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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원판엔 없는 독도·거문도 넣어, 고산자도 환영하리라 생각

『해설 대동여지도』 펴낸 최선웅·민병준
해설 대동여지도

1만 1680개 한자 지명 한글 토 달아
흑백 지도에 색 입히고 해설도 추가

원판 글씨·그림 한 사람 솜씨 아닌
5~6명이 팀 이뤄 만든 것으로 보여

한반도가 온전히 하나일 때 모습
대동여지도야말로 통일 아이콘

최선웅 도편
민병준 해설, 진선출판사
 
조선 철종 12년(1861년)에 제작된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21세기용으로 새단장을 했다. 한자로 적힌 1만1680개 지명마다 한글로 토를 달고, 흑백 지도에 색을 입혔다. 누구나 쉽게 보고 읽을 수 있는 지도. 바로 156년 전 김정호가 꿈꿨던 일이다. 20년 전부터 구상했던 『해설 대동여지도』를 마침내 펴낸 최선웅(73) 한국지도제작연구소 대표와 민병준(54) 월간 ‘사람과 산’ 전 편집장을 만났다. 산을 좋아하고 지도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의기투합한 두사람이다. 이들은 “책은 대동여지도의 개정 축쇄판”이라고 소개했다. 단순한 해설서가 아닌 대동여지도 자체의 업그레이드판이라는 것이다.
 
대동여지도는 전국을 남북 22층, 동서 2∼8면으로 구획해 가로 39.5㎝, 세로 29.5㎝ 크기의 지도 총 120장에 나눠 실어놓은 지도다. 지도 120장을 모두 이으면 전체 크기가 가로 3.8m, 세로 6.7m에 달한다. 건물 3층 높이의 대형 지도지만 휴대와 보관은 편리하다. 병풍처럼 펼쳐 볼 수 있는 ‘분첩절첩식’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각 층별 지도를 이어붙이고 지도 한 면을 반으로 지그재그로 접어놓아 가로 19.8㎝, 세로 29.8㎝의 책처럼 갖고 다닐 수 있다. 『해설 대동여지도』는 대동여지도를 원판 크기의 80%로 축소한 뒤, 지명에 한글을 병기하고 육지·수부·행정경계·도로·봉수 등을 컬러로 바꿨다. 또 김정호의 다른 지도 ‘청구도’‘동여도’ 등을 참고해 오탈자도 바로잡았다.
 
원래 대동여지도에는 없었던 요소도 여럿 추가됐다. 지도 오른쪽에는 해당 지역의 지리·지역·문화에 대한 해설을 달았다. 또 지도의 가로·세로에 각각 가∼마, 1∼4의 색인 부호를 붙여둔 뒤, 책 뒷부분에 1만1680개 전체 지명에 대한 색인을 실어 찾아보기 쉽게 했다. 가장 큰 변화는 대동여지도에서 빠져있는 우산도(독도)와 삼도(거문도)를 그려넣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은 “대동여지도 원판에 누가될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의 국토를 온전히 하고자 하는 의도는 고산자도 환영하리라 생각한다”며 의미를 짚었다.
 
한글과 색깔을 더한 대동여지도. 조선의 수도 한성부를 그린 ‘도성도’ 부분이다. [사진 진선출판사]

한글과 색깔을 더한 대동여지도. 조선의 수도 한성부를 그린 ‘도성도’ 부분이다. [사진 진선출판사]

지도 편집을 담당한 최 대표는 50여 년간 지도를 만들어온 지도제작자이자 고지도 연구가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과부도인 『우리나라 지리부도』(1946) 저자였던 외삼촌 이상만 선생 덕에 어려서부터 지도를 접하며 자랐다. 지도에서 지명을 찾고 세계지도를 따라그리는 게 놀이였다. 지리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대학 입시에 실패한 뒤 학문의 꿈은 접었다. 곧바로 출판사 ‘민중서관’의 미술부에 취직해 어린이용 전과의 삽화도 그리고 지도도 만들었다. 인왕산 자락 누상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산 타기도 즐겼다. 군대 제대 이후인 1969년 국내 최초의 산악 전문지 ‘월간 등산’(현재의 ‘월간 산’)을 창간해 잡지를 만들었다. 등산에서 지도는 필수품 중에 필수품이었다. 지도 제작에 관심이 다시 커졌다. 1974년 지도 회사 ‘동양출판사’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지도 제작에 입문했고, 88년엔 자신의 회사 ‘매핑코리아’를 차렸다.
 
