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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힘의 상징 미 대사관…유물에 밀려 갈 곳 못 찾나

남정호의 대사관은 말한다
철통경비로 요새를 방불케 하는 서울 세종대로 미국 대사관. 불법 점거 논란으로 이전이 결정됐으나 물색한 새 부지들이 잇따라 유적지로 판명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진영 기자

철통경비로 요새를 방불케 하는 서울 세종대로 미국 대사관. 불법 점거 논란으로 이전이 결정됐으나 물색한 새 부지들이 잇따라 유적지로 판명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서울 강북 중심가를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눈에 띄는 외국 공관은 그저 벽돌과 시멘트로 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그 나라 외교의 수단이자 국력의 상징이다. 주재국을 어떻게 여기는지 보여 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외국 공관에는 예외 없이 곡절과 사연이 서려 있다. 새 시리즈 ‘대사관은 말한다’에서는 외국 공관에 얽힌 비화를 통해 흥미진진한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대사관, 불법점거 논란에 이전 결정
경기여고 터, 선원전 유적으로 판명

용산 부지도 유적에 밀려날 수도
미 대사관에 대한 달라진 인식 확연

  
서울 광화문 앞 세종대로에는 요새를 방불케 하는 큼직한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차가 들어가려면 육중한 회색빛 2중 철제 철문과 2개의 차단기를 차례로 통과해야 한다. 차량 폭탄 테러 방지용이다. 3m를 넘는 높다란 벽 위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건물 구석구석에는 수많은 감시카메라가 눈을 번뜩인다. ‘힘의 상징’ 미국 대사관이다.
 
건물에 들어가려면 현관 검색대를 통과하고 휴대전화를 맡겨야 한다. 입구 경비실엔 짧은 머리의 미 해병대 병사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삼엄한 경비와 대조적으로 건물에 들어서면 짙은 아이보리색 벽 때문인지 생각보다 소박하고 깊게 가라앉은 분위기다. 건물 꼭대기 8층에 자리 잡은 대사 집무실도 예상보다 작았다. 가구들이 다닥다닥 붙은 느낌이었다. 
세종대로 188번지에 자리 잡은 높이 8층에 면적 9871㎡인 미 대사관. 지금은 수년 전 새로 지은 중국(1만7199㎡), 러시아(1만2012㎡) 대사관에 밀렸지만 그 영향력 면에선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 공사관

미국 공사관

이처럼 막강한 미 대사관이 지난 90년 초 건물을 비우라는 여론에 밀려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20년 넘게 새 둥지를 찾아 왔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도 옮기지 못했다.   
 
반도호텔

반도호텔

옛 미국 대사관

옛 미국 대사관

무슨 곡절 때문인가. 이 땅에 미 대사관이 들어선 건 1948년. 미 정부는 일제시대 때 반도호텔과 미쓰이(三井) 물산 경성지점으로 사용했던 건물을 대사관으로 썼다. 그러다 1968년 미국이 한국 정부를 위해 지어준 8층짜리 쌍둥이 빌딩 중 하나로 옮겨 간다. 61년 건설된 이 쌍둥이 빌딩은 원래 하나만 지으려 했으나 예산이 남는 바람에 똑같은 건물이 추가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현 미 대사관 건물에는 보일러실이 없다. 쌍둥이 빌딩인 지금의 역사박물관 건물 보일러실에서 난방을 공급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미 대사관으로 쓰이는 건물은 당초 원조기관인 주한 미국경제협조처(USOM)가 사용하도록 돼 있었다. 그랬던 것을 미 대사관이 원조기능도 수행한다는 이유로 68년 이 건물로 옮겨 갔었다. 하지만 80년 공식적인 미 원조기구가 철수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미 대사관이 더 이상 이곳을 사용할 근거가 없음에도 계속 머무르고 있으니 한국 정부에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 대사관 부지로 예정됐다 취소된 옛 경기여고 터,김태성

미 대사관 부지로 예정됐다 취소된 옛 경기여고 터,김태성

결국 미 대사관은 이 논란이 본격화되기 전에 마련해 뒸던 정동 옛 경기여고 자리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미국은 90년 을지로에 있던 미 문화원과 1만5117㎡에 이르는 경기여고 땅을 맞바꾸기로 서울시와 합의한 상태였다. 이 부지는 미 대사관저와 바로 맞닿아 있어 대사관과 함께 직원 숙소까지 지을 수 있는 안성맞춤의 땅이었던 것이다. 이에 미국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로 유명한 마이클 그레이브스에게 의뢰해 지하 2층, 지상 15층짜리 대사관 설계까지 마친다.
 
하지만 만사 쉬운 일은 없는 법.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순조로워 보였던 대사관 이전 계획은 돌연 암초를 만났다. 대사관을 지으려던 경기여고 자리가 역사적 유적지로 밝혀진 까닭이다. 조사 결과 문제의 땅에는 1933년까지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을 모셨던 선원전(璿源殿)과 왕과 왕비의 혼백을 모신 흥덕전(興德殿) 등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들은 “조선시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 위에 외국 대사관을 짓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국 미 대사관은 “한국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경기여고 이전 계획을 포기한다”고 2003년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다. 
 
경기여고 이전이 무산되자 미 대사관은 또다시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안 찾기에 나선 미국은 장고 끝에 한국에 반환될 용산 미군기지 한 편에 새 대사관을 세우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미국은 2005년 경기여고 부지를 넘겨주는 대신 용산 캠프 코이너 부지 중 7만9000㎡를 넘겨받기로 한국 정부와 합의했다.
 
20110705/용산 미군기지 캠프코이너 주한미대사관 부지 식목행사/박석환 외교통상부 1차관,월터샤프 주한미군사령관,캐설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변선구

20110705/용산 미군기지 캠프코이너 주한미대사관 부지 식목행사/박석환 외교통상부 1차관,월터샤프 주한미군사령관,캐설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변선구

하지만 미 대사관의 용산행마저 순탄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경비 문제 등으로 기지 이전이 계속 지연되면서 미 대사관 옮기기도 10년 넘게 늦춰졌던 것이다. 
 
20110705/용산 미군기지 캠프코이너 주한미대사관 부지/변선구

20110705/용산 미군기지 캠프코이너 주한미대사관 부지/변선구

결국 수년 전부터 미군기지 이전에 탄력이 붙자 미 대사관 측은 미뤘던 과제를 추진하자며 서울시에 실무회의를 제의해 지난 2월 서로 만났다. 이 직전 미 국무부는 새 대사관 설계를 미 건축가 그룹 ‘숍 아키텍츠’에 맡기기로 했다고 발표한다. 이와 관련, 미 대사관 측은 지난 7일 “신축 건물은 새로 지은 베이징·런던 대사관과 비슷한 현대식이 될 것이며 남산의 전경을 해치지 않도록 지어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계획에도 또다시 복병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유적지다. 당국의 조사 결과 대사관이 가기로 한 캠프 코이너 북동쪽에는 남단(南壇)이라고도 불리는 악해독단(嶽海瀆壇)이란 유적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악해독단은 나라와 백성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기 위해 제를 지내던 곳이다. 지금까진 악해독단만이 관심을 끌었지만 용산 미군기지 역시 숱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 앞으로 어떤 유적지가 새롭게 등장할지 모른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미 대사관 이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작지 않다. 
 
한국의 혈맹이자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준 미국은 우리에겐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그러기에 미국이 거절하긴 했지만 해방 직후 이승만 대통령은 고마움의 표시로 당시 반도호텔을 미 대사관 건물로 거저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랬던 미국이 이제는 20년 넘게 새 대사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케 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닐 수 없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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