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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에 뛰어든 메기, 케이뱅크 출범 100일…시작된 은행업계 지각변동

“제가 내일 새벽 1시 넘어서야 통화가 가능할 것 같은데 혹시 그때도 상담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직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K뱅크 콜상담센터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170706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직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K뱅크 콜상담센터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170706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케이뱅크 고객센터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결혼 자금이 부족해 급하게 1000만원가량을 대출받으려는 고객이었다. 문제는 이 고객이 3교대로 일하는 직장에 다니는 탓에 자정이 지나서야 대출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시중은행의 행원·텔러 격인 케이뱅크 매니저 박선희(37)씨는 “케이뱅크는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상담할 수 있다”며 “원하는 시간에 다시 전화드리겠다”고 답하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객을 안심시켰다.

케이뱅크 출범 100일, 40만명 고객 확보
여신·수신액도 6500억원, 6000억원으로 목표 초과 달성
숨은 주역은 비대면서비스 제공하는 ‘상담센터’
해결될 기미 없는 ‘은산분리’, 케이뱅크의 해법은?

  
오는 11일 공식 영업 시작 100일째를 맞는 케이뱅크는 일반 시중은행과 달리 영업시간이 ‘00:00~24:00’다. 오후 4시에 문을 닫지도 않고, 점포에 방문해 대기표를 뽑은 뒤 창구에 자리가 나길 기다릴 필요도 없다. 모든 업무는 온라인 앱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만 이뤄진다. 케이뱅크가 ‘365일 24시간 이용 가능한 내 손안의 은행’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유다.
 
케이뱅크는 일반 시중은행과 달리 영업지점을 운영하지 않아서 생기는 비용 절감 효과를 ‘금리’에 투자하는 구조다. 기존에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에서 20%에 가까운 고금리로 돈을 빌려야 했던 신용등급 4~6등급자들도 10% 이하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시중은행 대출심사에서 탈락해 강제로 제2금융권으로 밀려났던 저신용등급 고객들이 제1금융권에서 한 자릿수로 대출받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으로 기존 금융사들이 다져왔던 판도에 균열이 생기자 시중은행은 물론 저축은행과 상호금융권 모두 케이뱅크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케이뱅크를 ‘메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점체제가 굳어져 ‘고인 물’이란 평가를 받았던 은행권에 케이뱅크가 변화를 촉진하는 ‘메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숫자로 보는 케이뱅크의 지난 100일
240: 케이뱅크의 총 직원수는 240명에 불과하다. 1만5000명에서 많게는 2만 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시중은행과 비교했을 때 100분의 1규모다. 시중은행과는 달리 영업지점을 운영하지 않고 모든 서비스를 고객센터에서 비대면으로 제공하는 덕분이다. 고객센터는 케이뱅크 소속 매니저와 파트너사에서 파견된 정규직 직원 등 200명을 배치해 3교대로 운영된다.
 
40000: 케이뱅크는 지난 4월 3일 공식 출범한 지 하루만에 4만명의 고객이 가입했다. 케이뱅크에 따르면 3일 0시에 영업을 시작해 4일 오전 8시 기준 가입자 수는 3만9798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한 달간 국내 21개 금융투자사와 16개 은행의 비대면 계좌 개설 건수를 모두 합한 것이 7만3000여 건임을 고려하면 ‘폭발적인 반응’이라 할 만하다.
 
400000: 영업 시작 100일만에 케이뱅크엔 40만 명의 고객이 가입했다. 하루 평균 4000명이 케이뱅크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계좌를 개설했다. 지난 4월 처음 출범할 당시 케이뱅크의 목표는 “올해 안에 실거래자 기준 40만 명의 고객 확보”였다. 불과 3개월만에 올해 목표치를 채운 셈이다.
 
460000: 그간 케이뱅크에서 제공한 비대면 서비스 횟수다. 전화상담과 어플리케이션 내 메신저 상담, 이메일 상담 등이 포함됐다. 음성상담과 문자상담의 비율은 7:3 수준이다. 6월 말 기준 전체 상담 중 71%가 음성(전화) 상담이었고, 나머지 29%는 문자와 이메일, 메신저 등을 통해 이뤄졌다.
 
6500억·6100억: 케이뱅크의 수신액과 여신액 누적치다. 지난 100일간 6500억원의 대출이 이뤄졌고, 고객들이 케이뱅크에 6100억원의 돈을 맡긴 것이다. 케이뱅크는 당초 올해 목표를 수신 5000억원, 여신 4000억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예상보다 뜨거운 시장의 반응에 지난달 이미 목표치를 달성한 뒤 현재 초과 달성중이다.
 
 
모든 은행업무 한 곳에 모은 케이뱅크 고객센터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직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K뱅크 콜상담센터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170706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직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K뱅크 콜상담센터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170706

케이뱅크가 이같은 ‘깜짝 실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고객센터에 근무하는 200여 명의 매니저들이다. 출범 초기 케이뱅크는 100여 명의 매니저들을 고객센터에 배치해 비대면서비스 업무를 맡겼다. 하지만 오픈과 동시에 일일 평균 3만명 가량의 고객들이 케이뱅크를 찾는 등 수요가 예상치를 크게 웃돌자 100명의 매니저를 추가로 투입했다.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직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K뱅크 콜상담센터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170706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직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K뱅크 콜상담센터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170706

 
이들은 대부분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소식과 함께 케이뱅크에 들어온 ‘신입 직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다른 은행에서 행원과 텔러 등으로 일해온 ‘경력 직원’이기도 하다. 시중은행에 점포 통폐합과 인력 구조조정 바람이 불며 ‘은행원의 위기’가 현실화하자 그 대안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케이뱅크 매니저들은 “은행에서 일한다는 사실만 같을 뿐 시중은행에서 하던 업무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큰 차이는 시중 은행과 달리 대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00% 비대면서비스를 통해 운영된다는 사실은 케이뱅크의 차별화 포인트지만, 동시에 매니저들에게는 가장 큰 고충이기도 하다.
 
