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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남자들의 로망 "빤스 한 장, 널판지 하나"

(왼쪽부터) 한국 유일의 서핑 잡지 'WSB FARM SURF MAGAZINE'을 만들고 있는 한동훈 대표, 엄준식 사진가 겸 디자이너, 안준용 웹사이트 관리자, 장래홍 편집장. 우상조 기자

(왼쪽부터) 한국 유일의 서핑 잡지 'WSB FARM SURF MAGAZINE'을 만들고 있는 한동훈 대표, 엄준식 사진가 겸 디자이너, 안준용 웹사이트 관리자, 장래홍 편집장. 우상조 기자

1년에 딱 한 번 여름에만 발행되는 국내 유일의 잡지가 있다. 서핑 잡지 ‘WSB FARM SURF MAGAZINE’이다. 지난해 7월 창간호를 내고 올해는 6월에 2호를 발간했다. 편집국 인원은 달랑 4명. WSB FARM 대표이자 잡지 발행인 한동훈(40)씨, 편집장 장래홍(33)씨, 사진가 겸 디자이너 엄준식(34)씨. 모두 인문 계열 전공인데 혼자 공대 나왔다고 정서적 왕따를 당하는 안준용(38)씨는 웹사이트 관리를 맡고 있다. 
 
“WSB는 흰 딸기(White Straw Berry)의 앞 글자예요. 파도가 부서질 때 흰 거품이 일어나는데 파도 안에서 그걸 보고 있으면 거대한 딸기처럼 보이거든요.”(한)
 
한 대표와 장 편집장이 서핑 대회에서 만나 강원도 양양 죽도 해변에 사무실을 차린 게 4년 전이다. 27년간 스노보드 선수로 활동했던 한 대표는 선수생활 이후 인도네시아 발리를 오가며 비치웨어 등을 만들어 팔았다. 덕분에 1년에 절반은 발리에서 서핑을 즐길 수 있었다. 영상을 전공한 서핑 매니어 장 편집장을 만나 서퍼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를 찍어보자며 의기투합했다. 나머지 팀원들까지 모여 본격적으로 흰 딸기 농장의 ‘원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지는 3년 됐다.
 
“3년간 누구도 월급을 집에 가져가 본 적이 없어요. 벌어놓은 돈 까먹는 것도 이젠 끝이에요.”(안)  
 
대답은 ‘죽겠다’고 하지만 햇빛에 바싹 그을린 네 사람의 표정은 자신들만의 ‘꿍꿍이’가 재밌어 죽겠다는 중학생 소년들처럼 밝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에서 생활 터전을 양양으로 옮긴 덕에 그렇게 좋아하는 서핑을 원 없이 타고 있다. 100만원짜리 프라이드 자동차를 타고 다닐지언정 지난 3년간 자신들이 계획했던 대로 일은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 행복하다. 앞으로 할 일도 정해져 있어 남부러울 게 없다.  
 
“서핑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고, 그걸 담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1차로 서핑 잡지를 만들고, 2차로는 지난해 겨울 해외 서핑 캠프를 진행했죠. 파도타기 추울 때 따뜻한 나라에서 서핑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서핑 전문 여행사인 셈이죠. 올해는 음악 하는 서퍼들과 함께 ‘WSB FARM SURF MUSIC’ 레이블을 만들고 첫 번째 앨범 ‘파도 타러 가는 7번국도(해안선을 따라 부산에서 함경북도까지 뻗은 국도)’를 발표했죠.”(한)    
국내 유일의 서핑 잡지 ‘WSB FARM SURF MAGAZINE’ 2호 표지. [사진 WSB FARM SURF MAGAZINE]

국내 유일의 서핑 잡지 ‘WSB FARM SURF MAGAZINE’ 2호 표지. [사진 WSB FARM SURF MAGAZINE]

국내 유일의 서핑 잡지 ‘WSB FARM SURF MAGAZINE’ 1호 표지. [사진 WSB FARM SURF MAGAZINE]

국내 유일의 서핑 잡지 ‘WSB FARM SURF MAGAZINE’ 1호 표지. [사진 WSB FARM SURF MAGAZINE]

 
다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었다. 게다가 1인 다역. 한 대표는 “돈 없이 ‘간지(느낌·멋의 일본어)’ 나게 일하는 게 제일 힘들다”며 엄살을 피우다가도, 종이 잡지나 CD 발매처럼 굳이 아날로그적인 작업을 하는 이유를 묻자 “디지털에 밀려 익숙한 것들이 다 없어지면 세상이 심심해질 것 같아서”라고 설명했다. 마니아라면 쉽게 벌일 수 있는 전문용품 숍, 강습 학교 등의 사업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빛이 나는 ‘콘텐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가 죽더라도 한국 서핑 잡지의 최초, 서핑 뮤직 레이블의 최초는 우리 흰 딸기 농장이니까, 사실 인생에 있어선 남는 장사죠.”(장)        
 
