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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초'에서 '메모'로 강등된 안종범 수첩…향후 재판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업무수첩에 대통령과의 개별 면담이나 회의 내용을 적었다. [시사IN]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업무수첩에 대통령과의 개별 면담이나 회의 내용을 적었다. [시사IN]

"저희 재판부도 안종범 수첩에 대해서 진술 능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그와 같은 기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 즉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에 대화 내용 있었다는 간접 정황으로 안종범 수첩을 증거로 채택하겠다."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사건을 심리중인 재판부는 4일과 5일 이틀 연속 '안종범 수첩' 주인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증인으로 불러 심리한 끝에 이렇게 말했다.
 
재판부의 이 결정을 두고 삼성 측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해석이 엇갈린다.
 
삼성 측 변호인은 "안 수석이 대통령으로부터 나중에 전해 듣고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기재된 내용이 곧 독대 자리에서 언급된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재판부가 수첩을 '직접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안종범 수첩' 속 내용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두 사람만의 독대 자리에 안 전 수석이 배석해 '사초'처럼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 아니다. 삼성 측은 이 때문에 '안종범 수첩'은 '남의 말을 들은 것을 받아 적은 재전문'이라고 주장한다. 두 번이나 옮겨진 이야기를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특검팀은 직접·간접 여부보다는 증거로 채택됐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일반적인 내용을 이야기하기 위함이 목적이었다면 기업인들과 공식 행사를 하면 되는데 총수를 개별적으로 만나 은밀하게 진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목격자나 폐쇄회로(CC)TV 등의 직접 증거는 없다"면서 특검팀에서도 어떤 경위로 수첩이 작성됐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판부에 직접 증거로 채택해줄 것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안종범 수첩은 범행이 이루어진 직후에 있었던 일을 적은 '강력한 간접 증거'다.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함으로써 앞으로 법정에서 자유롭게 수첩을 띄우면서 유죄를 입증해나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2015년 7월 25일과 2016년 2월 15일 두 차례에 걸친 독대는 뇌물죄 입증에 중요한 장면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모두 뇌물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이고 특검팀은 결정적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왕수석'이라고 불린 대통령의 최측근의 업무 수첩은 중요한 열쇠가 된다. 실제로 지난 1월 한 차례 기각됐던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두 번째 청구에서 발부된 것은 추가로 발견된 안종범 수첩이 유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연합뉴스]

 법정에 출석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연합뉴스]

 법정에 출석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연합뉴스]

재판부의 '정황 증거 채택'이라는 결정으로 재판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건국대 로스쿨 손동권 교수는 "간접 증거냐 직접 증거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증거가 얼마나 유력한 설명을 해주느냐가 중요하다. 법관이 합리적 의심 없이 청탁이 있었다고 확신을 가질 정도로 입증해야 유죄가 된다"고 말했다.
 
삼성 측은 "독대 상황에서 구체적 청탁이 없었고 그런 청탁이 오갔다는 증거도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특검팀은 '부정한 청탁은 명시적인 의사 표시에 의한 것은 물론 묵시적 의사 표시에 의해서도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묵시적 청탁'을 입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의 대가로 무엇을 주겠다"식의 명시적 언어 교환이 없었더라도,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현안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곧 '이심전심'의 청탁이 된다는 것이다.특검팀 관계자는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진경준 전 검사장의 제3자뇌물수수 사건에서도 명시적인 이야기 없이 서로 알고 있었다는 '이심전심'식 청탁이 인정됐다"면서 '청탁'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하지 않는 것이 최근의 추세라고 말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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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