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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문학운동 선구자' 채광석 시인 30주기 추모행사

30주기가 돌아오는 채광석 시인

30주기가 돌아오는 채광석 시인

짧은 생을 뜨겁게 살다간 시인 채광석(1948∼87)의 30주기 추모행사가 열린다. 추모의 밤 행사가 열리고 묘소와 시비도 참배한다. 기일인 12일 오후 6시30분 서울 대학로 굿씨어터에서 열리는 '그대가 꿈꾼 세상'은 추모행사다. 정우영 시인의 사회로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추도사를, 이한열기념사업회 김학민 이사장과 김진경 시인이 회고사를 낭독한다. 시인의 대표작 낭송과 공연이 이어진다. 
11일 오전에는 팔당 묘소를 참배하고 22일에는 시인의 고향인 충남 태안 안면도에 세워진 시비를 찾는다. 
 꾸준히 작품이 사랑받는 다른 문인들에 비하면 시인은 대중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다. 세상을 뜬 지 한 세대가 지나다보니 그에 대한 문단의 기억도 갈수록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시인과 활동을 함께 했던 이승철(59) 시인이 최근 페이스북에 고인을 추모하는 장문의 글, 추모시를 올렸다. 적어도 그의 글 안에 시인은 생생히 살아 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채광석 시인(1948.7.11ㅡ1987.7.12) 30주기라니!
 
돌아오는 7월 12일(수)은 채광석 시인 30주기가 되는 날이다.
채광석! 그 이름만 들어도 벌써부터 가슴이 뻑뻑해진다.
아, 그가, 채광석이 여태껏 살아있다면 한국문단이 지금쯤 어찌 변했을까를 잠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 문학적 인생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말하자면 그는 전방위적, 전천후적, 전무후무한 인생을 살다가 어느날 거짓말처럼, 불과 서른아홉의 나이로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가고 말았다.
 
1983년 3월 <창비 신작평론집>과 5월, 무크 <시인>을 통해 평론과 시를 동시에 개시했던 그는 타계할 때까지 그 5년간을 가장 뜨겁게 한생을 불태운 사나이였다.
 
1984년 12월 19일, 저 5공의 폭압통치를 물리치고서 기어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 현재 한국작가회의 전신)를  재건하더니, 초대 총무간사와 집행위원으로 한국문학판을 판갈이해냈다. 아, 그가 펼친 민중적 민족문학!
 
<시와경제> 동인으로 1980년대 <시의 시대>를 이끌며  
박노해, 조성우 시인을 발굴해냈으며, 풀빛출판사 편집주간으로 <풀빛판화시선> 등을 기획출판했다. 그는 문학운동은 물론이거니와 <민문협> 실행위원, <민통련>중앙위원과  문화예술분과위원장으로 모름지기 문학예술은 ‘시대정신의 총아’여야 마땅하다고 주창했고, 이를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박정희 긴급조치 시절 1975년 5월 22일, 서울대 김상진 열사 추모시위 ㅡ  이른바 <오둘둘사건>의 주역으로 징역 2년1개월 1일을 살았고, 전두환 신군부의 5.17쿠데타로 예비검속돼 40일간 모진 고문 끝에 3개월만에 석방되기도 했지만, 전혀 징역 자랑을 하지 안했고, 울대(서울대) 출신인걸 단 한번도 내세우지도 않았던 그 채광석 형님이었다.
 
아, 맞아! 그 욕쟁이! 그런데 그 욕이 싫지 않고, 걸쭉했잖아.
그리고 술이 좀 들어가면 작사, 작곡 미상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작곡을 그토록 성실하게, 목청껏, 좌중의 눈치코치 안 보고 마구 불러댔지! 그래서 음치라고 말할 수도 없었잖아.
 
거시기한 문단 꼰대들을 향해 아주 가열차게 들이박으면서, 우리 같은 잔바리들을 아주 포근히 감싸안았잖아!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촌놈들에게 잘해주었지. 실은 그도 안면도 촌놈이었으니까, 어떤 동질성이랄까, 그런 것?
 
그때 벗들, 기억 안 날까? 벌써 잊었나?
내 기억엔 30년 전의 일이 아니라 바로 엊그제 일처럼 단색판화처럼 아주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는데.  
 
그래서 나같은 잔바리들이 형님, 형님, 광석이 형님! 하면서
니기미 저 5공을 향해, 전두환 대갈통을 까부수고자 마구마구 치달려갔잖아.
 
말하자면 우린 채광석 형님의 호출에 대비해 숫제 5분 대기조 생활! 그가 부르면 자다가도, 술 먹다가도, 쌈질하다가도 때론 마누라와 그짓하다가도, 어서 가야한다고 신속하게 집결했지!
 
아, 그런 형님을 다시한번 만나고 싶다. 그런 광석이 형을 기억하는 분들은 <시인 채광석 30주기 추모 행사>에 꼭 나와주시길!
 
아래는 그를 생각하면서 언젠가 썼던 내 졸시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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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광석 형님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시뻘건 황토울음만 자욱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떠나간 옛벗은 영영 찾아오지 않고
안면도 적송 송피 위에 맺히던 그대 아련한 이름자
제발, 이젠, 그만, 잊어버리자고 몇 번이나 작심했던가.
 
솔밭 건너 거치른 들녘 지나, 팔당 붕어찜집 그 너머
하이얗게 미소 짓던 옛 시절이 우리들에게 있었다.
언덕 위 황톳물이 그날처럼 우르르 떼몰려 온다.
짜식들! 던적스럽게 그 따위로 사기치지 말라고 해!
당신 외마디는 서산 어리굴젓처럼 내 혀끝 깊숙이
온종일 감돌다가 때론 멍빛 눈망울로 사라져 갔다.
 
마포 경찰서 앞 아현동 ‘자실’ 사무실 한 귀퉁이
끝없이 써댄, 옥중문인 김남주 시인에 대하여 등등
시국 관련 원고들과 혹은 독재타도! 호헌철폐!
성명서 따위 그러다가 마침내 5공(共)을 향해
뿌사리처럼 들이받던 1987년 4월의 그날,
마침내 전두환을 향해 우렁차게 일갈해대던
<4.13조치에 대한 문학인 193인의 견해> 따위
아, 그다지도 시원스레 내뱉던 그대 욕지거리 속에
6월 광장으로 스크럼을 짜며 휘달리던 청춘들아.
 
그래 천둥아 한번 쳐라, 벼락아 한번 내리꽂혀라!
첨탑도 피뢰침도 없이 우린 적송 아래 퍼질러 앉아
이만큼 잘 견뎌왔으니, 너 참 대견했다고 말하련다.
승언리 꽃지 앞바다 위로 한사코 넘실대는 사람아
제 몸 띠끌 하나 남김없이 싯푸르게 곤두박질치며
천지를 물컹물컹 꽉 채우던, 싱그러운 꽃물결 같은
아 그 사람, 우리들의 영원한 동지, 채광석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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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