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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송·영화계 인종차별 논란 중심에 선 한인 배우들

미국 CBS 드라마 ‘하와이 파이브-오’에 출연했던 한국계 미국 배우 그레이스 박(왼쪽)과 대니얼 대 킴.

미국 CBS 드라마 ‘하와이 파이브-오’에 출연했던 한국계 미국 배우 그레이스 박(왼쪽)과 대니얼 대 킴.

최근 한국계 미국 배우 대니얼 대 킴(49)과 그레이스 박(43)이 미국 CBS의 드라마 ‘하와이 파이브-오’의 여덟번 째 시즌을 앞두고 하차를 발표했다. 시즌 1 때부터 꾸준히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온 이들이었다. 킴은 페이스북을 통해 “CBS가 제시한 새로운 계약 조건에 동의할 수 없어 하차한다”고 밝혔다. 킴은 “평등을 향한 길은 쉽지 않다. 아시아계 미국 배우들이 기회를 잡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라고 털어놨다.
 
대니얼 대 킴의 프로그램 하차에 대해 대만계 미국 배우 콘스탄스 우가 트위터에 남긴 응원 메시지.

대니얼 대 킴의 프로그램 하차에 대해 대만계 미국 배우 콘스탄스 우가 트위터에 남긴 응원 메시지.

킴이 구체적인 사정을 밝히진 않았지만 현지 매체에 따르면 다른 백인 배우에 비해 이유 없이 10~15% 정도 낮은 출연료를 제시받았던 게 원인이었다. 인종차별 요소가 다분했고 미주 한인위원회(CKA)는 5일 성명을 통해 “인종에 상관없이 평등한 출연료를 지불하는 것은 곧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대니얼과 그레이스 뿐만의 일이 아니라 앞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할 모든 아시안 아메리칸, 코리안 아메리칸 배우들과 우리 모두의 권익과 연관된 중대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대만계 미국 배우 콘스탄스 우 또한 트위터를 통해 “당신의 가치를 안다. 맞서기를 두려워 말라”며 응원을 보냈다.
 
‘정복자’에서 칭기즈칸 역을 맡은 존 웨인. ‘화이트 워싱’ 사례다.

‘정복자’에서 칭기즈칸 역을 맡은 존 웨인. ‘화이트 워싱’ 사례다.

미국 방송가와 영화가에서 인종차별은 그 역사가 오래됐다. 대표적인 차별은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이다. 아시안이나 흑인 등 백인이 아닌 캐릭터임에도 굳이 백인이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행위를 뜻한다. 1956년 영화 ‘정복자’에서 칭기즈칸 역을 맡은 건 배우 존 웨인이었다.
 
백인 여성이 한국인을 연기한 영화 ‘전송가’.

백인 여성이 한국인을 연기한 영화 ‘전송가’.

오드리 햅번이 출연한 ‘티파니에서 아침을(1962)’에서는 일본인 유니오시 역을 백인 배우 미키 루니가 맡아 뻐드렁니를 가진 쪼잔한 캐릭터를 연출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1957년 영화 ‘전송가’에서는 백인 여성이 한복을 입고 한국인을 연기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 사회 내 유색인종 배우가 적었던 측면도 있지만, 최근까지도 화이트워싱 논란이 이어지고 있어 꼭 배우 부족만이 이유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는 원작에서 티베트 인이었던 에이션트 원 역할을 틸다 스윈튼이 맡았으며, 올해 3월에 개봉한 ‘공각기동대:고스트 인 더 쉘’에서도 원작에서 아시아인이었던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을 스칼릿 조핸슨이 맡아 논란이 일었다. 스칼릿 조핸슨 캐스팅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계 미국 배우 밍나 웬은 트위터를 통해 “스칼릿 조핸슨에 대해선 전혀 반대하지 않지만 아시아인의 역할을 지우는 것(Whitewashing of Asian role)은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반발했다. 작품의 각색 내지는 재해석으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컴퓨터 그래픽으로 스칼릿 조핸슨을 좀 더 아시아인처럼 보이게 하는 테스트까지 했었다는 사실은 이에 대한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인종차별 풍자 패러디물 ‘존조 주연시키기’.

인종차별 풍자 패러디물 ‘존조 주연시키기’.

 
화이트워싱 논란에 대한 반발로 미국 네티즌 사이에서는 ‘존 조 주연시키기(Starring John Cho)’ 캠페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계 미국 배우 존 조를 여러 영화의 포스터에 합성하는 패러디다. 알렉 볼드윈이 “나는 해리엇 터브먼(흑인노예 해방운동가)이야”라고 말하는 ‘움짤(짧은 동영상)’을 퍼나르기도 했다.
 
남캘리포니아대 애넌버그 혁신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영화·드라마 등을 포함한 작품 속 캐릭터 가운데 아시아인의 비중은 5.1% 에 불과했다. 2014년 할리우드 영화 163편을 분석한 미 캘리포니아 대학의 ‘2016년 할리우드 다양성 분석 리포트’에서도 주연배우 가운데 백인을 제외한 소수 인종의 비율은 12.9%에 그쳤다.
 
인종차별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블랙페이스(Blackface·흑인 분장)’ 논란이 때때로 인다. 블랙페이스란 19세기 백인 배우가 흑인처럼 보이도록 분장한 데서 유래된 표현으로, 대부분 우스꽝스럽게 흑인을 묘사해 분장 자체가 인종 비하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때문에 할로윈 데이에도 흑인 분장은 하지 않는 게 암묵적 합의다.
 
걸그룹 마마무는 지난 3월 단독콘서트에서 흑인 가수 브루노 마스를 패러디한다며 흑인분장을 한 영상을 틀었다가 국내외 팬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개그우먼 홍현희는 4월 SBS ‘웃찾사’에 흑인 분장을 하고 나와, 호주 출신 방송인 샘 해밍턴으로부터 “한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개그맨 황현희는 페이스북을 통해 “시커먼스도 인종차별이냐”고 반발했지만 논란이 이어져 글을 삭제했다.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은 자본의 논리와 작품 제작 구조, 불평등한 인식의 합작품이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헐리우드 영화의 제작자 입장에선 대중에게 익숙한 백인 배우들 중심으로 섭외에 나서게 된다. ‘공각기동대’의 각본을 맡은 맥스 랜디스는 “아시아 여배우 가운데 A급으로 평가할 만한 인물이 그렇게 흔하지 않다”며 항변하기도 했다. 김주옥 텍사스 A&M 국제대학교 언론심리학과 교수는 “아시아 배우에겐 기회 자체가 많지 않고, 제작자가 이들보다 우위를 점하게 된다”며 “캐스팅 권한을 가진 쇼 러너나 작가, 프로듀서 또한 대부분 백인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국내 방송가에도 인종·성 평등 문제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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