지난 6일 케이뱅크 고객센터에서 만난 박수미 매니저. 그는 "케이뱅크도 시중은행처럼 제1금융권이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 모두 은행원이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 20170706

지난 6일 케이뱅크 고객센터에서 만난 박수미 매니저. 그는 "케이뱅크도 시중은행처럼 제1금융권이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 모두 은행원이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 20170706

 
박수미(40) 매니저는 “고객들이 은행지점을 방문할 때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을 존중해주는 데 반해 전화나 문자 상담 등을 통한 비대면서비스에서는 욕설을 내뱉거나 다소 무례하게 구는 고객들이 많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병찬 매니저(27)는 얼마 전 전화상담을 하던 중 고객에게 폭언과 욕설을 듣는 고초를 겪었다. 이 고객은 대출상품을 소개해주는 이 매니저에게 “너 지금 나한테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거 맞아?”라고 대뜸 반말로 답을 한 뒤 “지금 돈 빌리러 전화했다고 무시하는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하다 큰 코 다친다”며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 매니저는 “우리들도 일반 은행으로 따지면 모두가 은행원의 일을 보고 있는데 고객들이 마치 부하직원에게 하듯 반말로 명령하거나 거칠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케이뱅크 매니저들도 전부 은행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케이뱅크가 최근 경쟁력 확보를 위해 빼든 칼은 STT(Speach-to-Text. 음성 문자 변환 시스템)와 TA(Text Analytics. 텍스트 분석)다. STT는 전화상담 과정에서 저장된 고객들의 상담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해 새로운 상품 개발과 시스템 보안 등에 활용된다. 예를 들어 고객들의 상담내용 중 '대출상품', '정보', '부족' 등의 단어들이 자주 등장하면 이를 통해 "대출상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을 파악해 관련 보안에 나서는 식이다. STT는 또 고객들이 자주 묻는 질문들을 유형화해 '모범 답변'을 완성하고, 고객 맞춤형 답변을 제공하는데도 활용된다.

STT와 TA를 통해 축적된 빅데이터와 고객 상담 정보는 '챗봇'에도 활용된다. 케이뱅크는 지난 6월부터 어플리케이션 내 메신저 상담과정에 챗복을 적용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챗봇'의 맞춤형 답변이 완벽하지 않아 중간 과정에 상담 직원이 개입해 답변 내용을 조율한다. 상담직원의 고객과 챗봇의 상담 내용을 지켜보면서 필요할 경우 중간에 개입해 수기로 상담 답변을 입력하는 식이다. 케이뱅크는 향후 AI와 머신러닝, 빅데이터 기술 개발을 통해 '완성형 챗봇'을 내놓을 예정이다.
 
‘은산분리’ 암초 만난 케이뱅크,
축포를 터뜨리며 성공적으로 안착한 케이뱅크가 최근 암초를 만나 속앓이를 하고 있다. 초기 자본금 2500억원이 바닥을 보이며 체력이 점차 고갈되고 있는 탓이다. 케이뱅크는 자본금 2500억원 중 절반가량을 초기 시스템 구축과 서비스 개발에 사용했다. 상품 경쟁력을 확보하며 대출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자본금 규모가 한정된 케이뱅크로선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케이뱅크 측은 예·적금을 통해 4000억원가량의 수신액을 마련한 만큼 당장의 재원 확보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달 들어 대출이 크게 늘어났고, 올 하반기엔 주택담보대출 상품까지 출시할 예정이라 케이뱅크 운영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케이뱅크가 재원 마련을 위해 빼든 칼은 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다. 애초 2019년을 전후로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대출 규모가 늘며 예상보다 일찍 재원 확보를 위한 칼을 빼든 셈이다. 다만 케이뱅크가 의도한 대로 대주주인 KT 중심으로 추가 출자를 하려면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 KT의 추가 출자를 바탕으로 증자가 이뤄질 경우 비금융회사가 은행 지분을 4% 이상 보유할 수 없다는 은산분리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현행 은행법에 따르면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10%까지 보유할 수 있지만, 의결권 있는 지분은 4%까지만 가질 수 있다.
 
 
인터넷은행 관련 은산분리 법안

인터넷은행 관련 은산분리 법안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은산분리 법안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케이뱅크는 ‘제3자 배정’까지도 검토하고 있다. 지분율에 따라 3000억원 규모의 증자를 추진할 경우 KT는 보유지분(8%)에 비례한 240억원만 출자할 수 있고 나머지 금액은 다른 주주들이 채워야 한다. 하지만 계획보다 이른 증자에 기존 주주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고, 일부 주주들은 증자 여력이 없다.
 
제3자 배정을 통해 증자가 이뤄질 경우 기존 주주들의 증자 부담은 줄어들지만 주주 수가 늘어나며 신속한 의사결정을 막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예상보다 뜨거운 시장 반응에 빠른 시일 안에 증자를 준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 주주들을 상대로 어떤 형태의 증자가 가장 합리적이교 효율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지만 은산분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뚜렷한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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