이들은 스스로를 ‘서핑 업계의 구글’이라고 소개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네 사람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게 또 있는데 바로 서퍼들에게 꼭 필요한 ‘라이브 웹 캠’ 디지털 서비스다. 서핑할 수 있는 국내 해변 16곳과 발리 해변 2곳에 HD 웹 카메라를 설치하고 파도의 상태를 WSB FARM 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방송한다.
 
“해변마다 파도가 부서지는 지점은 일정해요. 그 지점에 파도가 있는지 없는지, 흰 거품을 내며 깨지는 파도의 모양은 어떤지를 보면 오늘 ‘길이 나는 걸’ 판단할 수 있죠. 내 집 침대에서 파도 상황을 체크하는 건 도시 서퍼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서비스죠. 허탕 치지 않아도 되고, 휴일을 미리 계획할 수 있으니까요. 일본 업체와 협업해서 파도 높이와 바람세기 등을 알려주는 차트도 제공하죠. 올여름에는 모바일 앱 서비스도 시작할 겁니다.”(안)  
 
(왼쪽부터) 한국 유일의 서핑 잡지 'WSB FARM SURF MAGAZINE'을 만들고 있는 안준용 웹 사이트 관리자, 엄준식 사진가 겸 디자이너, 한동훈 대표, 장래홍 편집장. 우상조 기자

(왼쪽부터) 한국 유일의 서핑 잡지 'WSB FARM SURF MAGAZINE'을 만들고 있는 안준용 웹 사이트 관리자, 엄준식 사진가 겸 디자이너, 한동훈 대표, 장래홍 편집장. 우상조 기자

스포츠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승승장구하는 이들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현지 원주민들과의 어울림이다. 한국의 서핑 천국으로 소문난 양양 죽도해변만 해도 최근 2~3년 새 부동산 가격이 10배 이상 뛰었다. 그만큼 원주민과 이주민, 방문객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라이브 웹 캠에 검은 봉지를 씌우거나 렌즈 방향을 비틀어버리는 분들도 있었어요. 서퍼들이 아무 데서나 담배 피우고, 꽁초랑 쓰레기 버리고, 새벽까지 술 마시면서 시끄럽게 한다고 괘씸해한 거죠. 방법은 시간과 진정성뿐이에요. 어른 공경하고, 주민들께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그분들의 생활을 존중하는 거죠. 어업이 생업인 분들은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나니까 펍은 12시면 문 닫고, 음악공연을 해도 9시에 끝내는 거죠. 대신 원주민 어르신들에게도 이해를 부탁하죠. 비키니 입은 여성들이 오가는 게 보기 싫어도 그게 요즘 젊은이들의 문화라고.”(한)
국내 유일의 서핑 잡지 ‘WSB FARM SURF MAGAZINE’ 창간호에 실렸던 서핑 매니어 전은경씨의 파도 타는 모습. [사진 WSB FARM SURF MAGAZINE]

국내 유일의 서핑 잡지 ‘WSB FARM SURF MAGAZINE’ 창간호에 실렸던 서핑 매니어 전은경씨의 파도 타는 모습. [사진 WSB FARM SURF MAGAZINE]

 
평균 나이 36세인 이들은 서핑의 어떤 점에 매료돼 바다 옆에 살면서 ‘서핑 문화 플랫폼’의 기수를 자처하게 됐을까.  
 
“빤스(수영팬티) 한 장이랑 널빤지(서프보드) 하나 갖고 집채만 한 파도와 단둘이 마주쳐보면 인생이 달리 보이거든요. 파도가 만든 둥근 배럴 안에선 나이도 직업도 무의미해요. 두려움을 떨치고 뚫고 나가는 것만이 중요하죠. 파도를 하나씩 부숴나갈 때마다 삶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거예요. 30~40세대에게 서핑을 추천하는 이유기도 하죠. 머리까지 물에 푹 잠겼을 때 몸이 개운해지면서 정신이 퍼뜩 나죠. 이때 두려움을 부숴버릴 에너지가 솟아요. 우린 그걸 ‘물뽕’이라고 하는데 한번 중독되면 우리처럼 헤어 나오질 못할 거예요.”(한)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우상조 기자, WSB FARM SUR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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