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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 젊어진 지휘대, 보수적 오케스트라와 찰떡궁합

 지난달 말과 이달 초 ‘교향악단의 도시’ 베를린은 차세대 젊은 지휘자들의 활약 무대였다. 지난달 29일엔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45)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을, 30일엔 투간 소키예프(40)가 독일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달 1일엔 구스타프 두다멜(36)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이 중에서 유로프스키와 명문 악단인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를 음악학 박사 강지영씨가 현지에서 보고 리뷰를 전해왔다. 유로프스키는 올해 가을 시즌부터 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부임한다. 직전 지휘자 마렉 야노프스키(78)보다 33세 젊은 유로프스키가 어떤 리더십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갈지 가늠해볼 수 있었던 무대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지휘자 유로프스키. 올해 가을 베를린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취임을 앞두고 있다. [사진 RSB/Matthias Creutziger]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지휘자 유로프스키. 올해 가을 베를린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취임을 앞두고 있다. [사진 RSB/Matthias Creutziger]

“세계 지휘계의 차세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유로프스키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만남은 베를린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이제 겨우 불혹의 나이를 갓 넘긴, 많은 단원을 거느린 마에스트로로서는 젊다면 젊은 이 지휘자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찬사는 범상치 않다. 무엇보다도 그에 대한 베를린 시민들의 열광적이면서도 따뜻한 지지와 응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로프스키는 작곡가인 할아버지와 지휘자인 아버지(Michail Jurowski)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하였고, 1990년 가족과 함께 베를린으로 이주한 후 드레스덴과 베를린에서 학업을 마쳤다. 이십 대 초반부터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성공적인 음악 활동을 해온 그는, 특히 1997년부터 2001까지 베를린 코미쉬 오페라단(Komische Oper Berlin)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풍부한 음악적 표현으로 베를린 시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하였다. 런던필(London Philharmonic Orchestra)의 상임지휘자가 된 후에도 가족이 있는 베를린을 자주 왕래하면서 여러 오케스트라와 함께 꾸준히 무대에 올랐으며, 2017년 가을 시즌부터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부임하게 되면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2008년 한국 내한 공연 당시 인터뷰에서 유로프스키는 스스로에 대해 “자아를 잃지 않는 러시아 지휘자”로 표현했지만, 독일과 영국 등 유럽 각지의 음악 양식과 색채를 흡수하여 다양한 작품들을 소화하는 거장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뿌리를 가진 음악가로서 프로이센의 문화적 정서를 공유해서인지 베를리너들에게 유로프스키는 매우 친숙한 지휘자임에 틀림 없다. 정통 독일의 사운드를 추구하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의 찰떡 궁합이 기대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이다. 그의 전임 야노프스키(Marek Janowski)는 베버ㆍ베토벤ㆍ브람스 등 독일 관현악 레퍼토리의 대가로서 진중하면서도 간결한 북독일의 보수적인 음악적 특색을 유지하여 2002년부터 장장 15년간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신임 수장 유로프스키의 과제는 따라서,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음악적 전통을 지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모습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일테다.  
 
2010년 봄 베를린에서 야노프스키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시리즈를 들으러 간 적이 있다. 장장 나흘에 걸쳐 베를린 필하모니에 출근도장을 찍어야 전곡을 다 들을 수 있었는데, 성실한 연주와 직설적인 사운드가 ‘징허게’ 독일적이었고 베토벤의 음악에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해 가을 유로프스키의 지휘로 한스 첸더가 현대적으로 편곡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보았다. 민첩하고 평범하지 않은 제스처로 현대음악의 다양한 음색과 음향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했던 그에게서 나는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
지난달 29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로프스키와 베를린방송교향악단의 무대.  [사진 RSB]

지난달 29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로프스키와 베를린방송교향악단의 무대. [사진 RSB]

 
2016/17년 여름 시즌 마지막 공연이자 유로프스키가 다음 시즌 상임지휘자로서 첫 선을 보이는 자리인 6월 29일 무대는 정통과 현대, 젊고 진취적인 지휘자와 보수적인 관현악단의 조우가 가져올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19세기 말 독일과 동유럽 음악으로 구성된 연주 목록은 지휘자에게 가장 자신 있는 레퍼토리일 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친숙함과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첫 곡인 요제프 숙(Josef Suk)의 ‘환상적 스케르초’ op.25에서 유로프스키는 세기 말의 멜랑콜리와 판타지를 가감없이 표현하였으며,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과거의 경직된 모습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연주로 적극 호응하는 것으로 보였다. 드보르자크(Antonin Dvorak)의 첼로 협주곡은 미국의 젊은 첼리스트인 앨리사 와일러스타인(Alisa Weilerstein)의 기량이 돋보였으나, 개인적으로는 과한 감정 표현과 연주 스타일이 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 잘 맞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브람스의 교향곡 2번 D장조 op. 73는 아쉬움이 남기도, 가능성이 보이기도 한 연주였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연주에 익숙한 청중에게 다소 밋밋하고 심심할 수도 있으나, 마치 신포니에타를 연상케 하는 2번 교향곡의 소박한 감성에 오히려 더 적합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바순 수석인 한국 연주자 유성권을 비롯하여 목관과 금관 파트에서 젊은 연주자들로의 교체가 눈에 띄었는데, 그래서인지 이전에 비해 연주도 훨씬 생기 있고 젊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연주가 끝난 후 우뢰와 같은 환호와 “브라보”는 없었지만, 베를린 시민들은 열렬한 박수갈채와 호응으로 화답하였다. 향후 몇 년 간 베를린의 음악 활동 한 켠을 담당할 지휘자와 청중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신뢰와 기대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지휘자 유로프스키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앞으로의 행보에 미리 박수를 보낸다.
 
강지영 (독일 베를린 예술 대학 박사, 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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