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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의 직격 인터뷰] “한·미 FTA 맺은 우리를 이완용, 미국 총독이라 모욕하더니”

한·미 FTA 산증인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여기 비즈니스센터의 방에는 창문이 없어요. 막판 협상을 하다가 시계를 보니 12시인데, 밤인지 낮인지조차 헷갈리더군요.”
 
6일 오전 남산 중턱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2층의 비즈니스센터. 김종훈(65)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센터 곳곳을 둘러보며 10년 전을 떠올렸다. 2007년 4월 이곳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됐다. 하얏트는 14개월간 진행된 협상의 마지막 결전장이었다. 그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창이 없는 장소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때 타결된 한·미 FTA를 보통 ‘원협정’으로 부른다. 한·미 FTA는 2012년 3월 발효되기까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추가 협상과 2010년 FTA 재협상 타결, 2011년 말의 국회 비준이라는 험준한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곡절 많았던 이 모든 과정의 산증인이 김 전 본부장이다. 그를 만나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 이후 다시 이슈로 떠오른 한·미 FTA에 대해 들었다.
 
 
6일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0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장소인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비즈니스센터를 찾았다. 외교관 37년, 국회의원 4년을 지내고 요즘엔 세월을 낚으며 지낸다. 연세대 강의는 이번 학기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만나느라 너무 바빠 오랜 취미인 오토바이 라이딩도 자주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패러글라이딩 등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이기도 하다. [우상조 기자]

6일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0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장소인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비즈니스센터를 찾았다. 외교관 37년, 국회의원 4년을 지내고 요즘엔 세월을 낚으며 지낸다. 연세대 강의는 이번 학기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만나느라 너무 바빠 오랜 취미인 오토바이 라이딩도 자주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패러글라이딩 등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이기도 하다. [우상조 기자]

당시 협상은 어땠나.
“마지막 단계에선 역시 막판 조율(wrap- up)이 힘들었다. 아직 쟁점이 남았는데 마감시간에 쫓긴 일부 언론에서 ‘협상 타결’이라고 오보를 내기도 했을 정도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이명박 정부 때의 쇠고기 협상과 FTA 재협상이었다. 이미 다 해놓은 것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로웠다.”
 
 
과거 FTA 재협상 때 사실상 재협상을 하면서 굳이 ‘협의’라는 표현을 오랫동안 고수했다. 2010년 11월엔 FTA 원협정문에서 “점(.)이든 콤마(,)든 협정문에 다시 찍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했는데.
“전술 차원에서 나온 말로 이해해 달라. 국가를 대표해 협상하는 사람은 전선(戰線)이 여럿이다. 물론 제1선은 상대방이다. 2선은 국내 각 부처다. 같은 협상팀 안에서도 이해관계는 늘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 협상 상대방은 한국 신문에 나온 기사를 24시간 안에 번역해 다 보고 협상에 임한다. 따라서 전선이 복잡할 때는 협상 상대방을 타깃으로 해 발언할 수밖에 없다. 결국 상대방과의 기싸움이다.”
 
그는 2011년 중앙일보 기고에서 "협상보다 더 오랜 시간 우리 내부의 이견을 설득하고 편견과 싸워야 했다. 누군가 나를 옷만 바꿔 입은 이완용, 미국의 총독이라며 모욕하는 순간도 참아야 했다”고 쓴 바 있다.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앞두고 2011년 11월 본지 1면에 “이제 두 살 된 내 손녀 FTA로 세계 누빌 권리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당시 글에서 “문호를 열어 시장을 넓히고 세계 최고와 경쟁하는 일등 국가, 땅덩어리는 작지만 국민이 유복하게 살 수 있는 튼실한 기반을 닦는 것이 우리 시대의 사명”이라며 “우리 후손이 ‘한·미 FTA’라는 고속열차를 타고 미래를 누빌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썼다.
“이제 그 손녀가 초등학생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내게 묻더라. FTA는 경쟁이고 경쟁하면 피곤한 것 아니냐고. 우리 사회에 빈부격차가 커지는 등 분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분명 고민할 문제다. 세계 어느 나라나 분배 문제가 없는 곳이 없다. FTA로 인해 생기는 우리 사회의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더 해야 한다. 도가 지나쳐서 시장을 왜곡하면 안 되겠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내 패러다임과 국제 패러다임은 확연히 다르다는 거다.”
 
 
무슨 얘기인가.
“국내적으로는 분배를 위해 손을 내밀고 서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엔 그런 게 없다. 국제관계는 원시적이고, 노골적이며(그는 ‘naked’라는 영어 단어를 썼다), 처절한 것이다.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서 공적개발원조(ODA)를 하고는 있지만 언제나 목표치를 밑돈다. 나라 밖에서는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겠다는 각오로 맞설 수밖에 없다. 국제 경쟁에서 이긴 뒤에야 국내적으로 포용력을 보일 수 있는 것 아닌가.”
 
