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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원전 공론조사 하자, 제대로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탈(脫) 원전’에 반대하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산업·안보와 전기요금 문제까지 차근차근 대안과 해법을 마련해 국민적 합의를 거친다면 말이다. 애초 지금 같은 갈등을 부를 이유도, 학계가 일제히 반대 성명을 낼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문재인 정부는 이리 서두를까. 그러니 온갖 오해와 억측이 나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왜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부터 중단하고 논의를 하자고 하나. 공사를 진행하며 논의하면 안 되는 일인가. 공론조사로 원전 폐기 여부를 결정하는 게 옳은가. 그것도 3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공론조사위원회에 전문가는 왜 뺀다고 했나.
 
이런 의문의 답은 하나로 모아진다. 정부가 ‘탈원전을 기정사실로 해놓고 모양 갖추기를 한다’는 것이다. 하기야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이슈일수록 정권의 힘이 강한 초반에 밀어붙여야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대선 시절 탈원전 공약을 만든 백운규 교수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앉힌 것도 그런 추론에 힘을 실어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란 초대형 이슈가 불거진 시점에 하필 통상 문외한 장관을 임명한 것은 다른 이유로는 해석이 안 된다.
 
청와대는 두루뭉수리 해명은 했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공사를 계속할수록 매몰 비용이 커진다. 지금 중단해도 2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해명을 듣고 나니 ‘탈원전을 기정사실화한 것 아니냐’는 심증이 더 깊어진다. 왜 경제·산업·안보 다 놔두고 원전 문제를 사회수석이 다루는지도 알 수 없다.
 
이렇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니 답은 하나다. 공론조사, 하자. 대신 진짜, 제대로 하자. 공론조사는 1차 여론조사를 하고 → 쟁점에 대해 전문가의 정보를 충분히 제공한 뒤 → 2차 조사를 통해 의견의 변화 과정을 살피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푹 익은 여론’ 즉 공론(Public Judgement) 이 만들어진다. 잘 활용하면 원전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국민에 제대로 알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몇 가지 전제가 있다.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이렇게 제안한다.
 
①자문위원회는 핵심 이해 관계자들로 구성해야 한다. 탈원전 환경 단체, 핵공학과 교수, 지역 주민 대표 등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시민배심원 구성과 조사 방법, 이들에게 설명할 전문가, 파트별 진행보조자 선정까지 이해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
 
②이념 몰이나 감성 팔이로 흘러서는 안 된다. 시민배심원에 설명할 전문가는 학식·전문성은 기본이고 전달 능력까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 공론조사엔 아는 것 못지않게 잘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선동성이 짙은 인사는 배제해야 한다.
 
③시민배심원은 인구 비례에 준해 선정해야 한다. 정부의 구상대로 젊은 층을 더 많이 넣을 수는 있다. 원전 위험의 문제는 주로 미래 세대에 속하는 것이니 명분도 있다. 그렇다고 최대 10%를 넘겨서는 안 된다. 지역 안배는 필수다. 서울·경기·충청·경상·전라 등 5~6개 광역권으로 나눠 각 200명씩, 1000~1200명 정도면 국민 전체 여론에 가까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④공론조사는 의사 결정에 참고하는 여론조사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90대 10 같은 압도적 결과가 나온다면 몰라도 찬반이 팽팽하면 현상유지(status quo)가 정답이다. 5년짜리 대통령을 탄핵하려도 국회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탈원전은 국가 백년대계를 가르는 결정이다. 만약 무조건 결과에 따르겠다면 공론조사를 할 게 아니라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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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