하고 무사고자의 보험료는 할인한다.
 
 문제는 사고심도와 사고빈도를 따질 때 과실비율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곧,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 없이 상해 정도 등 사고 크기 및 사고 발생의 유무에 따라 보험료를 똑같이 할증한다. 경찰이 발급하는 ‘교통사고사실확인원’에는 사고발생 경위 등을 고려해 ‘가해차량’과 ‘피해차량’을 구분해 표기하고 있는데도, 보험료 할증을 적용할 때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따지지 않는다.
 
 이는 형평성에 어긋난다. 교통법규위반 등 과실이 큰 난폭 운전자와 상대적으로 과실이 작은 선량한 피해자가 같은 부담을 지는 셈이다. 피해자의 불만이 클 수박에 없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사고만 나면 보험료는 똑같이 오르기 때문에, 운전자가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안전운전을 할 유인이 적다. 보험료 할인ㆍ할증에 따른 자동차사고 예방 효과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자료: 금융감독원

자료: 금융감독원

 
 사고위험도에 상응한 적정 보험료 산출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지난 2월 ‘할인ㆍ할증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동차사고 가해자의 위험도가 피해자보다 약 5% 정도 높다. 현행 할인ㆍ할증제도는 이러한 사고위험도의 차이를 반영하지 않는다. 곧, 피해자는 사고위험보다 과도한 보험료를 부담하고, 가해자는 사고위험도보다 낮은 보험료를 부담하게 된다.
 
 개선안의 핵심은 과실비율 50% 미만의 사고 피해자가 억울하게 보험료를 더 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점이다. 사고위험도에 상응한 공정한 보험료가 산출ㆍ적용될 수 있도록 사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보험료 할증을 대폭 완화한다.
 
 이를 위해 과실비율을 반영해 사고심도와 사고빈도를 조정할 계획이다. 일단, 최근 1년간 발생한 피해자의 자동차사고 1건은 사고내용점수(사고심도) 산정에서 제외한다. 여러 건이라면 점수가 가장 높은 사고를 제외한다. 다만, 무사고자와 차별성을 유지하기 위해 3년간 보험료 할인은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사고건수요율(사고빈도)을 따질 때에도 피해자의 과실비율 50% 미만 사고 1건은 건수 산정에서 뺀다.  역시, 무사고자와의 차별성을 유지하기 위해 3년간 사고건수에는 포함한다. 곧, 피해자라도 사고가 있었다면 3년간 무사고 할인 혜택은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진태국 금감원 보험감독국장은 “이 같은 차등화 방안이 시행되면 자동차사고 피해자 약 15만명의 보험료가 평균 12.2% 인하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작년 기준으로 151억원에 해당한다. 다만, 가해자의 보험료가 과도하게 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해자에는 현재와 동일한 할증이 적용된다.
 
 앞서 사례에서 사고 가해자인 A씨의 제도 개선 이후에도 지금과 같은 비율로 보험료가 오른다. 반면, 피해자인 B씨의 경우에는 보험료 할증 폭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B씨가 중형차를 구입, 9년간 무사고로 운전해 지난해 자동차 보험 갱신 때 보험료 41만원을 냈다고 하자. 현행 제도라면 B씨는 사고로 할인ㆍ할증 등급(2등급)과 사고건수요율이 올라 다음번 갱신 보험료는 55만원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바뀐 제도 하에서라면 B씨가 내야할 보험료는 45만원으로 줄어든다.
 
 진태국 국장은 “음주ㆍ졸음운전을 하거나, 운전 중 휴대폰사용, DMB 시청 등 도로교통법상 금지되는 행위 중 사고가 발생하면 과실비율이 가중돼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고인데도 과실비율이 50%를 초과하게 돼 제도 개선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교통사고시 과실비율과 관련된 다툼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교통사고 신속처리 협의서’를 활용해 사고내용을 신속히 기록하고,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이나 현장사진 및 목격자 확보 등 자동차사고 과실비율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꼼꼼히 챙길 것을 당부했다.
 
 임주혁 보험개발원 팀장은 “과실비율에 따라 당사자가 부담해야 할 보험금 크기가 달리지고, 향후 보험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교통사고시 나의 과실비율이 얼마나 될지 궁금한 경우 손해보험협회 홈페이지(knia.or.kr)를 방문하거나 스마트폰의 ‘과실비율인정기준’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사고유형ㆍ정황별 과실비율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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