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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대필 누명’ 옥살이 강기훈에 국가 등 6억8000만원 배상 판결

26년 전 ‘유서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강기훈(54·사진)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데 이어 국가를 상대로 낸 손배배상 소송에서도 이겼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부장 김춘호)는 6일 강씨가 국가와 김형영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문서분석실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와 김씨가 함께 6억8000만원 상당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유서대필 사건의 시작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명지대 학생 강경대(당시 19세)씨가 시위 도중 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자 전국에서 노태우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후 5월 8일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었던 김기설(당시 25세)씨가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해 사망했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는 “분신한 김씨의 유서가 누군가에 의해 대필됐다”며 “김씨의 죽음을 사주한 배후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같은 달 29일 “김씨의 유서 속 필체가 강씨의 것과 일치한다”고 공식 발표한 뒤 그해 7월 강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했다. 정부가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김형영 당시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은 “필체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결국 강씨에게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1년6개월 형이 확정됐다.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필적 감정을 다시 의뢰한 결과 유서 속 필체는 강씨의 것이 아니다”고 발표했다. 강씨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2015년 5월 14일 사건 발생 24년 만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후 강씨와 가족들은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인권을 유린했다”며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1894년 프랑스 군부가 가짜 필적을 증거로 유대인이었던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를 간첩으로 몰아 종신형을 선고한 ‘드레퓌스 사건’에 비유됐다.
 
재판부는 “강씨가 이미 형사재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아 보상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강씨가 석방 뒤에도 후유증으로 많은 고통을 겪은 점, 동료의 자살을 강요했다고 오명을 쓰고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중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부장검사였던 강신욱(73) 전 대법관과 주임검사였던 신상규(68) 전 고검장에 대해서는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현재 간암으로 투병 중인 강씨는 이날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김선미·박사라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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