 
2010년 한·미 FTA 재협상이 타결됐다. 그때 본지 1면 제목이 ‘더 주고 덜 받았다… 동맹 때문에’였다. 당시 한·미 FTA 폐기를 주장하던 민주당 지도부가 본지를 앞에 들고 기자회견하며 여론전의 도구로 써먹기도 했다.
“더 주고 덜 받은 것은 맞다. 당장 자동차만 해도 원협정보다 후퇴했다. 하지만 의약품에서 얻은 게 의미 있었다고 본다. FTA를 둘러싸고 손익을 따지는 예측치를 내놓지만 나중에 보면 맞는 것보다 틀린 게 더 많은 것 같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FTA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재협상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실 서비스 쪽은 조목조목 막아놓았다. ‘지금보다 후퇴는 없다’는 현재유보 47개, 나중에 우리의 재량권을 인정하라는 의미의 미래유보 41개가 대표적이다. 공익성이 있는 사회서비스를 제외한 다른 서비스 부문을 더 개방해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구조조정의 계기가 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하지만 과감하게 서비스를 개방했다면 더 격심한 반대에 부닥쳤을 것이다.”
 
 
한·미 FTA를 다시 협상하게 될까.
“트럼프의 FTA 재협상 언급의 강도나 빈도로 볼 때 그냥 내뱉은 얘기는 아니다. 작심하고 하는 말이다. 다만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이후 한·미 FTA를 다룰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통상절차법에 따라 의회 논의 등의 국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르면 내년 봄 이후에야 협상은 시작될 것이다. 미국과의 기싸움이 상당히 있을 거다. 그 기간에 우리는 내부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는 자동차와 철강을 거론했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통보하기 전에는 모든 게 추측의 영역이다. 실제로 미국의 통상 쪽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뭘 고치면 미국의 무역적자가 균형으로 수렴하느냐고. 근데 그쪽도 모르겠다고 한다. 자동차는 수입차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많이 올랐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한국의 자동차 시장 개방을 요구했고, FTA로 이를 관철시켰으나 혜택은 유럽 차들이 가져갔다. 우리 자동차 시장은 막혀 있지 않다. 미국 차가 안 팔리는 것이다. 정부가 소비자에게 유럽 차 말고 미국 차를 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 철강은 한·미 간 얘기할 문제가 아니다. 과잉 설비로 빚어진 글로벌 이슈다. 철강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트럼프가 얘기해야 한다. 한·미 FTA를 없애면 미국 적자가 해결되나. 그렇지 않다. 미 상무부 산하 연구소가 한·미 FTA가 없으면 미국 적자는 400억 달러로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우리가 미국에 요구할 부분이 있다면.
“미국에 대한 서비스 부문의 적자가 고착화됐다. 그런 부분을 따져봐야 한다. 미국의 저작권과 특허 등 지적재산권(IP) 관련 로열티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가 누리는 상품 수지의 흑자를 5~6년 안에 넘어설 수도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커지고 있는 데이터 경제와 모바일 경제 부문에서 양국이 서로 협력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키는 데이터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이런 모든 것이 데이터 활용과 관련이 있다. 상품 교역은 더 이상 늘어나기 힘들다. 반면에 데이터 경제는 이제 시작이다. 엄청난 부가가치가 나올 것이다. 그런 구상을 우리 정부 전략가들이 지금부터 해야 한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결국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FTA 재협상 때 이런 점을 반영할 수는 없을까.
“더 개방하고 이를 우리 사회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와 구조조정의 계기로 삼는 것, 문재인 정부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통상은 여성에게 잘 맞는 분야인가.
“미 무역대표부(USTR)에 가 보면 여인 천국이다. 아마 통상이 세밀하고 디테일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여성에게 더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잘 따질 수도 있고. 여성들이 논쟁(argument)을 잘하지 않나(웃음).”
 
김 전 본부장은 정치권의 FTA 논란을 봉합하는 전도사가 되겠다며 2012년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해 ‘FTA 저격수’였던 정동영 민주통합당 후보를 누르고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예전 인터뷰에서 “정치권이 폴리티션(politician), 즉 지역구 대표로서가 아니라 국가 전체를 보는 스테이츠맨(statesman)의 시각을 가져줬으면 한다”며 “국회의원이 많지만 그런 안목을 가진 분들이 결국은 진정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원 시절 그는 ‘스테이츠맨’이었을지 문득 궁금했다.  
 
 
국회의원 4년을 평가하면.
“한다고 했는데 별로 잘한 것 같지는 않다. 국회에 있는 동안 FTA는 전혀 이슈가 안 됐다. 스테이츠맨? 우리나라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지금 선거제도가 있는 한 득표활동에 능란한 분들이 당선될 수밖에 없다. 모자라는 생각인지 몰라도 국회의원, 도·시·구의원 모두 지역 발전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다음 선거에 나오나.
“노 코멘트.”
 
 
FTA에 반대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은 미국의 공세에 맞서 디펜스하는 입장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과거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라고밖엔 해석이 안 된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
‘검투사’란 별명으로 불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산증인이다. 한·미 FTA 추진을 발표했던 2006년 2월 이후 협상 타결(2007년)-미국산 쇠고기 추가 협상(2008년)-FTA 재협상 타결(2010년)-국회 비준(2011년 말)까지 무려 71개월간 한·미 FTA는 그의 품에 있었다. 한·미 FTA 첫 협상 14개월 동안 한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다. 2007년 8월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급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돼 한·미 FTA 재협상과 국회 비준까지 마무리된 뒤 2011년 12월에야 짐을 벗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장관급 인사 가운데 이명박 정부에서 유일하게 유임됐다. 두 정부에서 4년4개월을 장관급 공무원으로 일했다. 19대에서 새누리당 의원을 지냈고 지금은 바른정당 원외 지구당 위원장이다. 현재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와 대한체육회 명예대사를 맡고 있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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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