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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피카소’ 치바이스, 노동자 사랑 묘사했죠

중국 후난성 상탄시 ‘치바이스 기념관’에서 송재소 교수가 치바이스의 화론(畵論)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 후난성 상탄시 ‘치바이스 기념관’에서 송재소 교수가 치바이스의 화론(畵論)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을 여행하는 길이 다채로워지면서 심도 있는 주제 기행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송재소(74)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이끄는 ‘다산연구소와 함께하는 중국 인문기행’은 한시(漢詩)를 즐기며 인문 정신에 젖고 싶은 이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지난 달 30일 5박6일 일정으로 떠난 네 번째 인문기행은 여름방학을 맞아 송 교수를 흠모하는 대학 교수가 중심이 된 30여 명 답사객이 중국 후난(湖南)성 일대를 난만한 토론을 벌이며 주유했다.
 

‘중국 인문기행’ 송재소 교수
후난성의 치바이스 기념관 방문
“생활 속의 향토 소재 즐겨 그려”

이번 여정은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일을 맞아 혁명가들의 고향인 창사(長沙)와 샤오산(韶山)시에서 출발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설립의 주역인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과 류사오치(劉少奇·1898~1969)의 생가를 들러 마오가 공부한 호남제일사범학교를 찾았다. 공휴일을 맞아 명소를 참배하러 나온 중국인들이 송재소 교수 일행을 보고 “한국인이 왜 여기 왔지?” 고개를 갸우뚱거려 웃음을 자아냈다. 송 교수는 “마오쩌둥 고가 앞 논에 ‘中國夢(중국몽)’이라 쓰인 것을 보았느냐”고 묻고 “시진핑 주석이 꿈꾸는 국가부강의 목표를 새겼으니 저들이 경제부흥과 더불어 인문정신까지 함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사는 ‘중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화가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가난한 시골 목수였던 치바이스가 독학으로 수만 점 그림을 그리며 중국 근·현대 미술계의 최고봉에 이른 터전이 됐다. 이를 기려 상탄(湘潭)시에 2004년 ‘치바이스 기념관’이 들어섰다. 마침 서울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는 31일부터 한·중 수교 25주년 겸 치바이스 서거 60주년 특별전 ‘치바이스-목공에서 거장까지’가 열린다. 기념관에 들어선 송 교수는 “초야에 묻혀있던 치바이스의 재주를 알아보고 베이징으로 끌어올린 이가 전국미술가협회 주석이었던 쉬베이훙(徐悲鴻)”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치바이스는 노동자에 대한 사랑과 생활 속에서 잡아낸 향토 소재를 즐겨 그린 ‘소순기(蔬筍氣)’를 주창했고 중국 인민의 양심을 지키려는 뜻을 그림에 담았다.
 
치바이스는 전각의 대가였다. 돌 한 지게를 갈고 새겼다 한다. 석인(石印) 두 모를 모택동에게 선사했다.

치바이스는 전각의 대가였다. 돌 한 지게를 갈고 새겼다 한다. 석인(石印) 두 모를 모택동에게 선사했다.

치바이스가 남긴 화론(畫論) 한 폭이 벽에 걸려있었다. 송 교수는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기묘함은 같은 것과 같지 않은 것 사이에 있는데, 같은 것은 세상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고 같지 않은 것은 세상을 기만하는 것”이라 풀이했다. 치바이스가 70대 고령에도 나이 어린 부인에게서 아들을 얻었다는 안내인의 말을 들은 참석자들은 “다산(茶山)연구소가 다산(多産)연구소도 겸해 우리 모두 분발하자”고 외쳐 폭소가 터졌다.
 
폭우가 내린 창사는 곳곳이 침수돼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여정이었지만 어렵게 찾아간 악양루, 악록서원, 시성(詩聖) 두보의 묘, ‘어부사’를 쓴 굴원의 묘, 신해혁명의 여성 열사인 추근(1875~1907)의 옛 집 등은 풍성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송 교수는 “화려한 볼거리보다 콘텐트가 그득 고여 있는 중국 명소는 인문기행의 보고라 계속 오고 싶다”고 말했다.
 
창사(중국)=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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