해설을 맡은 민 전 편집장은 1990년대 중반 ‘사람과 산’ 기자 시절 최 대표를 알게됐다. 등산 지도에 담을 내용을 취재한 뒤 이를 최 대표에게 전달하면 지도로 만들어줬다.
 
일로 만난 두 사람을 묶어준 건 대동여지도다. 지도제작자로서, 산악인으로서 대동여지도는 보면 볼수록 위대한 지도였다. 정확하고 상세할 뿐 아니라 현대 지도처럼 기호를 사용해 읽기 편리하고, 도로 위에 10리 방점을 찍어 거리까지 계산할 수 있다. 또 목판 인쇄본으로 제작해 널리 보급할 수 있었으니, 당시로선 획기적인 지도였다. 하지만 오늘날 대동여지도를 제대로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대동여지도 대중화에 마음을 모았지만 책을 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글 표기 해설 대동여지도’를 구상했고, 2013년 구체적인 제안서를 만들어 출판사에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지도를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는 시대에 대동여지도라니, 도무지 수지 맞아 보이는 기획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샘플까지 만들어 훗날을 도모했다. 2015년 강우석 감독의 영화 ‘고산자’ 제작 소식을 들은 뒤 다시 제안서를 냈고, 기어이 통과시켰다.
20년 전 구상한 『해설 대동여지도』를 마침내 완성한 최선웅(왼쪽)·민병준씨. 뒤에 보이는 지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7분의 1 크기로 축소해 한반도 모양으로 이어붙인 지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년 전 구상한 『해설 대동여지도』를 마침내 완성한 최선웅(왼쪽)·민병준씨. 뒤에 보이는 지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7분의 1 크기로 축소해 한반도 모양으로 이어붙인 지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두 사람이 『해설 대동여지도』를 통해 알리고 싶은 것은 지도의 가치다.
 
“세계 역사에서 지도는 고비고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5세기 시대부터 시작된 ‘대항해 시대’에 지도가 급속히 발전했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만든 것도 지도였다. 영국의 지리학회는 왕립으로 운영되는데, 우리나라에선 지도 만드는 사람을 ‘쟁이’ 취급한다.”(최)
 
“지도는 그 시점의 역사다. 옛 지도를 보면 당시 사람들의 삶을 읽어낼 수 있다. 사찰과 목장·봉수 등의 위치·갯수만 뽑아내도 연구할 거리가 무궁무진하다.”(민)
 
관련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현재 김정호에 대해선 신분도, 출생연도도, 사망연도도 알려지지 않았다. 대동여지도가 개인적으로 만든 지도인지, 관의 지시에 따라 만든 관찬지도인지도 모른다. 생애와 업적뿐 아니라 당시 측량 도구 등에 대한 자료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는 비슷한 시기 일본의 지도제작자 이노 다다타카(1745∼1818)의 경우와 크게 대조된다.
 
최 대표는 고산자에 대한 일제의 터무니없는 왜곡이 한동안 마치 사실인 양 유통됐던 일도 끄집어냈다.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어독본』에는 천민 출신인 김정호가 백두산을 여덟 차례나 오르내리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는데 흥선대원군이 이를 간첩행위라고 몰아세워 그를 옥에 가두고 목판을 압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모두 조선 왕조를 무능하게 묘사하기 위해 꾸며낸 얘기다. 최 대표는 “김정호가 당시 실학자인 최한기와 무관 최성환·신헌 등과 가깝게 지내며 지도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규장각에 있는 『봉상잡록』에 ‘김겸정호(金傔正浩)’가 평안도에 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겸(傔)’은 양반댁 집사를 가리키는 말로 김정호의 신분은 평민이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책 편찬을 위해 대동여지도를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한 사람이 만든 지도가 아니라 대여섯 명이 팀을 이뤄 제작했다는 사실도 알게됐다”고 했다. 지도의 글씨체와 하천 그림 끝마무리 등이 한 사람의 솜씨가 아니라는 것이다.
 
민 전 편집장은 대동여지도의 의미를 “한반도가 온전히 하나일 때의 모습”이란 점에서 찾았다. “갑산과 십만령·칠보산 등 지도 속 북한 지역을 들여다보면서 직접 답사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면서 “대동여지도야말로 통일의 아이콘”이라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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