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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 효과 제로 … 셰일 석유의 포로 된 국제 유가

지난달 중순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 해상에 초대형 유조선(수퍼탱커) ‘사이크’호가 한동안 떠 있었다. 총 길이 330m의 거대한 유조선은 북해산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있었다. 영국 에든버러 인근 항구를 떠나 중국 톈진항으로 가던 중이었다.
 
사이크호가 목적지를 잃고 헤맨 이유는 중국으로부터 거래 중단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유가가 떨어지면서 가격 조건에 문제가 생겼다. 유조선을 임차한 로열더치셸은 배를 스코틀랜드 인근으로 불러 올려 선박 대 선박(ship-to-ship) 방식으로 원유를 옮겨 실을 계획을 세웠으나 이마저 불발됐다. 유가 약세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산유국들의 잇따른 감산에도 불구하고 국제 유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서부 텍사스유(WTI)는 2015년 이후 배럴당 30~60달러 속에 갇혀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는 배럴당 40달러대에 주로 머물렀다. 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WTI 8월 인도분 가격은 전날보다 4.12% 떨어진 배럴당 45.13달러에 거래됐다.
 
유가가 맥을 추지 못하자 지난해 11월 말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회원 산유국들은 6개월 감산에 합의했다. 6개월이 지난 5월 말 당사국들은 감산 계획을 연장했다. OPEC 회원국은 현재 하루 335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 중이다. 내년 3월까지 하루 180만 배럴을 줄이기로 했다.
 
이렇게 OPEC이 감산에 합의했는데도 유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 핵심은 미국의 셰일 유전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미국 셰일 유전의 석유 생산 원가는 배럴당 45~55달러 사이다. 국제 유가가 이 정도 선에 이르면 셰일 유전이 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에 이르자 미국의 셰일 석유 채굴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OPEC 회원국과 비회원 산유국이 산유량을 줄이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현재 미국 셰일 석유 생산량은 하루 587만 배럴에 달한다. 2년 전만 해도 셰일 유전의 평균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70달러 정도였다. 2014년 11월부터 약 2년간 이어진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석유 가격 전쟁’에서 살아남은 미국 셰일 석유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하고 돌아온 것이다.
 
셰일 유전의 장점은 전통적인 원유 채굴보다 생산 중단과 재개를 빠르게 할 수 있다. 셰일 석유는 원유가 갇혀 있는 암반층을 뚫은 뒤 물과 모래, 화학약품을 섞은 혼합액을 분사해 추출한다. 유정을 뚫으면 펌프를 연결해 플러그로 봉인한 뒤 차례차례 수압파쇄 기법으로 원유를 추출한다.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면 봉인한 플러그를 풀어 금세 원유를 퍼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유가가 내리면 생산을 중단하고, 유가가 오르면 즉시 생산을 재개해 원유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원유 수출 금지법을 해제해 미국은 산유국이자 석유 수출국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1~3월 미국의 원유 수출량은 OPEC 회원국인 적도기니·가봉·에콰도르 등 5개국보다 많았다. 지난 4년간 미국의 원유 수출량은 1600% 증가했다.
 
시장에서는 내년 3월 추가 감산 약속이 끝나면 3차 감산에 들어가야 한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OPEC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2년간의 강경 대응 자세에서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셰일 석유 업체를 죽이기 위해 감산을 주도한 국가다. 이런 나라가 최근 “셰일 석유와 공존해야 한다”고 입장을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추가 감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OPEC의 존립 의미가 약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OPEC이 카르텔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해체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OPEC은 1960년 설립돼 57년간 산유국의 이익을 대변하며 국제 유가를 조정해 왔다. 폴 시아나 BOA메릴린치 애널리스트는 CNBC 방송에서 “유가 하락은 절대적인 추세”라며 “지난해 4월 이후 최저치인 30달러대로 밀릴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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